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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후 단풍

2025.11.09

by 이준수

주말을 가장 행복하게 보는 방법은 제철의 풍경을 즐기며,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이다. 입동의 단풍을 만끽하기 위해 자동차를 남쪽으로 몬다. 북쪽은 춥다. 북쪽 단풍은 입동 전이 제일이다. 오늘의 행선지는 삼척 천은사. 오십천을 따라 천은사까지 들어가는 길은 축복이다. 굽이굽이 산에, 맑은 계곡이 용처럼 흐른다. 강원도에 살면 말도 안 되는 자연경관의 축복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다. 미로면은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 천은사는 풍경화 깊숙이 두타산에 있다.


자동차를 일주문 앞에 세웠다. 절까지 더 올라갈 수도 있지만 천은사에서 제대로 시간을 보내려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일주문 측면으로 작은 산길이 있다. '동안(이승휴 선생의 호) 명상길'이라 이름 붙은 예쁜 오솔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도로의 자동차를 피할 일 없이 조용히 산을 탈 수 있다. 700m 코스라 부담도 없다. 길을 걷다 보면 다람쥐가 바위 위를 통통 뛰어다닌다. 고개를 들면 솔잎이 바람에 조용히 떨어진다. 낙엽이 쌓인 길은 적당히 푹신하다.


나는 계속 감탄했다. 이끼 낀 암석과 가문비나무 숲을 지나 가는 길은 입을 다물기 힘들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공기가 너무 좋다. 낙엽이 멋지다. 이끼가 근사하다. 물소리가 부드럽다. 보호수가 크다. 더군다나 개가 아주 귀엽다.


천은사에는 '도솔'이라는 개가 산다. 목에 이름표와 염주가 걸려있다. 도솔이는 순하다. 누가 와도 눈만 꿈뻑꿈뻑 편안히 있다. 무기력하지도, 사납지도, 뽐내지도 않는다. 나는 가만히 도솔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얀 털에 윤기가 돌았고 따뜻했다. 도솔이는 분명 보살님이리라. 나는 아마도 도솔이를 보기 위해 삼척까지 왔을 것이다. 욕심이 하나도 없는 도솔이가 너무 좋아서 한참을 옆에 있다가 왔다.


저녁 밥은 동해 묵호항에서 먹었다. 천은사에 이어 요전산성(오화리산성)까지 갔다 온 터라 배가 고팠다. 운동 후에 먹는 식사는 언제나 꿀맛이다. 우리 가족은 열기탕수와 나베, 모둠생선구이(갈치, 고등어, 임연수, 꽁치), 새우장, 두부, 명태 전, 톳, 삶은 소라, 새우튀김을 먹었다.


"그냥 2세트가 나을 실 텐데. 다 못 드실 텐데."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서 4인 세트에 추가 메뉴를 주문하니 주인장이 말렸다. 잘 먹으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킨 후 공깃밥도 야무지게 먹었다. 운동으로 500 칼로리를 태웠으면, 식사로 1000 칼로리를 채워야 한다. 좋은 음식은 충분히 먹어도 무방하다. 이것이 나의 행복 공식이다. 가게 안쪽 테이블에 앉아 여유 있게 모든 음식을 다 먹었다. 몸이 안에서부터 따뜻하게 데워졌다.


자연과 운동과 든든한 음식. 어느 주말도 버릴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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