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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Sep 20. 2022

칡_갈마치고개 사랑의 한숨

분갈, 葛, Kudzu Vine, arrowroot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분류

장미목 > 콩과 > 칡속

학명

Pueraria lobata (Willd.) Ohwi

개화기

8월

분포

우리나라 전국 산야, 말레이시아, 인도, 중국, 일본, 극동러시아


갈마치고개 정상 부근에는 야생동물 이동통로가 있다. 광주와 성남을 잇는 갈마치 도로로 인하여 단절된 야생동물의 이동로를 복원하고 생태 녹지축을 연결하는 목적이다. 도로는 왕복 2차선이나 어두컴컴한 밤중에 고라니가 자주 뛰어다니다가 로드킬을 많이 당한 곳이기도 하다. 원래 조심스러운 야생동물의 행태로 인하여 사람이 다니는 인도교는 되도록 병행해서 설치하지 않지만, 고개를 오르내리는 수고로움을 생각해서인지 사람도 동물과 같이 다닐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갈마치고개 생태통로

다만, 동물과 사람이 다니는 길 사이로 높다란 나무데크를 설치하여 간섭되지 않게 했다. 그런데 사람 다니는 길이야 제초도 하고 그러지만, 그 통나무 울타리로 슬금슬금 넘어오는 것이 있으니 바로 칡이다. 칡은 생명력이 강한 덩굴식물로 다른 나무들을 옥좨 자라면서 영양분을 모조리 빨아먹는다. 나무를 휘감아 올라가면서 칡의 잎사귀가 넓고 많이도 자라 칡 잎 아래 식물들은 햇빛을 못 받아 결국 죽고 만다. 칡이 무성하게 자라면 주변 식물들이 고사하여 그곳은 금세 황폐해지어 산림청에서는 유해식물로 지정하고 칡은 베어낸다. 아마 생태통로 너머는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므로 그곳은 칡이 굵은 덩굴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칡은 성장 속도가 빨라 한 계절에 18m까지 자라기도 한다.


이곳 갈마치고개는 옛날에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도중에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여 갈증을 풀어준 뒤 다시 길을 떠났다고 하여 갈마치 또는 갈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는 백제 기마병들이 훈련할 때마다 고개가 가팔라 말조차 목말라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가끔 칡이 많은 곳이어서 갈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때 지명에 깃든 우리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면서 원래 ‘목마를 갈(渴)’자 대신 아무런 의미 없는 ‘칡 갈(葛)’지를 강제로 쓰게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칡 갈(葛)을 풀이하면 풀(艸)과 갈(渴)로서 물이 적은 곳에 자라는 풀이라는 뜻이 되긴 한다. 칡뿌리는 깊게 뻗어 건조한 곳에서도 물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거친 환경이라도 칡은 잘 자란다. 

칡의 꽃은 붉은빛이 감도는 자주색 꽃으로 늦게 피며 기다란 총상꽃차례 모양이다.


비단 갈현이라는 지명뿐만 아니라 갈마치고개 너머 영장산을 넘으면 나오는 동네 구미동도 날부터 마을 뒷산 모습이 거북의 꼬리 부분이라서 구미(龜尾)라고 불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곳의 명당자리에 쇠말뚝을 박아 산혈을 끊어버리고 구미(九美)라고 고쳤다. 역시 고장의 유래를 알 수 있었던 거북 구(龜) 대신 그저 의미 없이 쓰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아홉 구(九)자로 바꿨다. 거북이는 예로부터 불로장생한다는 십장생 중 하나로 용, 봉황, 기린과 함께 신성시하며 풍수적으로 거북을 닮은 지역은 명당자리로 여겼다. 옛사람들은 일부러 마을에 연못을 만들기도 했는데, 거북이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기도 했다. 


잎은 3출엽으로 소엽은 마름모 모양인 낙엽 활엽 덩굴식물이다.

일제에 의한 동네 이름 한자 바꿔치기는 거북 구(龜) 말고도 많다. 전북 장수군 용계마을은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잠이 들었다가 왜적이 쳐들어왔을 때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 왜적을 무찌른 곳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왜군을 물리쳤다는 그런 일화를 지우기 위해서 용계(龍鷄)마을 이름 중 닭 계(鷄)자를 시내 계(溪)자로 바꾸어 용계(龍溪)마을로 개명했다. 마을 이름은 우리 조상들이 지리와 역사를 바탕으로 남겨 놓은 지혜와 문화의 상징인데 일제는 이런 식으로 아무 뜻도 없는 글자로 바꿔치기하며 마을의 정체성을 훼손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구미동에서 대지산 너머 문수산 기슭에 가면 정몽주 선생의 묘소가 있다. 이성계 셋째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를 찾아가 조선을 건국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그를 회유하려 칡을 소재로 시조를 읊었으니 그 유명한 하여가다.     


