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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Sep 20. 2021

가죽나무_이름을 더럽힌 누명

가중나무,개중나무,Tree of Heaven, 虎目樹 ,

가죽나무

나물로 먹는 참죽나무 행세를 하지만 먹을 수 없는 가짜 죽나무.
억울한 누명을 받고서도 아무런 원망을 내놓지 않는다.
나무는 나무대로 하늘까지 다달을 만큼 잘 자라기 때문에.

분류

운향목 > 소태나무과 > 가죽나무속  

학명

Ailanthus altissima (Mill.) Swingle  

개화기

6월, 7월, 8월  

분포지역 

중국, 일본, 한국 각처에 난다.


성남시 태평동. 태평하게 잘 살라고 붙여진 이름으로 1973년 성남시가 서울의 위성도시로 태동하게 되었을 때 생겨난 마을이다. 당시 신도시 조성은 영장산 기슭 모든 나무를 벌목하고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신도시라고 불리는 곳은 도로나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도 없었고 당연히 주택도 없었다. 하물며 공원이나 녹지 같은 녹색환경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곳은 단지 황무지에 불과하였다. 

여기에 사람을 강제로 밀어놓고 나라님 근심 걱정 일으키지 말고 태평하게 살라고 만든 곳이 태평동이다. 


성남시 옛 전신 광주대단지 조성 전경. 황무지를 신도시로 위장하고 사람들에게 사기 분양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좁은 분양지라도 벽돌을 세우고 방을 마련하여 자신들의 터전을 부지런히 일구었다. 지금의 성남시가 우리나라 지자체 중 가장 빠르게 번영하고 풍요로운 도시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지금도 당시 급조된 도시의 생채기가 아직도 남아 있으니 그중 가장 아쉬운 것은 마을 안쪽으로는 제대로 된 나무 한 그루 자라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태평동과 연결된 수진동 성남 어느 한 마을. 나무 한 그루 자라날 틈이 없다.


녹색을 품지 않은 마을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나무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그늘이 되는 휴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새들이 쉬어가며 열매를 따먹기도 하는 터전이 되기도 한다. 태평동을 지날 때마다 깊은 아쉬움이 남곤 했는데, 이번에 어느 집 앞에서 제멋대로 자라난 가중나무 몇 그루를 보았다. 지평식 주차장에 세 그루가 있었고, 주차장 앞 집 좁은 화단에 커다란 가중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던 것이다. 


태평동 지평식 주차장에 자라난 가중나무. 그 앞으로 커다란 가중나무가 집 앞 화단에 자라났다.


논골에 가는 길 어느 학교 방음벽 아래 자라난 가죽나무


가죽나무는 사람들이 심어서 돌보는 나무가 아니다. 그냥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다. 옛날부터 사람 사는 집 근처면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순을 먹거나 재질을 이용할 만한 나무가 아니어서 딱히 가꿀 필요가 없었다. 다만, 추위나 건조에 강하다 보니 생육환경이 나쁘더라도 어디든 잘 자랐고, 그러다 보니 마을 이곳저곳에서 자주 마주칠 뿐이었다. 대기오염에도 강하니 요즘 미세먼지가 많고 자동차 매연이 짙은 도심지에서도 잘 자랐다. 


희망대공원 야산에 자라난 가죽나무. 빈터만 있으면 그 자리를 비집고 자라난다.


사람들이 베지만 않으면 높이 자라나 여름날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굳이 베기보다는 무관심 속에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리라. 도로 가로수 사이나 어느 공원 화단, 심지어 방음벽 근처에서도 가죽나무가 제멋대로 쑥 자라난다. 가끔 길 걷다가 난데없이 삐쭉 자라난 가죽나무를 보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되묻기도 한다. 가죽나무는 예전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다. 

어쩌면 태평동 빽빽한 주택가에서 가죽나무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했다. 


모란 쪽 대로 화단에 철쭉 뒤로 자라난 가죽나무. 심지도 않았는데 천덕꾸러기처럼 화단에 자라났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취급을 한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가죽나무를 취춘(臭椿)이라 하여 냄새나는 참죽나무라고 부른다. 가죽나무 한자 ‘저(樗)’에다 참나무를 뜻하는 ‘역(櫟)’자를 붙이면 ‘저력(樗櫟)’이라고 하여 쓸모없다는 뜻도 된다. 흔히 자기를 낮출 때 쓸모도 없는 인재라는 뜻으로 저력이라고 자신을 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 임금님께 감사 글을 올릴 대 종종 가죽나무 같은 쓸모없는 재질로 남다른 은혜를 입었다며 겸손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가죽나무를 쓸모없는 나무라고 한 데는 중국 장자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장자와 혜자가 대화를 나눌 때 가죽나무가 옹이 투성이에 꾸불꾸불 자라나 목수가 거들떠보지 않는 쓸모없는 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논골 도로 사면에 곧게 자라난 가죽나무


