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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l 13. 2021

물박달나무_누더기 안 고운 속살

black birch, Dahurian Birch,소단목,小檀木

물박달나무

너덜너덜 누더기 옷에 감춰진 분홍빛 속살
아무리 감추어도 너의 아름다움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분류

참나무목 > 자작나무과 > 자작나무속  

학명

Betula davurica Pall.  

분포지역

한반도(전국, 주로 백두대간), 일본, 중국, 몽골, 극동러시아  


검단산에서 망덕산까지 능선 따라 올라가는 길이 은근히 사람 힘을 빼놓는다. 산길은 완만한 것 같지만 해발 534m의 검단산과 500m 망덕산 두 산 정상을 잇는 산길에 고개가 있어 오르락내리락하니 지칠 법도 하다. 

수고로움 끝에 망덕산을 오르면 정상에서  하늘 아래 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풍경을 찬찬히 훑어보니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를 알겠다. 아마 정상에서 세상을 발아래 내려다보기 위함이 아닐까? 높은 곳에서는 작은 골목마다 이익을 구하며 아웅다웅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망덕산 아래 조망점에서 바라본 광주.


산 밑에서 바람이 불어 올라와 덥혀진 몸을 시원하게 해 준다. 망덕산 정상에는 여러 벤치와 테이블이 갖추어져 있어 시원한 바람도 맞을 겸 잠시 쉬어 간다. 여기도 산 정상이라 정상석이 놓여있고 돌은 자연스러운 곡선미로 아담하게 설치되어 있다. 비록 크기는 작아도 색이 검은색이라 그런지 사뭇 위엄이 있다. 

여기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가면 두리봉이 나오고 그 산을 거쳐 군두레봉, 장작산, 희망봉, 용마산을 지나 마지막 검단산까지 이르면 한강이 나온다. 이 숲길이 바로 한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검단 지맥이다. 


해발 500m 망덕산 정상


망덕산에서 검단산으로 가는 검단 지맥 숲길 식생 대부분 참나무류 낙엽활엽수다. 신갈나무, 떡갈나무가 우점종으로 키 큰 나무들이 쑥쑥 잘 자라 숲이 무척 우거진 모습이다.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하다. 더운 여름, 산에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망덕산 아래 숲도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참나무가 지배하는 숲이지만, 용케 물박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물박달나무. 이름은 생소하지만, 한번 보면 잊지 못한다. 나무껍질은 얇은 종잇조각이 지저분하게 붙어있는 것처럼 보여 나무가 무척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망덕산 아래 물박달나무 군락지

 

물박달나무는 박달나무와 개박달나무와 같이 자작나무 무리에 속한다. 자작나무가 얇은 종이처럼 껍질이 벗겨진다면 물박달나무는 껍질이 비늘 조각처럼 툭툭 떨어진다. 그리고 자작나무 표피가 하얗고 윤도 나서 예쁘게도 보이지만, 반면 물박달나무는 그냥 두꺼운 종이조각이 물먹은 것처럼 너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느낌이다.  


물박달나무 높이가 20m에 달하고 곧게 자란다.


물박달나무 잎은 어긋나기로 자라며 모양은 달걀 모양이다. 숲길을 거닐며 몇 번을 두고 보았지만, 꽃은 보기 어렵다. 20m까지 크게 자라는 나무라 꽃을 살펴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꽃은 5월에 피며 수꽃 이삭은 길이 6~7cm이고 이삭이 아래로 처진다. 

당연히 열매도 있는데 길이 2 ~ 4cm로 원통형이며 9월 하순에 익으며 10월에 떨어진다.      


잎은 어긋나기이며 달걀 모양이다.


비단 생김새뿐만 아니라 물박달나무가 갖는 이미지는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옛 속담에 ‘반드럽기는 삼 년 묵은 물박달나무 방망이’가 있는데 매우 뺀질거리고 약삭빠른 짓만 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물박달나무를 삼 년 동안 가지고 다니면 나무가 단단하고 반들반들해져 손에 잘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매끈해지기 때문이다.   

 

회색이나 갈색 혹은 회갈색의 수피는 너덜너덜 일어나 있다.


물박달나무의 껍질은 예전에 염료, 벽지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 자작나무와 같이 얇게 벗겨진 껍질에 종이가 발명되기 전 사람들이 문자를 기록했다. 불에도 잘 타고 자작나무처럼 째작째작 소리가 난다.


나무껍질이 덕지덕지 붙은 모양 물박달나무


추위에 강한 물박달나무는 경기도나 강원도 같은 중부 이북에서 자라난다. 산이 높을수록 물박달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보통 잎과 열매로 나무를 구분하지만, 물박달나무의 독특한 수피 때문에 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이라도 물박달나무는 금세 알아볼 수 있다. 


껍질은 염료나 벽지 등으로 사용한다

   

물박달나무는 고로쇠나무처럼 나무에서 수액을 뽑아낼 수 있다. 수액은 뿌연 색을 띠면서 단맛이 나고 칼슘과 미네랄 성분도 풍부해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수액이 생기는 원리는 밤에 온도가 떨어지면 나무뿌리는 땅속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나뭇가지에 수액을 채운다. 그러고 낮에 온도가 상승하면 수액이 팽창하는데 이때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수액이 압력 때문에 분출되는 것이다. 


추운 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물박달나무


물박달나무를 포함한 자작나무 무리는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다. 추운 곳에서 나무가 생존하기 위해서 자작나무 무리는 공통적으로 얇은 나무껍질이 겹겹이 쌓여 줄기를 감싸고 있다. 그 이유는 나무껍질에 기름성분이 많고 이 성분이 나무의 세포 속 수분이 추위에 어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서다. 여러 겹의 나무껍질은 추위뿐만 아니라 강한 햇빛으로부터 수분 손실을 막아주는 자기 방어 역할을 한다. 


물박달나무 목재는 가구, 건축 토목재, 공예품, 조각 작품,  합판 재료로 사용


물박달나무 첫 이미지는 지저분한 껍질이지만, 그 껍질이 있기에 다른 나무들이 살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에서도 물박달나무가 잘 자랄 수 있다. 

그리고 간혹 껍질이 벗겨지고 나무의 속살이 나타날 때가 있다.  세상에 어느 나무가 이리 부드럽고 고운 빛을 띨 수 있을까? 그래서 이런 아름다움을 누추함으로 감추었구나 싶기도 했다. 단단한 목재로도, 나무껍질로도 그리고 수액으로 사람에게 베풀기만 하는 물박달나무는 사실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어 했다. 감추고 싶어 했다. 우리가 나무가 주는 이로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나무에게는 불행한 수탈이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껍질이 벗겨지면 고운 살색의 수피가 나타난다.


그래서 물박달나무를 보면 영국 스톤헨지에서 사형당한 테스가 계속 떠오른다. 자신을 버린 에인젤을 기다리기 위해 눈썹을 깎고 누더기 옷을 입으며 걸인처럼 지냈던 테스. 자신의 아름다움을 뭇 사내들에게 감추기 위해 자신을 추하게 만들고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테스. 하지만, 운명은 테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에인젤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남의 아내가 돼버렸다. 그것도 그토록 미워했던 알렉의 부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테스. 아름다움은 감추어도 드러나기 마련인가. 

때론 아름다움이 축복이 아닌 비극이 될 수 도 있다는 것. 지저분한 나무껍질 물박달나무를 볼 때마다 드는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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