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곳,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누나와 함께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말았다. 아비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고, 우리가 결정적으로 고아원에 가게 된 건 어미가 우릴 포기하면서였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에 불과했지만 누나는 이미 여덟아홉 살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일찌감치 해외로의 입양이 결정되었다. 때문에 누나와는 헤어져야만 할 처지였다. 하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우리는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물론 이런 사실들은 모두 내가 한참 자란 뒤에 누나로부터 들어 알게 된 것들이었다.
나는 나의 아빠, 엄마가 되어 준 사람들보다도 누나에게 더 의지하곤 했다. 아빠나 엄마의 체온은 어쩐지 누나의 그것보다 몇 도 낮은 느낌이었다. 누나는 일찍부터 나란 존재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까지 마법사처럼 읽어 내던 누나였다.
하지만 내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누나는 집을 떠났다. 새해가 시작되고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누나는 미안하다는, 잘 자라달라는 뻔한 얘기들이 적힌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양부모는 누나를 찾는 데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고 누나의 가출에 전혀 상처를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반면에 그때 나는 세상을 모조리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인기척이 사라진 누나의 방문 앞에 앉아 언제까지고 누나를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그 일은 그로부터 얼마 후에 일어났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 무렵 아빠는 귀가 시간이 매우 일렀다. 그래서 아빠와 내가 단둘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날도 나는 누나의 방문 앞에 앉아 있었는데 아빠가 다가와서 나를 번쩍 들더니 누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오랜만에 사람에게 안기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내 등을 토닥이던 아빠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내 바지를 벗기는 것이었다. 나는 눈물을 다스리는 데 열중하느라 이유를 묻지 못했다. 사실 거부감 같은 건 별로 없었던 것이, 아빠와 나 사이에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전에도 수시로 내 몸을 씻기고 옷도 갈아입혀 주었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진 아빠의 행동은 완전히 낯선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그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아빠는 같은 일들을 내게 반복했고, 어느 날부턴 자신의 바지를 벗더니 나에게도 그것을 시켰다. 그러면서 아빠는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이라고 했다. 나는 희미하게나마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냥 내가 아빠에게 사랑받고 있는 걸 거라고 믿었고, 믿으려고 노력했고, 그러면 마음이 놓였다. 그 착각에 눈이 멀어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 어렸고 궁지에 몰려 있었다. 내게는 사랑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나를 낳은 사람들부터 버림받고, 하나뿐이던 누나에게도 버림받고, 심지어 양부모에게마저 버림받을 수는 없었으니까. 단지 아빠가 나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절대 나를 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믿으며 그 이상한 일들을 참고 견뎠다. 나의 묵인 속에서 아빠의 요구는 점차 수위가 높아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뒤늦게 나는 내가 더 이상 아빠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우쳤다. 아빠는 나의 고통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소름끼치는 고통을 주면서 자신은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워하는 쪽에 가까웠다. 사실을 깨달았다고는 해도 내게는 마땅히 거기에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매일매일 그 악몽 같은 시간들을 감내해야 했을 뿐. 그리고 그 시간들은 오늘날까지도 내 악몽의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아직도 간간히 그때의 꿈을 꾼다. 그때의 꿈을 꾼 뒤엔 다시 잠들기가 두려워진다.
그때 그런 일을 경험하면서 내 정체성에 왜곡이나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가 건드리지 않았다면 혹시 나는 평범한 이성애자로 성장하진 않았을까. 만일 이 가설에 신빙성이 있다면 누나는 내게서 호된 원망과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누나가 계속 그 집에 살았다면 틀림없이 그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전조나 징후가 보였더라도 아마 어떻게든 중간에 차단되었을 테니까. 누나에게라면 나는 보나마나 사실을 말했을 거고, 그럼 누나는 절대 방관하지 않았을 테니까.
누나가 집을 나갔다는 소문은 곧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퍼졌다. 어느 날 그것을 알게 된 맥브라이드가 "야, 너희 누나 도망갔다며? 왜? 네 누나도 네 냄새를 못 참겠다고 하던?"하고 나를 모욕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녀석에게 달려들었다가 그만 상황을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 후론 줄곧 맥브라이드 패거리의 집중포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전에 괴롭히던 수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6월이 다가오면서 아빠는 더 이상 출근이란 걸 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엄마 혼자 식구를 부양하는 처지가 됐다. 그들 사이의 갈등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매일같이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주고받으며 싸우기 일쑤였다. 어느 날엔 증거도 없는 엄마의 외도를 놓고 아빠가 집요하게 시비를 걸었고, 다음날엔 아빠의 성격과 무능력에 대해 엄마가 인신공격을 펼쳤다. 몸싸움이 오가지는 않았으나 대신 집안의 물건들이 남아나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누나 방에 올라가 헤드폰을 끼고 메탈리카나 모틀리 크루, 건스 앤 로지스 등의 음악을 귀가 터지도록 듣곤 했다. 그들이 싸울 때마다 당장에라도 우리 집이 풍비박산 날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다. 하지만 또 다른 공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즈음부터 아빠는 대낮부터 술에 취해선 내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알면서도 나를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 아빠가 나를 성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그때쯤엔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더 이상 크게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부모가 되어 주기로 약속했다는 사실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함부로 나를 낳아 놓고 나를 포기한 사람들처럼, 함부로 나를 입양해 놓고 나를 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때 열두 살이었고, 인생을 한탄하거나 절망하는 방법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혹은 누나처럼 집을 나가는 건 겁쟁이인 나로선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