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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Aug 26. 2022

노간주나무_응달평산 코뚜레나무

코뚜레나무, Juniper tree, 노가지나무, 노간주향나무

노간주나무

내리막길에서 파멸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듣는도다.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


분류

겉씨식물 > 구과식물강 > 구과목 > 측백나무과 > 노간주나무속  

서식지

아시아 (대한민국, 중국, 일본, 몽골), 유럽 (러시아)  

학명

Juniperus rigida Siebold & Zucc.  


율동공원에서 호수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응달평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은 제법 널찍하고 숲길 주변으로 습지도 잘 발달되어 있다. 숲에서 습지는 생명의 보고다. 논농사도 짓다가 묵혀두면 습지가 되는 데 그 짧은 기간에도 다양한 생명체가 제 터전을 삼는다. 하물며 깊은 산속 습지야 말할 것도 없다. 슾지를 지나가다보면 물속으로 첨벙으로 뛰어들어가 우는 놈이 있는데 그게 맹꽁이인지 개구리인지 모르겠다. 

정처 없이 가는 발길 같아도 응달평산을 거쳐 영장산 너머 맹사성 선생의 묘소를 둘러보려 했다. 


영장산 작은 매지봉에서 문형산을 바라본 전경


영장산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건국 이후에 하남 위례성에 거처를 정하고 이곳으로 자주 사냥을 나왔을 정도로 숲이 깊고 아름다웠다. 영장산이라는 산 이름도 백성들이 온조왕의 선정이 영원하게 하여 달라는 성령장천(聖靈長千)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영장산이라는 이름이 민족정기를 상징한다고 하여 산 형세가 망아지와 비슷하니 이름을 망아지 ‘구駒’ 자를 써서 구봉(駒峰)으로 바꾸었다. 구봉을 일본어로 말하면 매이지봉이라고 발음된다. 조선의 얼을 말살하는 창씨개명이 어디 사람에게만 해당되었을까! 

하지만, 광복 후에도 영장산 옛 이름 대신 그냥 매이지봉으로 계속 불렀다. 그러다 매지봉으로 정착되었는데, ‘매’란 글자가 들어갔다고 해서 이곳이 매 사냥터였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나중에는 천지개벽할 때 매 한 마리가 앉아 있어서 매지봉이 되었다는 전설이 생겼다. 

일부는 이 산을 맹산으로 부르기도 했다. 맹산은 조선 시대 세종대왕이 명재상인 맹사성에게 이 산을 하사해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 맹사성의 묘가 영장산 너머 산기슭에 있다. 


영장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주 문형산


지금은 산말이 정리가 되었다. 대한민국 관보에 이 산은 영장산이라고 못을 박아놨으니 앞으로 산이름 갖고 더 이상 왈가불가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매지봉은 영장산 중심으로 서쪽 아래 봉우리를 일컫고, 맹산은 맹산환경생태학습원이 자리잡은 영장산 북쪽 봉우리를 일컫게 되었다. 

한편, 영장산 동쪽 봉우리는 맹정승의 호인 고불을 따서 고불산으로 부른다. 고불은 한자로 ‘古佛’로 오래된 부처라는 뜻이다. 맹정승은 본명보다 맹고불로 더 많이 불렸다.


다른 활엽수 틈바구니에서 자라느라 키는 5~6미터이나 지름은 팔목 굵기밖에 자라지 못한다.


응달평산을 거쳐 맹정승 묘소로 가는 숲길은 다른 산보다 침엽수 중에서 노간주나무가 우점종이다. 드문드문 보이는 것이 아닌 노간주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났다. 물론 다른 나무들이 아름드리로 하늘 높이 자랐는데 반해 노간주나무는 굵기는 손으로 움켜쥘 정도가 대부분이다. 다른 나무 틈바구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야 했는지 나뭇가지도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하늘 위로만 쭉쭉 자라났다. 노간주나무는 제법 키가 큰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땅을 가장 적게 차지한다. 나뭇잎도 가시같이 뾰족하여 자칫 스치면 따끔하다. 가뜩이나 메마르고 가파른 땅 떼기에 그것도 느리게 자라는데 이마저 동물이 우적우적 씹어먹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노간주나무 열매로 술을 담그면 두송자가 된다.


노간주나무의 목재와 가지는 유연하고 물에 잘 썩지 않아 코뚜레나 소쿠리의 테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노간주나무의 종자 번식은 초식동물 대신 새들이 한다. 노간주나무에서 10월에 검붉게 열리는 우툴두툴한 열매는 새들이 좋아하여 쪼아 먹는다. 배부르면 남는 것을 여기저기 빈 땅에 물어다 놓아준다. 노간주나무 열매는 사람도 채취한다. 대신 술로 빗어 마신다. 쥬니퍼라는 술 이름의 쥬니퍼가 바로 노간주나무의 이름이다. 

우리나라도 노간주나무 열매로 담근 술이 향이 좋다고 인기다. 바로 두송주다. 관절염과 근육통에도 효과가 좋다고 하여 몇 알을 훑어서 주머니에 넣는다. 산에 내려가면 소주 한 병 사서 열매를 담가 두송주를 만들 요량이다. 한 달가량 숙성시킨다면 바로 드라이진이 된다. 


