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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Mar 08. 2021

아팝나무_하얀눈꽃 또는 하얀 쌀밥

뻣나무,Chinese Fringe Tree, 六道木

이팝나무

한 여름 하얗게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은 볼 때마다 참으로 처량하고 슬프다.

분류   

물푸레나무목 > 물푸레나무과 > 이팝나무속                      

꽃색  

백색 

학명   

Chionanthus retusus Lindl. & Paxton                      

개화기  

6월, 5월 

분포지역  

우리나라, 중국, 일본 


산성도로 옹벽 하단의 등산로를 따라 걸으니 남한산성 석축이 나타났다. 아래쪽에 큰 돌은 옛사람이 쌓은 듯 자연석은 거칠었고, 위쪽은 새로 쌓은 화강석 면은 잘 다듬어졌다. 성곽 위에 성가퀴라는 지붕이 있고, 화포 구멍이 비스듬하게 보였다. 성곽 따라 십분 남짓 걸으니 산성의 웅장한 지화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으로 우리를 마중 나와 도열한 듯 나무들이 열을 맞추며 서 있었다. 이름표를 보니 이팝나무였다. 

하얀 꽃이 만발한 이팝나무는 꽃이 아름다워 정원에도 많이 심는 조경수지만, 이팝나무만 보면 서럽다. 특히 성밖에 서있는 이팝나무만 보면 더욱 서럽다.


남한산성 입구 도열한 이팝나무.  꽃보다 더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남한산성 입구 도열한 이팝나무. 봄에 새잎 돋아나는 것이 더디다.
남한산성 입구 도열한 이팝나무. 한여름 뒤늦게 하얀 꽃이 핀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한 나무다. 남부지방에는 수령 수백 년 묵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가 여러 그루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조상들이 이팝나무를 부른 어원은 정확하게 찾기는 어려우나 대략 세 가지 설이 정해진다. 

먼저 첫째 이팝나무의 꽃이 피는 시기가 24절기 중 입하(立夏) 때 핀다는 의미로 입하나무로 불리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입하나무를 한자로 입하목(立夏木)으로 부른다. 둘째는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면 그 해 풍년이 들어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이밥나무로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늘만 바라보는 천답 농사에서 한 해 날씨를 알려주는 고마운 나무라 천기목(天氣木)이라 부르기도 하며 실제 우리나라의 신목으로 신성시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보릿고개를 넘고 여름이 올 때 나무에 꽃이 피면 하얀 꽃이 나무를 덮는 것이 마치 하얀 쌀밥을 연상시키므로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 메벼에서 나온 쌀로 지은 밥을 입쌀밥이라고 했고 이것이 입밥을 거쳐 이밥, 이팝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하얀 쌀밥을 연상시킨다는 하얀 이팝나무 꽃


이팝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무더기로 핀 하얀 꽃과 이름 때문에 조팝나무와 연상되었다. 

“이팝나무네요. 여름 시작될 때 잎 위에 꽃이 하얗게 펴요. 나무가 흰 꽃으로 덮이면 쌀밥을 연상시켜서 이팝나무라 해요.”

“조팝나무는 많이 봤는데, 이팝나무는 꽤 큰 나무네요.”

“조팝나무는 장미과예요. 키도 일 미터 남짓이고. 일본 사람들도 하얀 꽃 때문에 조팝나무를 두고 눈버들이라 하잖아요.”


하얀 쌀밥을 연상시킨다는 하얀 이팝나무 꽃


이팝나무는 조팝나무와 함께 나무이름에 대한 어원을 듣고 서글펐다.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굶주림에 시달려 웬만하면 다 먹을 것으로 보였나 보다. 큰 나무 위에 핀 하얀 꽃은 하얀 쌀을 닮았다고 이팝나무고 작은 나뭇가지에 핀 하얀 꽃은 좁쌀을 닮았다고 조팝나무라고 하니 말이다. 일본인들이 나무에 하얀 눈꽃이 피었다고 할 때 우리 선조들은 하얀 쌀을 연상했으니 처량하였다. 


