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은 일주일의 피로가 피크를 친다. 내일이면 금요일이 올 줄을 알면서도 몸이 무겁다. 물 먹은 솜 마냥 축 처진다. 나는 저녁을 먹고 헤롱헤롱한 상태로 분리수거를 마쳤다. 분리수거장을 막 돌아 나오는데 하얀 엘이디 불빛이 내 앞을 스쳐갔다. 어린이 놀이터에서 나온 하얗고 선명한 빛. 12월의 밤 오후 아홉 시 삼십 분에 나올만한 빛은 아니다.
"네에!! 지금 우리 킥보드 곡선 트랙을 돌고 있씁니다아!!"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완전한 자기 몰입의 목소리. 아파트 단지에서 야간에 이렇게 소리 지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높은 톤으로 보아 절대 남자는 아니다. 나는 좀 더 가까이 가 보았다. 모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전동 킥보드 위에 두 사람이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는 여름에 물놀이장을 겸하게 되어 있어서 그릇처럼 약간 바닥 부분이 오목하다. 그러니까 그 둘레는 그릇의 테두리처럼 완만한 경사가 진다. 전조등을 환하게 밝힌 문제의 킥보드는 어린이 놀이터 우레탄 바닥을 트랙 삼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경비원 아저씨의 눈을 피해.
전동 킥보드는 개인 장비가 아니라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유형 킥보드였다. 킥보드에 탄 두 여성은 대학생이 아니면 고등학생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주민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평소 같으면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신고할 생각이 먼저 들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왜냐하면 그 킥보드를 운전하는 앞사람이 큰 소리로 해설을 해줬기 때문이다.
"우리 킥보드 빠른 속도로 두 바퀴를 돌아 나갑니다아~"
마치 오토바이 경주를 중계하는 아나운서처럼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나는 패딩 모자를 뒤로 젖혀 벗었다. 진귀한 구경거리를 조금 더 생생하게 감상하고 싶었다. 그러나 동작이 조금 컸던 탓일까 운전하는 사람 뒤에 매달려 있던 동승자에게 들키고 말았다.
"야, 저기 사람 있어!"
"걱정 마세요, 우다다다 놀이터를 빠져나갑니다아~"
킥보드는 순식간에 내 옆을 스쳐나갔다. 라이더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어 들리는 엄청 신난 목소리.
"다음 코스는 내리막길입니다. 우아아아아아."
푸핫. 나는 무얼 본 걸까. 그 사람들 대학 기말고사가 끝났던 걸까, 아니면 기말고사를 준비하다가 스트레스로 한 잔 했던 걸까. 라이브로 킥보드 개그 콤비 꽁트를 본 내가 믿기지 않아 코를 콱 꼬집었다. 아프다. 그래도 목요일 밤 답지 않게 마음이 가벼웠다. 액셀레이터를 풀로 당긴 개조 버전 전동 킥보드처럼 마구 내달려서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