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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Jan 02. 2022

가스 잠금과 망설임

포장이사를 거들다가, 괜히 얼쩡거리는 것 같아 안방에 들어갔다. 빼 먹은 건 없는지 하릴없이 여기저기 살폈다. 그러다 우연히 보일러 조정 패널에 연소 버튼이 켜진 걸 보았다. 온수 모드로 돌아가고 있었다. 꼼꼼히 챙긴다고 하여도 사소하게 놓치는 것들이 꽤 된다. 냉큼 전원을 려는데 냉장고 정리하는 이모님이 싱크대에서 선반을 씻고 있다. 뜨거운 물이 싱크대 수전을 타고 콸콸 쏟아다. 손잡이도 온수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모님은 맨손으로 플라스틱을 닦다. 허공으로 하얀 김이 펄펄 올라다. 옆에서 식탁에 완충재를 씌우던 아저씨가 운수 대통이라는듯 말을 거들었다.


"와 대박이네. 가스 아저씨 오기 전에 뜨신 물 써. 이모."


아주머니는 한 번 웃더니 더욱 바삐 손을 움직였다. 마치 허가받지 않은 특혜를 들킨 것 같은 손놀림이었다. 나는 전원 버튼에서 손을 뗐다. 기분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몇 분이라도 더 지속되길 바랐다. 일요일 아침의 소소한 행운은 누리는 사람 뿐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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