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과 준비는 조금 특별하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밴드 홈페이지와 카카오톡 PC판을 모니터에 띄운다. 아이들 접속 상태는 양호하다. 프로필 옆에 온라인을 의미하는 초록색 동그라미가 속속 떠있다. 얼굴이 잘 보이도록 각도를 맞춰 휴대전화를 고정시킨다. 이건 만약을 대비한 조치인데 서버가 다운되거나 준비한 콘텐츠가 시스템 오류로 날아가면 라이브 방송이라도 해야 한다. 그럴 일은 없기를 바라며 헤드셋을 쓴다. 키보드 옆에는 2리터 짜리 생수 한 병과 초콜릿 두 알 그리고 계단처럼 쌓인 4차시 분량의 교과서와 지도서가 호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아홉시 정각, 출석 체크를 한다. 5분 만에 전원 출석 완료다. 순조로운 출발이다. 이 기세를 몰아 1교시를 연다. 9시 20분에 예약 걸어둔 1교시 창체 수업 영상이 올라간다. 1분 정도 지체되었지만 이만하면 양호하다. 지난 날의 걱정이 무색해진다. 갑자기 어디선가 진동이 울린다. 창밖에서 급식실 공사를 하느라 굴착기가 바닥을 다지는 소리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빈도가 잦고 강도는 약하다. 떨고 있는 건 내 전화기다.
"영상이 안 보여요."
"이거 어떻게 하라는 거죠?"
한 명에게 답장을 하는데 다른 아이가 보낸 메시지가 기존의 화면을 덮는다. 백그라운드에서는 또 다른 요청이 겹치며 브라우저 색깔이 변한다. 아이들을 1분 30초 만에 화나게 만든 건 먹통 현상 때문이다. 아까 확인 했을 때는 분명 됐는데 다시 해보니 교실에서도 버벅거린다. 서버 과부하로 인한 일시적인 오류라고 한다. 제발 일시적이었으면 좋겠다. 카카오톡 채팅방에 숫자2가 뜬다.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아내가 보낸 메시지다. 혼란에 빠진 여우가 무기력하게 주저앉은 이모티콘이 뜬다. 그 학교에서 쓰는 클래스팅도 퍼졌다. 거긴 아얘 창이 열리지 않는다. 우리는 글씨라도 보이니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초등학생의 인내심은 짧고, 온라인 예절은 얕다. 안 된다고, 모르겠다고 불을 뿜는다. 나는 애꿏은 마음에 새로고침 버튼을 연타하며 어떻게든 활로를 뚫어보려 한다. 일시적이라던 오류는 아직도 일시적이다. 이런 걸 지속적이라고 하지 않던가. 몇 분 지나자 병목현상이 풀렸는지 오류 문의가 쏙 들어간다.
어깨를 한 바퀴, 목을 두 바퀴 돌린다. 긴장한 탓인지 승모근이 뻣뻣하다. 공포의 진동이 다시 시작된다. 이번에는 과제를 어디에다 올리는지 모르겠다고 눈물(ㅠ)이 쏟아진다. 분명 제대로 안내 한 것 같은데...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게시글에 댓글로 남기거나, 공책에 쓰고 사진을 찍어 올리세요.>
예상치 못한 부분이 있다. 아이들은 댓글 창이 어디 있는지 헤맨다. 난감할 땐 일단 선생님께! 담임 폰으로 과제 문자를 쏜다. 여기가 아니라 밴드 게시글에 올려주세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까톡! 알림이 울린다. 성격 급한 애들은 우리 반 전체 채팅창에 던져놓고 웃는다. 아이고 안 되겠다. 파워포인트 나와! 화면 캡쳐하고 빨갛게 화살표 넣어 여기에요 여기! 하고 올린다. 채팅창이 너무 시끄러워 메시지가 말려 올라간다. 컨트롤 씨와 브이를 반복한다. 그래도 잘 안 되는지 누가 화남 스티커를 붙였다는 알림이 자꾸 뜬다. 콜센터 직원분들 존경합니다.
모두가 함께 쓰는 채팅창이 야단법석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1:1 채팅창을 뚫는다. 흥분한 애들을 달래고 길을 이끈다. 손가락이 조성진 녹턴 9번 연주하는 것처럼 돌아가는 와중에도 기계식 키보드를 사두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 청축 타이탄 키보드가 찰칵 찰칵 보조를 맞춘다. 일은 역시 장비빨. 아! 이럴 때가 아니지, 3초 간 일탈한 정신을 호되게 붙들어 맨다. 정신을 혼미한 가운데 예약 걸어둔 2교시 국어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예약 기능이 없었다면 이 험한 세상 무얼 의지하여 살겠나.
입이 말라 아까부터 물을 좀 마셨더니 아래쪽이 급하다. 전력질주로 화장실에 뛰어 든다. 180초 만에 알림 아홉 개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 대충 민원 유형이 보인다. 메모장을 열어 유형별 표준 답변을 작성한다. 비슷한 질문을 묶어 똑같이 답변을 보낸다. 오호, 제법 효율적이다. 그런데 뭔가 싸하다. 말을 거는 녀석들만 걸고, 여태 한 마디도 안 한 애들이 있다. 1교시 게시물로 돌아가 댓글 과제를 훑어본다. 출석만 해놓고 잠적한 잠수부들이 계신다. 서버 오류 탓에 튕겼거나, 오후에 들으려고 안 한 것일 수도 있다.
펑크가 나서는 안 된다. 케어가 안 되는 가정일수록 한 번 더 살펴야 한다. 숨죽인 아이들에게 틈틈히 과제를 하라고 쑤신다. 채팅창과 마구 뒤섞인 브라우저 페이지로 듀얼 모니터가 좁게 느껴진다. 전화가 울린다. 쏟아지는 글자에 현기증을 느낀 아이가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따진다. 말이 짜증과 속상함에 파묻혀 있다. 과제 검사는 천천히 할 테니 걱정말라고 안심시킨다. 손만 놀리다가 말을 하니 성대가 뻑적지근하다.
문득 시계를 본다. 시침이 숫자 12를 끌어안고 있다. 압축된 시간이 흐른다. 1.6배속이다. 오늘은 4교시지만 다음주부터는 6교시다. 아이들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눈과 두뇌에 농축된 피로가 쌓인다. 그래도 오늘 좋았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 담임이 조금 귀찮아서 그렇지 어떤 아이에게는 원격 수업이 좋을 수도 있겠다. 불필요한 인간관계 안 만들어도 되고, 자유로운 복장에, 교사의 으름장을 들을 일도 없다. 학창시절의 나라면 분명 찬성했을 것이다. 학교란 무엇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