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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Aug 30. 2022

중국굴피나무_만만디 만만디

중국굴피나무, Chinese Wingnut , 化香樹

중국굴피나무

중국굴피나무 꽃말은 인내력. 
꽃말처럼 만만디(慢慢地)로 우리 땅의 주인이 된다.


분류 

 가래나무목 > 가래나무과 > 개굴피나무속 

학명 

Pterocarya stenoptera C.DC.

분포 

중국, 미국, 일본 등 세계 도처, 경기 이남



탄천의 한 지류의 여수천 상탑교에서 내진보강을 할 때다. 공사내용은 지진에 취약한 교량의 내진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교량을 인상하고 기존 포트 받침을 내진 받침으로 교체하는 공사다. 다리를 들어 올린다고 하지만, 인상 높이는 3mm에 불과하다. 그래도 차량과 사람들이 오가는 교량을 들어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안전관리를 위해서라도 상탑교에 종종 내려가곤 했다. 

날도 더운 때라 다리 밑이 시원하겠지만, 교각 코핑 부위를 깨고 철근도 용접하느라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 있곤 했다. 여수천 하천 폭은 그리 넓지 않아 나무 한 그루가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그 나무는 아름드리로 하늘을 향해 나뭇가지를 쭉쭉 뻗어 수형이 멋졌다. 잎 또한 아까시나무와 비슷하고 무성하여 눈부신 여름 햇살을 가리는 효과가 뛰어났다. 열매는 서어나무처럼 길고 가지런히 내려앉은 모양이 보기 좋았다. 나이 지긋한 현장소장이 그 나무를 굴피나무라고 했다. 자기들도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 이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힌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굴피나무가 이렇게 생겼구나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었다. 

야탑동 여수천 언저리에 자라난 중국굴피나무


굴피나무는 굴참나무와 항상 같이 언급되던 나무였다. 산간지방 지붕재료로 쓰이던 굴피는 통풍도 되면서 방수와 보온효과가 커서 ‘기와 천년 굴피 만년’이란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굴피는 굴피나무의 껍질이 아니고 참나무과 굴참나무 껍질(皮)이란 말을 자주 들었다. 대신 굴피나무는 껍질(皮)로 그물을 짜는 나무라는 뜻인 그물피나무가 굴피나무로 변한 것이다. 굴피나무 껍질이 물에 썩지 않고 질긴 성질 때문에 물고기를 잡는 그물로 종종 쓰였다.


그런데 암만 보아도 나무가 어째 수상쩍다. 특히 열매가 이상하다. 도감에서 본 굴피나무 열매는 작은 솔방울 모양으로 피침 형태를 띠었다. 반면 상탑교 옆에 서 있는 나무 열매는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모양이다. 게다가 굴피나무는 중부지방에서는 요즘 보기 힘들다고 했다. 다시 알음알음 물어 확인해보니 그 나무는 굴피나무의 사촌뻘 되는 중국굴피나무라고 했다. 굴피나무에 비해 잎사귀 옆에 날개가 있고 긴 열매 이삭이 아래로 자라고 이삭 잎이 변한 날개가 있다고 한다.      

나무 씨앗은 길이 20~30cm의 과수에 달리고 달걀 모양으로서 양쪽에 날개가 있다.


중국굴피나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나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왠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나라 토종인 굴피나무가 점점 사라지는 데 반해 중국굴피나무는 1920년대에 중국에서 북한 신의주로 넘어온 뒤부터는 우리나라 전역으로 퍼졌단 소리를 듣고 더욱 그랬다. 그리고 500년간 지켜온 우리나라 대표 숲 광릉숲에서 중국굴피나무를 한참 베어낸다는 소식도 들었다. 국립수목원에 외래종인 중국굴피나무가 생태계를 교란할 정도로 너무 빠르게 자라나기 때문에 자연 생태를 보전하기 위해서 베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나무껍질은 홍갈색인 중국굴피나무는 높이가 30m까지 자란다.


중국굴피나무 생장 속도는 줄기 두께가 1년에 2cm까지 두꺼워질 정도로 빠르다. 높이도 30m까지 이를 정도로 크게 자라니 주변 작은 나무를 고사시킨다. 물을 좋아하여 하천 주변에 잘 자라는데, 나무가 워낙 크게 자라다 보니 하천 폭을 좁혀 비가 많이 내리면 물 흐름을 막는다. 이렇게 하천의 유수 소통 능력에 지장을 초래하면 하천 양안으로 물이 범람하는 요인이 된다. 