노간주나무는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자란다.


그렇게 산길에서 노간주나무를 헤아려보며 걷다보니 어느덧 맹사성 선생의 묘소까지 다다랐다. 조선 세종 때 황희 정승과 더불어 청백리 재상으로 유명한 맹사성 선생의 묘소에는 잘 가꾸어진 봉분과 상석, 석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맹사성의 묘 한쪽에 흑기총이라는 소 무덤이다. 맹사성은 정승을 맡았을 때에도 항상 검소하여 길을 갈 때 소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소에 관해 일화가 많은데, 흑기총도 그 중에 하나다. 흑기총은 소가 묻힌 무덤이다. 그 무덤에 가면 다음과 같은 해설판이 있다.


고불 맹사성 정승이 온양 고택 뒤 설화산 기슭에 봄 경치에 취하여 오르던 중 아이들에게 시달림을 받던 검은 짐승을 보고 아이들에게 호통을 쳐서 아이들은 달아나고 검은 짐승이 고맙다는 듯이 정승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접근하더니 집에까지 따라와 할 수 없이 하인을 시켜 기르게 하니 잘 자랐다. 그 후 고불 맹정승께서 온양에서 한양을 이 검은 소(흑기 = 黑麒)를 타고 왕래하시게 되었다. 고불이 서거하자 검은 소는 주인 잃은 슬픔을 못 이겨 먹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불이 그 얼마나 검은 소를 사랑했기에 말 못 하는 짐승도 주인이 죽자 자기도 고통을 참아가며 굶어 죽었으랴, 그래서 이 검은 소의 장례를 치러주고 이곳에 무덤을 만들어주니 흑기총黑麒塚이라 이름 지어주고 해마다 벌초를 해주고 잔을 부어 준다.  


맹사성 정승의 묘소와 그가 즐겨 타고 다니던 소 무덤 흑기총


측은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노간주나무를 코뚜레나무라고도 부른다. 

노간주나무는 잘 구부러지고 질기기도 하여 고리모양으로 만들어 소의 코를 뚫어 끼어 넣는데 쓰인다. 소의 코뚜레다. 덩치 큰 소는 어린 목동이 코뚜레를 잡고 이끌어도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잘 따른다. 소가 온순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소가 어렸을 적 코에 구멍을 내고 노간주나무 가지로 꿰이는 고통이 너무 아팠던 기억이 있어서 어린 아이가 코뚜레를 잡아 이끌어도 순순히 움직이는 것이다. 마치 어린 코끼리 발목에 밧줄로 묶어두면 나중에 덩치 큰 코끼리가 되더라도 발목에 얇은 밧줄을 걸쳐두기만 하여도 도망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있어서 노간주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작은 가시 잎은 날카로워 씹어먹지도 못한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코를 꿰뚫고 매달린 노간주나무 고리는 평생을 노예로 부려먹고 죽을 때는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속박의 징표겠다. 

    

잎은 손가락 마디보다 조금 긴 정도이고, 끝이 날카로워 함부로 만지면 마구 찌른다.


시골 정서를 그린다는 영화나 드라마 중 단골로 들리는 것이 코뚜레를 꿰인 소가 걸으며 내는 워낭 소리다. 움메~ 하는 소리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내는 울부짖음이리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소들에게 인간을 쫓아내면 코에 코뚜레가 사라진다고 선동하는 대목이 나온다. 소에게 코뚜레가 없는 그날까지 맞아 죽을지라도 자유를 위해 싸우자고 한다. 과연 그렇다. 


불현듯 흑기총을 보면서 소를 땅에 묻어줄 때 코에 꿴 노간주나무는 빼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노간주나무로 고통받았는데, 죽은 후에라도 편하게 쉬라며 그 징글징글 맞은 나뭇가지를 몸에서 빼주는 것이 도리일 텐데 말이다. 어쩌면 맹정승을 그리워하다 스스로 굶어 죽었다는 소가 굶겨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의심도 든다. 유교가 지배하던 시절 멀쩡하게 잘 살았을 여인네를 열녀문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핍박했던 일이(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불림; 未亡人) 비일비재한 터라 말 못 하는 소에게 충절을 강요하는 일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겠다. 


성서에서 노간주나무는 가시 많은 떨기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성경에서 멸망을 앞둔 민족의 비참한 신세를 노간주나무로 비유한다. 비옥한 땅을 빼앗기고 광야로 내쫓긴 모압 백성들은 척박한 땅에서 볼품없이 간신히 자라는 노간주나무라고 비유했다. 모압 민족은 여호와를 외면하고 '그모스'라는 신을 모셨다. 그모스는 소머리에 인간 몸을 하는 신이다. 사람들은 그모스 신을 위하여 자기 자식들을 끔찍하게도 불에 태워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결국 여호와에 내쳐진 민족은 그모스의 형상을 닮은 소가 노간주나무에 꿰여 평생을 고통받는 것처럼 광야에서 노간주나무처럼 비참하게 살아갔다.   


모압이 멸망을 당하여 그 어린이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도다.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울고 내리막 길에서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듣는도다.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 [렘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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