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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Aug 25. 2022

팽나무_수정커뮤니티센터 정자나무

달주나무, 매태나무, 평나무, Chinese Hackberry 

팽나무


볼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이 팽나무 너무 멋집니다.


분류 

 쐐기풀목 > 느릅나무과 > 팽나무속 

학명 

Celtis sinensis Pers.

분포 

중국, 일본; 경기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산발적으로 분포




수정커뮤니티센터 건립공사 중 옥상층 조경식재에 대한 실정검토 보고가 들어왔다. 당초 공영주차장 옥상층에 다종의 초화류를 식재하여 어린이 학습장으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지역 인구 분포를 고려할 때 어린이보다 어르신들이 많으니 식물 학습장이 아닌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변경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옥상층 수고 3m짜리 자작나무 5그루 식재 계획도 옥상의 인공지반 식재 토심을 고려할 때 나무 생존이 어렵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수진동 수정커뮤니티센터는 주차장과 문화집회시설이 부족한 본 도심 내에 공영주차장과 문화센터를 복합적으로 짓는 지하 1층 지상 7층 건축물이다. 현장 실사 겸 건축 현장에 들러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인근 지역을 내려다보니, 나무 한 그루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수정커뮤니티센터 옥상에서 바라본 도심.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한때 이곳은 영장산 남쪽 산기슭으로 숲이 우거진 동네였다. 수진동이라는 이름도 세종대왕 아들 평원대군 묘지와 그 묘소를 관리하는 수진궁이 이곳 산속에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1973년 성남시가 서울의 위성도시로 조성되면서 영장산 기슭부터 단대천까지 울창했던 수목들은 모두 벌채되어 민둥산이 되었다. 도로나 상하수도 같은 필수 기반시설이 없는 황무지에 사람들은 내몰리듯 이주하였다. 번번한 주택이나 사람이 다닐 길조차 없던 곳에 공원이나 녹지 같은 휴게공간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나무 한 그루 품지 못했던 마을은 아직도 그런 생채기가 남아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기억 속에서 고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마 논밭이 펼쳐진 마을 어귀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고, 그 나무 밑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농경에 지친 시름을 달래거나 소꿉친구들과 나무를 빙빙 돌며 뛰어놀던 모습일 것이다. 이곳에도 그런 휴식처가 될 수 있는 나무가 한 그루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큰 나무가 서 있고 그늘도 넉넉해 여럿이 모여도 햇살도 피할 수 있는, 때로는 새들도 쉬어가며 열매를 따 먹을 수도 있는 그런 나무. 볼 때마다 떠나온 고향도 생각나게 하는 그런 나무.         

       

거제도 유치환 시인의 기념관 옆 보호수 팽나무


문득 일전 거제도에 업무차 들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거제도에는 볼 것도 많았지만, 시간을 쪼개서 들린 곳이 청마 유치환 시인의 기념관이었다. 덩달아 그 옆에 서 있는 아름드리 팽나무까지 보는 행운을 누렸다. 수 백 년 묵은 노거수 팽나무는 시인이 태어난 방하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고 마을을 상징하는 이정표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팽나무 나뭇잎이 소리 없이 나풀거리는 모습은 시인이 노래하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었을까! 처음 마주한 팽나무 인상이 너무도 강렬하여 나무 곁에서 두고두고 머물렀다. 고향이라면 이런 나무 한 그루쯤 마을을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거제도 보호수 팽나무. 나무 나이 350년.


거제 방하마을뿐만 아니라 팽나무는 여러 마을 입구에서 수백 년 동안 지키고 있었다. 아이들은 팽나무 굵은 가지 위를 원숭이처럼 오르내리며 놀았다. 초여름 팽나무에 열매가 열리면 아이들은 열매를 따다가 팽총을 만들기도 했다. 가을이 되어 팽나무 열매가 익으면 달콤한 맛이 나는데 배고픈 아이들이 따먹을 수 있었다. 

팽나무가 아이들에게만 놀이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 든 어른들에게도 팽나무는 자주 찾는 장소였다. 팽나무 아래서 장기나 바둑 한판 둘 수 있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들이켤 수도 있었다. 팽나무가 느티나무와 함께 정자나무로 많이 불린 이유다. 팽나무야말로 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인 것이다. 

