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날 건넨 감이 홍시가 되었다

2025.11.10

by 이준수

"저번에 준 감 잘 먹었어요."


퇴근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승하차 도우미 여사님이 인사하셨다. 내가 뭘 드렸던가. 잠깐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가 퍼뜩 생각이 났다. 열흘 전인가. 아직 덜 익은 대봉감을 땄다. 가방에 넣으면 터질 것 같아 손에 쥐고서 퇴근길에 올랐다. 그러다 여사님을 만났다.


"감 참 예쁘게 생겼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여사님께 감을 건넸다. 아직은 단단하니 두셨다가 드시라고. 그 뒤로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어느덧 대봉감이 익은 것이다. 여사님 표정이 밝아 보이셔서 나도 기뻤다.


"다음에 따면 또 드릴게요."


가장 맛있는 대봉감은 나무에 달린 채 서리 맞은 감이다. 입동 이후부터는 밤 기온이 쑥 내려간다. 그럼 단맛이 바짝 오른다. 그렇지만 완전히 후숙 한 감은 따기 힘들다. 물렁물렁해서 터지기 쉽고, 자칫 떨어뜨리면 바닥에 닿아 터진다. 그런 이유로 대봉감은 미리 따 놓았다가 서늘한 곳에서 익혀먹는 편이 무난하다.


대봉감이 홍시가 되는 과정은 마법 같다. 단단하던 감이 서서히 물렁해지며, 껍질 아래에서부터 젤리처럼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당도가 두 배로 차오른다. 아이스 홍시처럼 얼려 먹는 사람도 있다. 스푼으로 떠 먹으면 샤베트 같다나.


반면 나는 전통파다. 실온 상태에서 먹어야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잘 익은 대봉감은 거대한 푸딩. 한입 크게 베어 물면 입안 가득 달콤함이 퍼진다. 그리고 천천히 찾아오는 은은한 떫은 향. 어딘가 늦가을을 닮은 마무리다.


따뜻한 생강차와 잘 어울리는 대봉감. 손끝만 스쳐도 대봉감 껍질이 벗겨지는 시기가 오면 자연스레 겨울을 준비하게 된다. 좋은 사람들과 자주 나누어 먹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입동 후 단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