하천관리 기관은 우기 이전 하천의 유수를 가두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장애물을 정리하는데, 하천 제방이나 하상에 자라난 나무들도 유수 지장목이라 하여 제거하는 사업을 종종 벌인다. 이 시기에 중국굴피나무가 큰비가 오기 전에 베어내기도 한다.      

물을 좋아하는 중국굴피나무. 장소는 분당천 언저리.


사람 마음이 참 갈대같이 줏대 없다. 

나무 이름을 듣기 전에 하천 변에 아름드리나무로 커다랗게 자란 나무가 참 인상적이고 멋있었다.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이 채 100년도 안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 서울 종로에 있는 보호소 중 하나가 중국굴피나무로 수령이 400년 넘었다. 종종 중국굴피나무가 크게 자라고 수형이 귀족적인 멋을 느낀다고 하여 공원에 심기도 한다. 줄기가 곧고 아름다우며 생육도 빨라 이른 시일에 울창한 산림을 조성할 수 있다. 종종 개인 블로그에도 산책 중 우연히 만나는 중국굴피나무가 아름답고 멋지다는 품평이 올라오곤 했다. 

사실 중국에서 넘어온 수목이 한두 가지인가! 사람이야 국경을 나누어 민족과 인종을 나누지만, 나무에 그런 분류가 참 부질없다. 그렇지만, 중국굴피나무를 안 뒤로 그 나무 그늘에 머문 적이 없었다. 행여나 여수천 근처 가죽나무에서 진을 빨고 있는 중국매미라도 마주칠라 그 나무에 소원해진 감정은 숨길 수 없었다.     

비옥하고 습기가 많은 토양을 좋아하며, 내한성이 크고 양지나 음지에서 모두 잘 자란다.



올해 8월에 탄천에 기록적인 강우를 기록했다. 최고 강수량이 500mm에 육박해 탄천이 범람하고 지천도 물에 잠겼다. 탄천 내 설치된 모든 시설이 거친 물살로 피해를 보았다. 정원처럼 탄천에 심은 벚나무와 느티나무 대부분 갈대처럼 나무줄기가 꺾인 채 쓰러졌다. 웬만한 거센 물살에도 잘 버티던 버드나무가 특히 피해를 많이 봤다. 줄기가 부러지거나 아예 뿌리째 뽑혀 떠내려간 버드나무도 많았다. 물가에 잘 사는 버드나무는 하늘하늘 유연한 나뭇가지로 바람결에 잘 날리더구먼, 어째 물결에 그리 허망하게 꺾여 죽을 줄 몰랐다.    

  

이번 홍수에 탄천에는 버드나무가 뿌리째 뽑혀나가고 중국굴피나무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홍수에도 끄떡없는 나무가 있었으니 바로 중국굴피나무였다. 여수천에 멋지게 자라난 중국굴피나무 한 그루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홍수가 난 뒤에야 우리나라 하천에 중국굴피나무가 무척 많이 자라났다는 것을 눈치챘다. 

비가 멈춘 후 다시 찾은 탄천 언저리 나무들이 뿌리 뽑힌 그 자리에 중국굴피나무의 씨앗이 가득 고여있었다. 비가 오기 전 나뭇가지마다 열매가 다닥다닥 있었는데, 비바람에 모두 씨앗들이 흩뿌려졌다. 그것도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씨앗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곧 발아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조만간 우리나라 모든 하천에는 중국굴피나무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     

탄천변 우람하게 자라난 중국굴피나무. 탄천 범람 후 듬성듬성 보이는 나무가 모두 중국굴피나무다. 


중국굴피나무 꽃말은 인내력, 만만디(慢慢地)다. 거대한 대륙 오랜 역사에서 사람이나 나무가 터득한 지혜일 거다.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고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일을 도모한다. 그 나라 작별 인사도 ‘천천히 가세요’라는 뜻의 만쪼우(慢走)다. 아무리 중국굴피나무를 많이 베어낸다 한들 무수한 씨앗들이 사방에 흩어지고 발아하는 것은 어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고유 수종은 잦은 호우와 하천 범람으로 이 땅에서 배겨내질 못한다. 앞으로 기상이변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빈발할 터, 그 틈을 헤집고 중국굴피나무 같은 생명력이 강한 외래수종이 널리 퍼지며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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