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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Sep 25. 2021

박쥐나무_청계산 마왕굴앞박쥐골

남방잎,남방다리,누른대나무,Trilobed-leaf alangium

박쥐나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모든 것에는 존재의 까닭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찾게 된 나무. 박쥐골샘 박쥐나무

분류                  

현화식물문 > 목련강 > 층층나무목 > 박쥐나무과 > 박쥐나무속                      

서식지                  

산지의 숲 속                      

학명                  

Alangium platanifolium (Siebold & Zucc.) Harms var. trilobum (Miq.) Ohwi                

분포                  

우리나라 전국.  동아시아 온대지역 


모든 것에는 모든 이유가 있다. 존재든 사건이든. 단지 내가 그 코드를 해석을 하지 못했을 뿐 모든 것은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메리칸 인디언에게는 지구 상의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목적이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질병이 발생했을 때도 병을 치료하는 약도 함께 생겨난다고 믿었다. 당연히 태어난 생명에게도 저 나름대로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소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자기 자리가 있고, 그렇게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했을 때 맞춰진 퍼즐. 그 마지막 퍼즐이 바로 박쥐나무였다. 박쥐나무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숲길을 걷다가 보기만 해도 그 기쁨은 여전하다. 


나뭇잎이 박쥐의 날개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박쥐나무


청계산 울창한 산림에는 많은 수종이 있고, 숲길 언저리에는 다양한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다. 계곡물이 맑고 맑아 물이 푸르게 보인다는 청계산 최고봉은 망경대다. 날이 맑으면 개성도 볼 수 있다고 하여 고려말 유신들은 이 산에 올라 눈물을 짓곤 했다. 망경대와 이어진 석기봉은 흙산인 청계산에서 유독 거친 바위로 연결되었고, 낭떠러지 벼랑 아래에는 한 동굴이 있다. 

동굴 이름은 마왕굴. 오막난이굴이라고도 한다. 고려가 멸망하기 직전 맥이라고 부르는 괴물처럼 생긴 짐승들이 울면서 떼를 지어 이 굴로 들어갔다고 하여 맥굴로 부르다가 막굴 - 망굴 - 마왕굴로 변해진 이름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망경대에 옛날 망루가 있어서 망경대 망루 아래 동굴이라 하여 망굴이라고 부르다가 마왕굴로 변했다고도 한다. 


망경대와 연결된 석기봉 바위


숲이 울창하고 산이 깊기로 유명한 청계산에서 절벽 아래 자리 잡은 마왕굴은 최고의 은신처였다. 고려말 조견 선생이 은신하기도 하였고 조선 연산군 때는 폭정을 피해 정여창 선생이 마왕굴에 은신했다고 한다. 굴 안에는 박쥐도 많이 살고 있어서 박쥐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혹시 박쥐동굴 앞에 박쥐나무 발견하면 참 재미있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박쥐나무를 찾기 위해 마왕굴로 나섰다.


청계산 절벽 아래 마왕굴. 박쥐골이라고 부른다.


마왕굴로 가기 위해서는 석기봉 정상에 서야 한다. 동쪽으로 남한산성이 보이고 남쪽으로 광교산이 보인다.  석기봉에서 내려다본 산하는 동녘과 서녘의 하늘 아래다. 지나쳐온 매봉 정상에서 북쪽으로 북한산이 보였고 서쪽으로는 관악산을 바라보았다. 석기봉 정상 바위에 앉아 홀로 하늘 아래 있다 보면 신선 부럽지 않을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다. 

큰 바위 아래 된비알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바위가 갈라진 틈으로 커다란 석굴을 보게 된다. 굴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니 사람 하나 몸을 숨길만 했다. 안쪽 돌무더기 헤치며 바위 위를 보나 박쥐는 보이지 않았다. 안쪽 더 좁고 가파른 바위틈 안에 있겠다 싶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할 겸 석굴 안에 앉아 있자니 굴 앞으로 박쥐나무 잎사귀가 햇빛을 받아 하늘 거렸다. 

날개 펼친 박쥐를 닮은 나뭇잎을 가졌다는 박쥐나무. 우연일까? 필연일까?


마왕굴 앞에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박쥐나무 잎사귀


햇빛을 받은 얇은 나뭇잎 잎맥이 언듯 비친다. 끝이 뾰족한 잎 모양은 흡사 박쥐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것 같다. 나무 사이로 잎이 바람에 흔들거리니 마치 박쥐가 나무를 피해 이리저리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밤중이 되면 마왕굴 깊은 바위틈에서 박쥐가 나오며 박쥐나무를 한 바퀴 돌고 날아오를 것만 같다.