사람만 모인 것도 아니다. 팽나무의 열매는 달콤하여 아이들뿐만 아니라 새들도 즐겨 찾는다. 팽나무 학명(Celtis sinensis Pers.) 중 속명 celtis는 베리 같은 닷 맛의 열매가 열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팽나무가 새들을 불러들이면 이곳 주민들도 새들의 아름다운 지저귐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팽나무 잎은 어긋나기로 달걀 모양에 긴 타원형이다.


수정커뮤니티센터 옥상조경 랜드마크는 기존 자작나무 대신 팽나무로 선정하였다. 

팽나무 뿌리가 잘 뻗을 수 있도록 토심을 깊게 하는 마운딩 플랜트도 도입했다. 주변에 조팝나무와 화살나무 같은 관목도 심고 돌단풍과 애기기린초, 수호초 같은 지피 초화도 심어 교목-관목-초본의 다층구조 식재지로 조성하였다. 나무 아래 오가는 길도 인조화강블럭대신 화강석 판석으로 포장하여 자연미도 고려했다. 명실상부 이 마을 하늘에 도시숲이 만들어진 것이다.      


수정커뮤니티센터 건립공사 및 옥상층 조경 식재 모습


팽나무 이름의 연유는 다양하다. 팽나무 열매가 '팽'하고 소리 내며 날아가서 팽나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째 어설프다. 팽이버섯이 자라는 나무라고 해서 팽나무라는 말도 있지만, 누구는 팽이버섯이 팽나무에서 나는 버섯이라서 팽이버섯이라고 한다. 또, 팽이란 말의 어원이 ‘패다’, ‘피다’에서 온 것이라 이삭이 패고 꽃이 피는 나무라는 뜻에서 팽나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럼 당최 꽃도 피지 않고 이삭도 패지 않는 나무가 있단 말인가? 여러 이야기 중 팽나무가 중국에서 팽목(憉木)으로 불리기 때문에 '팽'의 음가를 따왔다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다.      


팽나무 열매는 붉은색이 강한 노란색으로 10월에 성숙한다.


팽나무 잎은 가을에 곱게 물이 든다. 


오래 사는 팽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목으로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다. 팽나무는 한자로 박수(朴樹)라고도 한다. 굿을 하는 남자 무당을 박수무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팽나무(朴樹) 아래에서 굿을 하기 때문이다. 팽나무는 땅과 바다도 이어준다.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닷배가 들락거리는 포구(浦口)에 팽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팽나무는 우리나라에 전역에 두루 잘 자라지만, 중남부 지방 특히 바닷가 근처에서 잘 자란다. 바닷가 소금기 많은 바람 속에도 잘 자라서 예전부터 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많이 심었다. 바닷가 근처 포구엔 아름드리 커다란 팽나무가 있기 마련이고 어부들은 팽나무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를 묶어두곤 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팽목항도 항구에 팽나무가 많아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창원의 팽나무 [산림청 보도자료]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나온 창원 팽나무가 화제다. 여기도 바닷가 근처인데, 바다와 땅이 맞닿는 지점에서 엄마와 딸이 만날 수 있도록 팽나무가 서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끄니 문화재청에서 드라마상 천연기념물로 설정된 창원 팽나무를 진짜 천연기념물로 지정한다고 한다. 드라마까지 출연한 팽나무는 수령이 약 500년이고 나무 높이는 16m에 이르고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노거수인 만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도 하등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우영우 변호사가 말한 대사지만, 팽나무는 

볼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팽나무는 너무 멋진 나무다.”            

            

한 여름 수형이 아름답게 잡힌 팽나무


한 겨울에도 기품을 잃지 않는 팽나무


뒷이야기 하나. 

팽나무를 심은 수정커뮤니티센터는 성남시 제3회 하늘정원상 옥상 녹화 우수건축물로 선정되었다.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미세먼지 저감과 열섬현상 완화 효과를 볼 수 있는 녹색공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뒷이야기 둘. 

팽나무와 여러 관목을 심은 까닭은 이웃 주민들이 새소리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정작 본 건물이 공영주차장이었기에 새소리는 커녕 차량 소음으로 시끄럽다는 소리만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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