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전날에는 프렌치 토스트

18.09.23

by 이준수

스타벅스에서 얼그레이 라떼를 뽑아 집으로 향했다. 어제 사둔 뜨레주르 식빵에 우유와 계란을 풀고 소금을 약간 쳤다. 올리브유 둘러 달군 후라이팬에 3분 간 노릇노릇 구워 그릇에 냈다. 두껍게 썬 바나나를 곁들이니 한끼 식사로 충분했다.

추석 하루 전 친척들 없이 프렌치 토스트로 점심을 해결하기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연하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다. 이십 년 전 우리 집은 집성촌에 있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낫과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셨다. 시부모를 봉양하는 어머니는 명절 음식을 산더미처럼 차리셨다.


골목을 가운데 끼고 집집마다 전 굽는 냄새가 났다. 사돈에 팔촌으로 연결된 집들은 밤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제사 준비에 바빴다. 전주 이씨 조상님들은 다른 성씨를 가진 며느리들의 눈물과 고통으로 제삿밥을 얻어 먹었다. 문제는 그 다음 세대였다. 베이비 붐 세대의 집안 어른들은 딸과 아들을 자신들처럼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서울로 강릉으로 수원으로 떠난 자식들은 벌초와 제사로부터 자유로웠다. 이제는 손녀와 손자를 품은 이십 년 전 그분들이 여전히 명절을 준비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종친끼리 돈을 모아 합동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전문점에서 구매한다는 점이다. 음식을 접시에 담고 나누는 일은 당번에 해당하는 집 사람들이 명절 당일에 합동으로 봉사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전을 굽지 않고 프렌치 토스트를 간단하게 해먹었다. 적어도 우리 집안에서는 4차 산업 혁명보다 더 중대차한 변화다. 이십 년 뒤에는 추석 풍경이 어떨까. 연휴에 친척끼리 모일수나 있을까, 아님 향수에 젖어 동그랑땡을 부칠까. 모르긴 몰라도 가족 구성원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바라는 형태로 바뀌게 될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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