박쥐나무의 잎은 박쥐의 날개와 닮아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박쥐나무는 숲 속의 키가 작은 나무다. 키가 크게 자라도 산속에서는 3m 내외다. 음지에서나 양지에서나 잘 자라며 추위에 견디는 힘도 강하다. 키 큰 나무 밑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나뭇잎이 넓적하게 클 수밖에 없다. 박쥐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온대지방에서 자라왔고 옛적부터 어린잎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했다. 줄기껍질은 말려서 새끼줄로 쓰기도 한다.


박쥐나무는 숲 속에서 키 작은 나무로 살아간다. 햇빛을 잘 받기 위해 잎은 넓다. 


박쥐나무 잎은 끝이 3~5개의 뿔처럼 뾰족하게 나와 있다.


박쥐나무 잎은 오각형 모양으로 어긋나며 3 또는 5갈래로 갈라지고 끝이 뾰족하다.

                                              

6월 더운 여름날 마왕굴 앞 박쥐나무를 찾아갔다. 어느새 박쥐 날개를 닮은 잎 아래 하얀 꽃이 드문드문 피어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하얀 꽃잎은 6장 뒤집혀 돌돌 말려있고 노란색 수술은 12개, 암술은 중앙에 한 개 비슷한 크기로 있다. 꽃은 햇살을 피하려는 듯 화관이 아래로 자랐다. 마치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꽃이 참 특이하고 어여쁘다. 

나무와 키를 맞춰 쪼그려 앉아 꽃을 감상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비단 나뭇잎만 박쥐 날개를 닮은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난 것조차 영락없이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박쥐였다. 박쥐가 햇빛을 피해 굴속에 숨듯 박쥐나무 꽃 또한 잎 아래 숨어서 자란다.


박쥐나무 꽃은 6-7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난 꽃대에 1-4개씩 피며 아래를 향해 피어난다.


박쥐는 날 수 있게 진화한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대부분 벌레를 먹기도 하지만, 열매나 꽃가루와 꽃을 먹기도 한다는데 청계산 마왕굴에 사는 박쥐는 박쥐나무 어여쁜 꽃의 꿀을 빨아먹고 살 것 같다.  박쥐는 동굴이나 바위틈 같은 격리된 곳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야행성으로 행동하며 군집생활하기 때문에 보통 수십 년 이상 살며 장수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박쥐가 보통 뱀파이어나 마녀 같은 악을 상징하는 동물이지만, 동양에서는 장수와 같이 경사와 행운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인다.  

그 이유는 박쥐 한자가 복(蝠) 자를 쓰는데, 마치 복(福) 자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박쥐는 복을 상징하여 공예품이나 가구의 장식 문양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아녀자 노리개는 박쥐 모양을 하여 복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박쥐나무 꽃은 5~7월에 잎 겨드랑이에서 황백색 꽃이 핀다.


하얀 꽃잎은 뒤로 도르르 말려있고 노란 암술과 수술 여러 가닥이 밑으로 내려오니 언듯 보면 조선시대 부잣집 마나님 노리개를 닮기도 했다. 사실 멋스럽게 치장하는 노리개가 박쥐나무 꽃 모양을 하는 것이 맞겠다. 단순히 복을 상징하는 의미 이상으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장식이다. 


박쥐나무 꽃잎은 밖으로 말리고 수술은 길게 늘어진다.


어린 순은 식용으로 봄나물로 먹을 수 있다.


박쥐나무 꽃말은 부귀. 어쩜 꽃말까지 복을 상징하는 박쥐와 같을 수 있는가 싶다. 이제 가을. 박쥐나무 열매 또한 매력적이라 하는데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청계산에 올라야겠다. 봄에는 박쥐 날개 펼치듯 날렵한 잎을 보고 여름에는 수줍게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보며 가을에는 노랗게 물드는 단풍을 볼 수 있는 박쥐나무.

이름과 달리 아름다운 박쥐나무는 집 앞마당에 가까이 두고 관상하고 싶다. 


박쥐나무 잎 앞면은 황록색이고 뒷면에는 잔털이 있다.
동굴 주변에서 뒤돌아 바라보는 박쥐나무


박쥐나무를 보면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해석할 수만 있으면. 인디언은 노래한다. 모든 것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해해여야 한다. 그리고 끌리기 위해서는 많이 노래해야 한다.


나한테 말해 봐. 그러면 난 잊을 거야
나한테 보여줘 봐. 그러면 난 기억할 수 없을 거야
나를 끌어들여봐. 그러면 난 이해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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