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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Mar 25. 2021

철쭉_사랑의 즐거움

개꽃나무,Royal azalea, Smile Rosebay, 躑躅

철쭉

왜 너를 안다고 생각했을까! 
더 일찍 너를 알아봤더라면 달라졌을까?

분류

현화식물문 > 목련강 > 철쭉목 > 진달래과 > 진달래속       

서식지

산지       

학명

Rhododendron schlippenbachii Maxim.       

분포

우리나라, 중국(동북부) 


바위가 나오니 그 밑은 과연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벼랑이었다. 조심스럽게 바위 한편에 발을 디디고, 한 손으로 거친 바위 돌기를 움켜쥐었다. 다리 한쪽을 치켜들고 튀어나온 턱에 걸치면 가뿐하게 올라갈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다리는 뻗치지도 못하고 허방을 휘젓다가 내려왔다. 다리 근육이 찢어질 듯 통증이 몰려왔다. 몸이 예전 몸이 아니었다. 뻗는다는 생각대로 뻗히는 사지가 더 이상 아니었다. 바위틈에 손을 비집고 간신히 아등바등 올라갔다. 

청계산 석기봉 정상 


청계산에 암벽등반 탈 만한 바위가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고개 들어 보니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방팔방 시야가 모두 확 트였다. 아무런 장애 없이 시력이 닿은 곳까지 한껏 보였다. 하늘과 산 능선이 저 멀리 맞닿는 곳이 보였다. 눈이 침침해 희뿌옇게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서해인지 의문이다. 문득 깎아지는 바위틈에 아름다운 꽃을 보았다. 철쭉꽃이었다.


청계산 정상 깎아지는 바위 절벽 틈바구니 철쭉
아름다운 꽃은 꼭 험하기 그지없는 곳에서만 피어난다.


붉은 바위 끝에 암소 잡은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받치오리다.
[헌화가]

신라의 4구체 향가 헌화가에서 나온 노래 구절이다.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바위틈에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 있을 때 수로부인이 그 꽃을 보고 사람들에게 누가 저 꽃을 꺾어 주겠냐고 물었다. 보기에도 위험한 절벽이라 아무도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 한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수로부인의 말을 들었다. 제가 꽃을 드려도 부인이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겠냐고 묻고는 절벽에 올라 꽃을 꺾어 바쳤다. 수로부인을 한눈에 사로잡을 만큼, 한 노옹이 목숨 걸고 바위에 올라 꽃을 꺾어 바칠 만큼 아름다운 꽃이 철쭉이다.


꽃은 4-6월에 잎과 동시에 피며 연분홍색이다.

                                                                                      

우리나라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불렀고 철쭉을 개꽃이라 불렀다. 이는 보릿고개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고마운 참꽃인데 철쭉은 먹으면 배탈이 나기 때문에 개꽃이라고 불렀다. 철쭉에 독이 있다는 것은 양이 먼저 알아봤다. 철쭉은 '양척촉'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철쭉을 보면 철쭉의 독성 때문에 양(羊,양)이 뒷걸음 친다(躑躅,척촉)하여 양척촉으로 부르다가 양이 빠지고 '척촉'으로 남다가 '텩툑', '텰듁' 등을 거쳐 철쭉으로 변했다. 

갈잎떨기나무로 2~5m 높이로 자라며 4~6월경 가지 끝에 3~7개의 꽃이 핀다.


반면에 뒷걸음치는(躑躅, 척촉) 주체가 양이 아니라 산행하는 사람이라면 꽃의 독성보다 철쭉의 아름다움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고 뒷걸음친다. 신라시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던 수로부인이 산속에서 철쭉을 보았을 때 발걸음을 멈춘 것만 봐도 철쭉의 어원은 꽃이 가진 독보다 아름다움일 것이다. 


색이 은은하고 연하여 수달래 또는 연달래로 불리는 철쭉꽃


절세미인이었던 수로부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철쭉꽃은 매우 아름답다. 

사실 처음에는 철쭉을 알아보지 못했다. 도심지 공원이나 가로수로 심은 산철쭉이나 영산홍을 철쭉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철쭉은 봄에 흔하게 피어난 그저 그런 꽃으로 알았고, 청계산 절벽에서 만난 꽃은 수달래나 연달래 등 다른 이름으로 알았다. 진달래보다 물을 먹은 듯 은은한 색이라 수달래이거나 진달래가 피고 난 후 연달아 피고 색도 연하여 연달래인 줄 알았다. 산속에서 만난 철쭉의 고고한 모습이 진달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른 3월 중순. 적막한 산에서 홀로 붉게 피어난 진달래. 꽃 속에 반점이 없다.


결국 도심지 길 가에 무더기로 심은 철쭉이 산철쭉이었고, 산에서 만난 철쭉이 연달래나 수달래 등 다양하게 불리는 진짜 철쭉임을 알았을 때 많이 당황했다. 

왜 너를 안다고 생각했을까! 꽃이 알리 없건만 무안하고 미안했다.


철쭉 잎은 계란 모양처럼 크고 둥글다.


