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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생츄어리

by 이준수

하루에 십 분 명상을 한다. 눈을 감고 호흡에 빠져든다. 곧 마음이 고요해진다. 명상을 하면 마음에 공간이 생겨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공간은 꽤 커서 앉아 있는 내가 들어갈 수 있다. 공간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여기는 나의 생츄어리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있어도 나만의 성소를 확보할 수 있다.


명상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으로 '구도자'를 적지는 않았지만 깨달음을 위해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던진 사람들에게 매료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학위를 취득하지 않고, 가정을 이루거나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 깨달음 혹은 열반이라는 목표는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 영역이었다.


그러다 어른이 되고, 직장을 얻고, 자녀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어 온 나의 인생이 사실상 사회적, 문화적 규범에 따른 결과였음을. 우연히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위대한 장군이나 정치인,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생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소나무 숲을 산책하다가 단순한 생명의 진실을 마주했다.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은 조건이 맞으면 싹을 틔운다. 그곳이 바위틈이건, 모래 언덕 뒤편이건 상관하지 않는다. 적당한 온도와 물, 바람, 햇빛이 있으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운이 따라준다면 새싹은 나무로 자란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죽는다. 태풍에 쓰러질 수도, 산불에 타버릴 수도,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되어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


인간인 나와 소나무의 차이는 없다. 어떤 인연으로 어느 순간에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고, 솔방울은 소나무로 자라났다. 인간인 내가 에고가 있어서 생각이 복잡할 뿐 소나무와 기본적인 생애 경로는 같다. 태어나, 나이를 먹고 병에 걸리는 등 변화를 겪은 뒤, 때가 되면 죽는다. 사후에는 다양한 원소로 흩어져 다른 생물이나 무생물로 재조합된다. 매우 간결하고 확실한 흐름이다.


그러다 문득 커다란 물음표가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굳이 에고가 바라는 대로, 욕심내는 대로 살면서 괴로움을 겪을 필요가 있을까. 그저 소나무처럼 비가 오면 뿌리로 물을 마시고, 계절에 따라 잎을 떨구며 살면 되지 않나. 일단은 인간의 몸을 하고 있는 나도 그저 숨 쉬는 생물이지 않은가. 지진이 난 것처럼 쿠궁하고 생각의 땅이 갈라졌다. 진지하게는 처음 해보는 발상이었다.


아, 이래서 출가를 하는구나. 처음으로 구도자의 초발심을 직접 느껴보았다. 어째서 출가를 대자유의 길이라 부르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싯다르타처럼 살 수는 없었다. 사회적 역할을 버리고, 가족 관계를 끊고 오직 '깨달음'의 길만 추구하기에는 얽힌 인연과 집착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내게는 한참 손이 가는 시기의 두 아이가 있다. 교실에서 학생과 생활하는 교사 역할도 해야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꾸린 살림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떨쳐낼 만큼 큰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나의 타협점은 명상이었다. 생활인으로 살면서 깨어 있는 시간의 일부라도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는 소나무'가 되어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으며 그저 숨을 쉬어 보기로 했다. 힘을 쭉 뺀 채 깊이 숨쉬기. 숫자를 세면서 숨 쉬는 방법이 내게 가장 잘 맞았다.


천천히 숫자를 하나, 둘, 셋, 넷을 센다. 잠시 숨을 참고 '나는 누구인가?'를 속으로 묻는다. 다시 천천히 숫자를 하나, 둘, 셋, 넷, 다섯 때로는 여섯까지 세면서 숨을 내보낸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앉은자리에서 스무 번 반복하기도 하고, 집중력이 좋은 날에는 쉰까지 간다. 명상에 몰입하면 바닷가 해송이 된 기분이 든다. 해송이 되면 머리가 말끔해진다.


소나무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않는다. 무엇이 좋고 싫은지 구별하지 않는다. 지난날의 구질구질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로 벌벌 떨지 않는다. 소나무는 매 순간 뿌리로 땅을 움켜쥐고, 가지를 느긋이 뻗으며 존재한다. 일관성 있는 삶이다. 인간처럼 주식 가격 변동을 주시하거나, 삼십 년 뒤의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다.


명상을 하면 잠깐이지만 '소나무'로 살 수 있다. 숨만 잘 쉬면 된다는 고요함을 느끼고 나면, 모든 인간의 일과 세상의 소란이 시시해진다. 에고가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의 나는 좀 정신이 사나운 편이다. 원하지 않아도 제멋대로 생각이 '가짜' 상상력을 발휘해 감정을 헤집어 놓는다. 에고가 무한 시즌의 드라마를 쓴다. 때때로 재미있기도 하지만, 번잡한 에고는 피곤하다. 명상은 에고를 잠잠하게 한다.


과거에는 어떤 음식을 먹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장소에 가야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이미 생츄어리는 내 안에 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곳에 머물면 된다. 바람이 분다, 소나무 향기가 멀리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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