누군가에는 하얀 눈꽃이 핀 것으로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하얀 쌀밥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아름다움이란 것은 결국 인간에게서 이로운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야 향유될 수 있다. 유홍준 교수의 『미학에세이』에서 아름다울 美미는 羊양과 大대가 합쳐진 글자로, 양은 살찌고 클수록 사람들이 더 기뻐하고 아름답게 여겼다고 한다. 심미 관념이 공리 관념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살찐 돼지보다 가냘픈 꾀꼬리가 더 예쁜 것은 당연하다.  


꽃받침은 4개로 깊게 갈라지며, 꽃잎은 흰색으로 4개다.


이팝나무에는 슬픈 전설이 몇 가지 얽혀 있다. 어느 마을에 시집온 착한 며느리가 있었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트집을 잡고 구박하며 시집살이를 시켰단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제사상을 차리다가 밥에 뜸이 잘 들었나 하고 밥알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마침 그걸 본 시어머니가 조상께 드릴 제삿밥을 며느리가 먼저 먹는다고 욕을 하며 학대했다. 억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며느리는 뒷산에 올라 목을 매어 죽었다. 훗날 그 자리에 한 나무가 자라더니 하얀 쌀밥을 닮은 흰 꽃을 무더기로 피워냈다. 사람들이 쌀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서 된 나무라 하여 이팝나무라 불렀다. 이팝나무는 흉년이 들어 아이가 굶어 죽으면 산에 묻으면서 무덤 옆에 심기도 했었다. 죽어서라도 불쌍한 아이들이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았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꽃차례는 새가지에 달리며 길이 6 ~ 10cm로 밑에 잎이 달린다.


이팝나무 줄기는 어릴 때 황갈색으로 벗겨지나 나이를 먹으면 회갈색으로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 일부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나무다. 우리나라는 공원이나 심지어 가로수에도 많이 심지만, 외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무다. 중국에서는 이 나무를 사월에 하얀 꽃이 눈처럼 핀다고 하여 사월설(四月雪)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외국에서는 하얀 눈이 내린다고 하여 눈꽃 나무(Snow flower tree)라 부르기도 한다. 

이팝나무 학명도 라틴어로 희다는 뜻의 ‘치오(Chio)’와 꽃을 의미하는 ‘안토스(anthus)’를 합쳐서 ‘Chioanthus’라 했다.


가을의 이팝나무는 굵은 콩알만 한 타원형의 열매를 맺고 겨울까지 짙은 푸른색으로 달려 새들의 먹이가 된다. 


이팝나무 줄기는 어릴 때 황갈색으로 벗겨지나 나이를 먹으면 회갈색으로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가을의 이팝나무는 굵은 콩알만 한 타원형의 열매를 맺고 겨울까지 짙은 푸른색으로 달려 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잎은 마주나기로 달리고 모양은 타원형이다.


한 겨울 이팝나무 수형


산딸나무나 떡갈나무 등을 볼 때 우리 조상은 나무 이름을 지을 때 먹을 수 있냐 없느냐에 따라 나무를 나누고 먹을 수 있으면 무엇을 닮았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보릿고개를 넘으면 얼마나 굶주림에 허덕였을까! 나무 위에 하얗게 쌓인 꽃은 배고픈 사람에게는 하얀 쌀밥이 고봉으로 얹힌 것과 같을 것이다. 조팝나무도 마찬가지다. 작은 나뭇가지에 핀 하얀 꽃은 좁쌀을 닮았다고 조팝나무라고 부른다. 

이웃 일본 사람들이 낭창낭창 흔들리는 조팝나무 가지 위로 하얀 꽃이 수북하게 피어나면 마치 가지 위에 하얀 눈이 내린 것과 같다고 하여 눈버들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조상들은 조밥이 가지마다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참으로 처량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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