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2
작은 눈이 내린다, 라는 뜻을 지닌 절기 '소설小雪'의 아침은 시끄러웠다. 환기를 위해 열어 둔 거실창을 뚫고 환호성이 들렸다. 좋아하는 가수에 열광하는 팬들이 내지르는듯한 소리. 하이 비트의 음악과 묵직한 저음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소음은 아니었다. 거실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과연 '사임당 공원' 공터가 소란스러웠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건 괴상한 짓을 일삼는 수상한 무리들.
"으야압!"
오늘은 분명 겨울이 이제 막 문을 두드린다는 '소설小雪'이다. 그러나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7월 '소서小暑'에나 할 법한 짓들을 하고 있었다. 반바지 차림으로 달리기를 하고, 다리를 꼬아가며 로프를 손쉽게 탔다. 철봉 위로 몸을 가볍게 튕기는가 하면, 빙글 거꾸로 돌기도 했다. 바벨은 스프링 튀기듯 힘차게 들어올렸다. 내려놓을 땐 그냥 바닥에 쾅. 마루의 반동으로 바벨이 튕겨져 올라왔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적막하던 공원에서.
나는 지금 어느 계절에 있는 것인가. 일순간 날짜 감각에 혼란이 왔다. 그리고 가까이서 이상한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내고픈 충동이 일었다. 집을 나섰다. 동네는 이미 운동하는 무리들에게 점령당해 있었다. 약국에도 한 무리, 카페에도 한 무리. 식당 문을 열고 나오는 무리도 있었다. 창밖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몸이 굉장했다.
전신에 아주 탄력이 넘쳤다. 근육이 발달해 있으나 과하게 울룩불룩하지 않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슈퍼 미들 바디'이라고 할까. 나는 군대에 있을 때 특전 부사관 여럿을 만났다. 보여주기가 아닌 실전용 몸은 무거운 근육이 아니다.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꽉찬 미들급에 가깝다. 물론 외양도 무척 아름답지만 말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들이 거리를 쏘다녔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음악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공원에서는 크로스핏 대회의 일종인 '아시아 인비테이셔널 2025'이 한창이었다. 참가자들의 역량이 대단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그냥 '참가'에 의의를 두고 매우 약한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최소한 일반인 중상 이상의 저력을 발휘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비테이셔널'은 신청서만 내면 무조건 접수가 되는 그런 대회가 아니었다. 여기서 높은 성적을 거두면 세계 대회급인 '크로스핏 게임즈'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된다고 했다. 그러니 다들 즐기는 듯한 가운데에서도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거겠지. 선수들이 흘리는 땀이 마루에 뚝뚝 떨어졌다. 선수들이 내지르는 기합 소리가 내 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속삭였다.
'너도 하고 싶지? 괴상한 사람이 되어 봐. 강해지라고.'
아드레날린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집에 와서 철봉 끝에 양끝 발을 올리는 동작을 따라해 보았다. 발은 나의 통제를 벗어나 철봉대신 천장을 때렸다. 뿍! 천장이 울렸다. 죄송합니다, 윗집 분들. 조용하게 괴상한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