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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집시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21

by 이정미

노숙을 한다고 해도 돈을 전혀 쓰지 않고 생존할 수는 없다. 스트레이는 노숙하는 동안 구걸도 해 봤지만 일해서 돈을 번 적이 그보다 더 많았다.


시골을 돌아다닐 때는 농장에서 여러 번 일했다. 대부분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집 없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그때그때 돈을 버는 미국인들이 있다고 한다. 스트레이가 떠돌다가 새로 사귄 친구들 중에도 많았다. 그래도 평범한 삶과는 물론 거리가 멀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돈이 항상 부족하다. 떨어져 죽거나 체포될 위험을 무릅쓰고 화물열차에 숨어 탄다.


스트레이는 과거의 자신을 포함해서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아메리칸 집시American gypsies라고 표현했다. 옛날부터 미국에 존재해 왔던 생활 방식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호보hobo라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이지만, 요즘은 예전만큼 잘 사용되지 않는 듯하다. ‘요즘 세상에도 호보가 있다고?’ 하면서 놀라는 미국인들도 본 적이 있다.


스트레이는 이 아메리칸 집시 친구들 중 일부와 아직까지 가끔 연락한다. 연락이 닿는 친구들 중 대다수는 이제 반쯤 정착했다. 겨울에는 방을 얻어서 한 곳에 머물고 여름에는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것이다. 스트레이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차를 사서 여름에 운전을 하며 떠돌고 있다. 연락이 완전히 끊긴 친구들도 여럿인데, 세상을 떠났거나 아무도 소식을 모른다.


친구들이 일하는 곳 중에는 어선도 있다. 많은 어선들이 워싱턴 주를 떠나 몇 달 동안 고기를 잡으면서 알래스카로 향한다. 거기에 타서 일하면 알래스카에 내릴 때에는 적지 않은 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미국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떠난 사람들 중 다수는 본토로 돌아오지 않고 어영부영 알래스카에 남는다고 한다. 스트레이의 친구들은 어선에서 내린 후에는 부두에서 일하며 알래스카에 머무르기도 하고, 화물열차를 타고 캐나다로 간 후 또 다른 어선에서 다시 몇 달간 일하기도 했다. 본토로 돌아온 친구들도 조금 있는데, 본토로 오는 배에서 갑판원 일자리를 구한 덕분이었다.


스트레이도 2009년쯤 어선에서 일하려고 했다. 그러나 워싱턴 주 시애틀로 가는 화물열차에 숨어 탔다가 체포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그때 체포되지 않고 알래스카로 갔다면 당장은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아마 지금처럼 시카고로 돌아와서 정착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스트레이는 꽤 오랫동안 길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해 돈을 벌기도 했다. 2009년 9월, 상태가 좋은 중고 아코디언을 취급하는 업자를 발견하고 50달러라는 헐값에 샀다. 스트레이는 보스턴이라고 기억하고 있지만 페이스북을 보면 그 다음에 들른 필라델피아다. 예전부터 아코디언을 좋아했지만 남에게 배울 기회는 없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건반을 눌러 보면서 혼자 배워 나갔다. 세련된 연주는 아니었겠지만 푼돈을 버는 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스트레이가 평소 좋아하는 펑크나 힙합은 아코디언으로 연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릴 때 좋아하던 게임 <젤다의 전설 – 시간의 오카리나>에 나오는 곡들을 연주했다. 그 중 가장 자주 연주한 곡은 Song of Storm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한 사진작가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스트레이의 모습을 멋지게 찍어 줬고, 그 사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 때 연주하고 있던 곡도 Song of Storm이었다.


accordion keyboard(Philadelphia 2009 probably).png 그날 사진작가가 찍어 준 여러 장의 사진 중 하나. 아래쪽에 있는 손이 스트레이의 것이다. 이 시리즈의 썸네일로 쓰고 있는 사진도 그날 찍은 것이다.


나중에 스트레이는 체포되어 구속되면서 아코디언을 잃었다. 언제였는지에 대한 스트레이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페이스북을 보면 최소한 2010년 여름까지는 가지고 있었다. 아코디언을 밖에 남겨두고 구치소에 들어갔는데, 석방되었을 때는 주변 사람 중 누군가가 아코디언을 팔아버린 상태였다.


스트레이에게는 길에서 만난 여자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스트레이가 아코디언을 연주할 때 옆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둘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어쩌면 유튜브에서 자신이 모르는 어딘가에 그 영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여자들도 노숙을 하고 전국을 떠돌아다닌다. 물론 힘들고 위험하다. 그래서 대부분은 스트레이가 사귀었던 여자들처럼 남자친구를 만들어서 함께 다닌다. 하지만 여자들끼리 다니거나 심지어는 혼자 다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여자들은 아주 강인하다고 한다. 스트레이가 아직까지 연락하는 친구 중에도 혼자서 다니던 강인한 여자가 한 명 있다. 앞에서 말한, 지금은 차를 장만해서 운전을 하며 떠도는 친구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여자친구는 사실 부잣집 딸이었다. 부모가 150만 달러짜리 집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노숙인인데 부잣집 자식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스트레이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부자 부모를 둔 젊은 성인들이 안락한 생활을 등지고 가출해서 노숙을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위해’라는 이념적인 명분 때문인 경우도 있고, 부모에게 반항하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고, 길에서 사는 것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그저 친구들을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가출한 이유가 무엇이든 부모의 도움을 완전히 거부하는 경우는 없는 모양이다. 버려진 건물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고 있지만 부모가 매달 스마트폰 요금을 내 주고 있는 식이다. 그러다 돈이 필요하면 부모에게 연락한다.


정말 가난해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부자 노숙인들을 트러스티trustie라고 부른다고 한다. 신탁 자금trust fund을 가지고 있는 부잣집 아이라는 뜻이다. 관습적인 삶을 거부하는 떠돌이라는 뜻의 크러스티crusty를 앞에 붙여서 크러스티 트러스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게는 아주 신기했다. 스트레이는 미국이 훨씬 큰 나라이고 카운터컬처(반체제 문화)도 강하기 때문에 그런 일도 일어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2010 07 21 faces covered.png 오른쪽이 스트레이. 가운데가 부잣집에서 가출해 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여자친구.


스트레이가 아는 한 트러스티들의 끝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공립도서관에서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것은 노숙인들이 인터넷으로 서로 연락하는 가장 흔한 방법인데, 페이스북에 어느 트러스티의 행방을 찾는 페이지가 새로 만들어진 것이 보이면 불길한 신호라고 한다. 자녀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아서 부모가 찾아 나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는 약물남용이나 사고로 이미 죽은 상태라고 한다.


힘들고 위험한 노숙 생활을 도대체 왜 일부러 하는 것인지, 스트레이는 트러스티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트레이는 트러스티들과 친하게 지냈다. 주로 술이나 담배를 사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종종 다른 이득도 있었던 모양이다. 스트레이가 노숙하던 시절 미시간에서 찍은 사진 중, 꾀죄죄한 행색은 그대로인데 배경이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조촐하나마 깔끔한 호텔 방처럼 보인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트러스티 여자친구가 편하게 쉬고 싶다면서 스트레이를 데리고 호텔에 묵었다고 한다. 여자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스트레이는 아마 그날 모처럼 푹 쉬었을 것이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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