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2월호 <생활의 발견> 통권 382호
오후 세 시쯤 늦은 점심을 먹고 귀가한 날이었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몇 장 읽다 보니, 시계가 여섯 시를 가리켰습니다. 여전히 배가 불러 다음 챕터로 책장을 넘기려는데 아내가 책갈피를 내밀었습니다.
“자기 저녁 준비 안 해? 아이들 식사 시간 있잖아.”
순간 번쩍 정신이 들어 흰쌀을 밥통에 담아 찬물에 벅벅 씻었습니다. 아내가 육아 휴직 중이라 언젠가부터 요리를 전담하다시피 하게 되었는데 그게 벌써 일 년을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남편과 번갈아 가며 밥하기로 약속했는데 도맡아 하던 버릇이 있어 아내 혼자 하곤 했습니다. 압력 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자 “삐익-” 신호음과 함께 숫자 30이 화면에 떴습니다. 다시 월든을 펼쳤습니다. 두 쪽을 채 읽기도 전에 책갈피가 날아왔습니다.
“자기 반찬 안 해? 애들 쌀밥만 먹일 거야?”
말투가 묵직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군말 없이 일어나야 합니다. 18번 메뉴인 ‘야채 계란말이’를 하려고 냉장고에서 달걀, 쪽파, 깻잎을 꺼냈습니다. 쪽파를 탕탕 잘게 썰어 정성스레 달걀 물에 넣고 있는데 어깨너머로 아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반찬 하나 가지고는 안 돼. 냉동실에 청국장 있으니까 찌개도 끓여줘.”
“응, 그것도 할게.”
“아니, 달걀 부치기 전에 육수를 내야지. 그래야 계란말이 될 때쯤 두부, 버섯 넣고 식탁에 같이 올리지.”
수라간 주인님의 추상같은 지적에 어찌할 바를 몰라 귀한 달걀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어설프게 손을 놀리다가 깻잎도 배수구에 두 장 빠뜨렸습니다. 낙심한 남편을 쳐다보던 아내가 뒤에서 다가와 안아줬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이 요리를 잘해야 아내를 존재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 의미를 잡아채지 못해 눈알을 굴리니 덧붙여 말하길, 살림에 무지한 남자는 아내를 도구적으로 사랑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진정 존재로서 사랑한다면 아내를 요리나 살림하는 사람으로 묶어두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생존과 일상의 편의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이는 되고 싶지 않아.”
아내를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팔을 5cm 더 걷어붙이고 ‘백종원 청국장’ 메뉴를 검색해 바쁘게 두부를 잘랐습니다. 두부가 제멋대로 춤췄습니다. 그 사이 달걀말이는 한쪽이 누렇게 탔습니다. 내 사랑이 탄내와 함께 부엌 공기 속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게 아닌데. 나 예전에 잘 했는데.’ 바보 같이 혼잣말을 하며 탄 계란말이를 가위로 잘라냈습니다. 그때, 아내가 가위를 뺐어 들었습니다.
“오빠는 나 없으면 못 사는 줄 알아. 내가 도구적인 아내라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고 밥부터 퍼줘. 이러다가 애들 굶어 죽겠다.”
주걱으로 밥을 푸고 수저를 놓는 동안 아내는 신기한 조화를 부려 죽어가던 요리를 맛깔스레 살려냈습니다. 구수한 청국장을 떠먹으며 나는 이 여자를 존재적으로 사랑하는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