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친구, 고라니와 고니

26.01.10

by 이준수

달리다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다. 새끼 고라니였다. 가만히 멈춰 선 고라니 눈에서 빛이 났다. 내가 달리던 길이 고라니 쪽으로 향해 있어 흡사 돌진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고라니는 흠칫 놀랐다. 그러더니 몸통을 틀어 엄청난 점프와 함께 달아났다. 거의 자기 키 높이만큼이나 훌쩍 뛰어올랐다. 고라니의 뒷다리 근육은 굉장한 힘을 내뿜었다. 러너로서 그저 순수하게 감탄했다. 만일 인간이 저 정도 근육과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면 마라톤 풀코스를 1시간에 주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라니를 놀라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고라니를 만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큰고니 떼를 만났다. 경포저류지를 지나 가시연습지로 넘어가는 다리를 달릴 무렵이었다. "꾸엉꿔꾸엉" 하는 중저음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큰고니의 울음소리는 존재감이 매우 강한 미디엄 레인지 사운드다. 예쁘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지만, 씩씩하고 힘이 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알파벳 V자 모양으로 큰고니 여러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날개를 넓게 펴고 긴 목을 우아하게 뺀 모습이 퍽 아름다웠다.


그때 아래쪽 개천에서 "꾸앙꿩엉엉!" 하는 소리가 났다. 다른 고니 떼였다. 그 고니 떼는 얼어붙은 강의 영역을 피해 아직 액체 상태로 남아있는 개천 일부에 모여 쉬고 있었다. 놀랍게도 내 머리를 지나쳐 둥글게 선회 비행을 하던 고니 떼가 다른 고니 떼의 신호에 응답을 했다. "꾸엉어엉엉!(오케이 버디, 여기 나쁘지 않은데 -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어딘가 신나 보이는 음성이었다. 고니 떼는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듯 크게 허공을 돌아서 유유히 수면에 착륙했다. 비행기가 랜딩기어를 내리듯 검은 두 발을 쭉 뻗어서.


넓적한 두 발로 속도를 늦춘 고니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부드럽게 수면 위를 나아갔다. 서로 합류한 두 고니 떼는 작은 몸짓으로 환영 인사를 나눴다. 인간이 손을 흔들듯 날개를 흔든 건 아니지만 서로를 의식하는 듯한 묘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큰고니는 지적인 생물이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동물 친구들과 자주 마주친다. 사냥하는 수달을 보기도 하고, 사슴벌레가 등장하는가 하면, 뱀이 스르르 기어가기도 한다. 나는 동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성큼 뛰어 돌아간다. 그리고는 아직 야생의 친구들이 남아있음에 안심하게 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밀려온다. 물총새가 날아다니면 여름을, 고독한 물수리를 발견하면 겨울을 느끼는 것이다. 나 또한 영장류의 한 개체로서 그저 달리기를 좋아할 뿐이고.


땅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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