조선 후기 실학자 서호수가 편찬한 해동 농서에는 죽나무(樗)를 분류하면서 나무가 실하고 잎이 향기로운 것을 진저(眞樗, 참죽나무), 나무가 엉성하고 잎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가저(假樗, 가죽나무)라고 했다. 참죽나무 새순과 어린잎은 향도 좋고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여 나물로 만들어 먹었으며 특히 채식하는 스님들이 즐겨 먹었다. 반면 가죽나무는 참죽나무와 이름만 비슷할 뿐 냄새도 좋지 않고 먹지도 못해서 스님이 먹지 않으니 사람들이 가짜 중나무란 뜻으로 가중나무라 부르기도 했다.


가죽나무가 크게 자라면 높이가 20m에 달하고 줄기가 곧고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다.

   

가죽나무와 참죽나무는 죽나무(樗)란 이름을 같이 쓰고 나무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서로 한참 다른 나무다. 분류 자체도 가죽나무는 소태나무과(科)이고 참죽나무는 먼구슬나무과(科)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가죽나무는 잎에 사마귀 같은 것이 달려 있고 나무껍질이 갈라지지 않지만, 참죽나무는 잎 가장자리 톱니가 일정하고 겉껍질은 갑옷 비늘처럼 세로로 갈라져 일어났으며 짙은 흑갈색으로 매우 인상적이다. 참죽나무는 한번 보면 껍질이 매우 늠름히 위용을 갖고 있다. 목재 또한 광택이 나고 나뭇결 무늬가 아름다워 가구로는 최고급 자재로 쓰이고, 새순 또한 향긋하고 영양가가 높으니 사람들에게서 인기가 높을 만하다.  

   

참죽나무. 가죽나무와 비슷하지만, 나무껍질은 갑옷처럼 결이 깊게 갈라지고 색이 짙다.


그에 반하여 가죽나무는 참죽나무와 달리 목재 재질이 떨어지다 보니 제재하기 어려워 목수들이 찾지 않는다. 나무의 새순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서 사람들이 먹기 역하다. 자연스럽게 가죽나무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가꾸지 않는다. 오기일까? 사람들에게 외면받지만, 가죽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사람들 사는 곳 어디서든 빈 틈이 있으면 비집고 들어섰다. 나무로써 주목받지 못하다 보니 어느덧 훌쩍 키까지 커버린다. 비로소 그곳에 가죽나무가 있네 느끼게 된다. 

 

원뿔모양꽃차례는 가지 끝에 달리고 길이 10-30cm이다.

                                                         

그런 가죽나무를 태평동 주택가에서 봤을 때 어느 조경수 못지않게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요즘 나무를 평가할 때 예전처럼 목재의 재질이나 밀원으로의 쓰임새, 또는 잎 순이나 열매를 채취할 수 있는지를 보지 않는다. 과연 나무가 주는 이로움은 무엇인가!

굳이 지구 생태계에서 나무가 차지하는 중요한 지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가져다준다. 목재나 열매 등의 이익을 떠나 그 자체의 녹색생명과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존재 자체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가죽나무 열매 시과는 3-5개씩 달리고 연한 적갈색이며 얇고 피침형이다.


요즘같이 공해가 심한 도심지에서 미세먼지나 대기오염물질을 잘 흡수하면서도 생명력이 강하다면 가로수로도 안성맞춤일 것이다. 근처에서 자라나는 가죽나무는 빈 땅을 비집고 자라나 눈치 보느라 그런지 볼품없이 휘어 자라지만, 땅만 제대로 준다면 가죽나무는 가지가 옆으로 잘 뻗고 수형도 바르게 잘 자라나 제법 멋스럽게 자라나기도 한다. 멀리서 크게 자라난 가죽나무를 보면 열대 야자수 같기도 하다. 


가죽나무 껍질은 회갈색이며  나이를 먹어가면서 거의 흑갈색으로 진해지고 얕게 세로로 갈라진다.


가죽나무의 다른 이름 가짜 중나무, 가중나무, 가승목 등 우리는 낮추어 부르지만, 가죽나무 영어이름은 Tree of Heaven이다. 쑥쑥 잘 자라나 하늘까지 다달을 수 있을 만큼 높이 자라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Tree of Heaven!  사람이 거들떠보지 않은 곳에 무럭무럭 자라나 사람들에게 녹음의 휴식을 선사한 가죽나무. 가죽나무 꽃말도 '누명'인데, 가짜 나무라는 오명을 쓰고도 그 자리 지키는 가죽나무야 말로 진짜 나무다. 

     

남한산성 성곽 아래 하늘 높이 자라난 가죽나무. 이국적일 만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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