철쭉을 연달래나 수달래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진달래와 철쭉 모두 진달랫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두 꽃을 꽃 모양이나 색으로 구분 짓기 어렵다. 대신 꽃이 피는 시기가 3~4월이면 진달래이고 4~5월이면 철쭉이다. 또 피고 자라는 산기슭이 양지면 진달래, 음지면 철쭉. 그리고 철쭉보다 한 달 먼저 꽃이 피는 진달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꽃이 질 무렵에야 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철쭉 잎몸은 도란형 또는 넓은 난형으로 길이 5-7cm, 폭 3-5cm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반면 철쭉은 연한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피기 시작한다. 추위가 머물러 있는 이른 봄에 산에서 잎 없이 꽃망울만 나뭇가지에 송송 예쁘게 매달려 있으면 진달래다. 꽃을 자세히 보면 진달래가 좀 진하고 꽃 속이 반점 없이 깨끗하다. 철쭉은 꽃이 더 크고 연하며 꽃 속에 검은 반점이 보인다. 잎은 진달래가 가늘고 철쭉이 계란 모양처럼 크고 둥글다. 


산철쭉.  잎 모양이나 꽃색이 진달래와 비슷하다.


내가 철쭉이라고 알았던 도회지 피어난 꽃은 산철쭉이다. 잎이 둥근 철쭉 역시 산에서 자라는데, 산철쭉은 잎 모양이 새끼손가락 정도의 길이로 철쭉보다 훨씬 날렵하다. 꽃색은 진하고 붉은빛이 많이 들어가 진달래에 가깝다. 산철쭉 잎도 진달래와 비슷하고 모여서 꽃이 피면 아름다워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공원이나 정원에서 보이는 작고 진한 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펴 있는 꽃은 모두 산철쭉이다. 


백철쭉과 영산홍,  자산홍이 무리 지어 피어난 모습


산철쭉은 일본에서 조경용으로 품종개량을 해왔는데 그중 영산홍이 많이 재배된다. 영산홍과 산철쭉 둘 다 잎이 나면서 꽃이 피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영산홍이 산철쭉보다 꽃 색깔이 진하며 키는 산철쭉보다 작은 편이다. 그리고 산철쭉은 반 낙엽으로 날씨가 따뜻한 곳에서는 상록수이지만 겨울에 산철쭉은 낙엽이 진다. 대신 영산홍은 초록 잎이 색이 바래도 여전히 잎이 남아 있는 반상록이다. 또한 산철쭉이 2~3개의 꽃이 달려 나오고 수술이 10개 라면 영산홍은 1개의 꽃만 줄기에 달리고 수술 5개가 있다. 


영산홍은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초록잎으로 남아있는 반 상록수이다.


정리하면 겨울이 끝나고 모든 산이 헐벗을 때 잎 없이 분홍빛 고운 꽃이 피고 반점이 없으면 진달래이고

꽃과 잎이 동시에 피어나면서 꽃에 반점이 있고 색은 크고 연한 분홍빛에 잎이 계란처럼 넓으면 철쭉,

잎이 가늘고 날렵하며 꽃에 반점이 많고 수술의 개수가 8개 이상이면 산철쭉,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꽃에 반점이 없고 꽃 수술의 개수가 4개면 영산홍이다. 


안쪽에 붉은 갈색 반점이 있고 지름 5-6cm이며 수술은 10개 암술은 1개이다

 

진짜 철쭉은 절벽 아래 한 두 주 자라서 빗물에 촉촉이 젖은 모습을 봐야 한다. 그러면 영어로 진달래를 아젤리아(Azalea)라 부르고 철쭉은 여기에 귀족이라는 뜻의 '로열'을 붙여 로열 아젤리아(Royal Azalea)로 부르는 이유를 안다. 


철쭉꽃은 잎과 동시에 피며 가지 끝에 3-7개씩 산형으로 달린다.

                                           

청계산에는 유달리 철쭉이 많기로 유명하다. 능선 타면서 중간중간 철쭉나무가 자주 보인다. 철쭉은 산에 가야만 드문드문 한두 그루 볼 수 있고, 산철쭉은 군락을 이루면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정원이나 가로수에 많이 심는다. 일본에서 개량되어 왜철쭉으로 부르는 영산홍은 더욱 군집하여 피기 때문에 요새 많이 공원에 심는다. 보통 철쭉제라고 하면 화단에 색이 짙은 꽃들이 군집을 이루며 전시를 하는데 대부분 영산홍이다. 


키는 2~5m이고 산야에 무리 지어 자란다.


연한 홍색의 꽃이 5월에 가지 끝에 핀고 무리 지어 꽃이 진다.


사람들은 철쭉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가로수 밑 화단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철쭉이라고 할 때 영산홍이라고 고쳐준다. 다른 곳에 무더기로 피어난 꽃을 영산홍이라고 할 때 산철쭉이라고 다시 일러준다. 그리고 진짜 철쭉은 높은 산에 올라야 비로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꽃을 보면 수로부인이 갈길 바빠도 멈추고, 소를 몰고 가는 할아버지는 기를 싸고 절벽으로 올라가 꽃을 꺾는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그래도 잘 수긍하지 않는 모습이다. 하기야 절벽에 피어난 철쭉을 보지 못했다면 철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들어도 모를 것이다.


높은 산에서 진달래가 꽃이 먼저 피고 철쭉은 잎이 먼저 돋아난다. 진달래 꽃과 철쭉 새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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