잎은 3출엽으로 소엽은 마름모모양인 낙엽 활엽 덩굴식물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하여가]


이에 포은 정몽주 선생이 답한다.


이 몸이 죽고 또 죽어 골백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야 있건 없건
임금님께 바치는 충성심이야 변할 리가 있으랴? [단심가]     
용인시 모현면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경기도 지방문화재 제1호)

끝내 선죽교에서 정몽주 선생은 고려의 충신으로서 피를 뿌리고 죽었지만, 그의 충절에 탄복한 세종대왕은 정몽주 선생을 삼강행실도의 ‘충신전’에 그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방원과 정몽주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의가 달라 심한 갈등을 일으키다가 끝내 만수산 드렁칡이 대쪽 같은 곧은 나무를 칭칭 감아 죽여버리고 말았다. 갈등이란 말도 칡과 관련 있는데, 갈등의 ‘갈’은 칡을, ‘등’은 등나무를 가리킨다. 칡은 나무를 왼쪽으로 꼬면서 감싸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꼬면서 감싼다. 한 나무에 칡과 등나무가 같이 자라면 둘이 서로 부딪히며 잘 자라지 못한 것에서 유래한다. 

칡은 산기슭 양지쪽에 나며 햇볕을 잘 받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


갈마치고개 너머 숲길 옆에는 지난 태풍 때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많이 쓰러져 있었다. 생채기 난 숲은 어김없이 칡덩굴이 쓰러진 나무를 시작으로 꼿꼿하게 자란 나무까지 칭칭 감싸며 올라갔다. 나무 위까지 올라간 칡 줄기는 더 이상 지지할 것이 없어도 뱀이 똬리를 틀 듯 억센 줄기를 둘둘 말고 자기 몸에 의지하여 올라가고 있었다.

칡은 덩굴식물로서 낙엽성 관목이나 여러해살이 풀처럼 자라고 땅속줄기나 종자로 번식한다.


칡의 그런 왕성한 번식력에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칡은 뿌리에서 여러 줄기가 나와 사방으로 퍼지다가 줄기 촉수에 닿는 순간 무조건 붙잡고 하루에 30㎝까지 자라며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기어코 나무를 말라죽게 한다. 식물 생태계의 무법자로 악명이 높은 칡이지만, 우리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는 구황작물로, 때로는 삼태기 같은 생활용구로 널리 쓰이는 아주 이로운 식물이었다. 우리가 몸이 떨리고 열이 날 때 해열제로 먹곤 했던 갈근탕이 바로 칡뿌리를 사용한 약재다. 뿌리의 녹말로 갈분 국수로 만들어 먹고 즙을 짜서 마실 수도 있었다. 칡 줄기도 어릴 때는 털이 많고 부드러우나 자라면서 털이 없어지고 매우 질겨 다리를 놓고 배를 만들 때 밧줄로 사용할 수 있다. 여름에 개화하는 꽃은 또 어떤가! 한 뼘 크기로 붉은색이 도는 홍자색으로 고고하게 곧추선 꽃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향기 또한 진하여 벌 나비가 칡꽃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산속의 진주라고 불리는 칡꽃에는 아름다운 꽃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꽃은 8월에 개화하고 홍자색으로 길이는 18 ~ 25mm이다. 


옛날 가야시대 도공에게 딸 설희와 제자 바우쇠가 있었는데 신라의 침공으로 전쟁이 반발했다. 전쟁터로 끌려간 바우쇠는 가야가 패전하면서 소식을 알 수 없었고, 설희는 일편단심 바우쇠만 기다리며 기도했다. 몇 년 후 한쪽 팔이 불구가 된 바우쇠가 돌아왔고 설희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며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 사랑을 키워갔다. 사람들은 그들을 ‘칡넝쿨 부부’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설희는 칡꽃 아씨라고 불렀다. 그들은 심성도 고와 나라에 흉년이 들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여 나중에 칡넝쿨 부부가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은 해마다 칡꽃이 피면 여인들은 머리에 칡꽃을 꽂고 그들 부부를 기리기도 했다. 

가을에 익는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 또한 산속 굶주린 새들의 먹이가 된다. 이런 고마운 칡이 과연 생태교란종으로 유해식물이라 제거해야만 하는 것인지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참, 그러고 보니 칡의 꽃말은 ‘사랑의 한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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