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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Aug 09. 2021

누리장나무_깨끗한 사랑

취동(臭桐),취목,누린내나무,Harlequin Glorybower

누리장나무

한 여름 숲 속에서 맡은 진한 꽃향기. 
어느 꽃나무 일까? 길섶 관목을 뒤척이다가 누리장나무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꽃향기를 맡은 것인가! 아니면 누린내를 맡은 것인가! 

분류

통화식물목 > 마편초과 > 누리장나무속  

꽃색

붉은색  

학명

Clerodendrum trichotomum Thunb.  

개화기

8월, 9월  

분포지역 

대만, 중국, 필리핀, 일본; 강원도 및 황해도 이남 전체에 분포.


8월 초 아주 무더운 날이야. 그런데 벌써 입추래. 말이 돼? 벌써 가을이라니. 

그런데 가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좀 선선하게도 느껴져. 무더운 날도 곧 물러나겠지. 늘 그랬듯이. 너도 고개를 끄덕인다면 흘러간 세월 속에서 겸손을 배우게 된 거겠지. 그렇게 시간이 가버렸네. 

어둑해지기 전 마실 나갈 겸 잠시 뒷산에 올라갔어. 산길이 가파르지 않은데도 다리에 바지가 찜찜하게 달라붙잖아. 옷 원단이 얇아서 그런지 조금만 땀을 흘려도 피부에 달라붙곤 해. 너도 더운 날은 질색이었잖아. 한여름 같이 걸을 때면 가끔 걸음을 멈추곤 했지. 내가 눈치 못 채게 땀으로 몸에 붙은 옷을 살짝살짝 털었잖아. 옷과 몸 사이 통풍시켜서 땀을 마르게 하려고 했던 거지. 그게 뭐 대수라고 몰래몰래 했는지. 모른 척했지만, 나는 그때 바람이고 싶었단다. 


검단산 오르는 사기막골. 진한 꽃향기가 나는 숲길


아. 더운 여름날 산에 올랐던 이야기 꺼냈지. 요즘같이 더운 날 산에는 꽃들을 보기 힘들어. 산에 피는 꽃들은 대부분 이른 봄에 피고 햇볕이 좀 따가워질 때면 꽃잎은 모두 지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지. 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또 다른 무리의 꽃이 늦게 피고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무더운 날 하얀 꽃을 피운 나무를 봤어. 처음에는 향기를 느꼈어. 가볍지 않은 향기였어. 진한 분 냄새? 뭔가 60~70년대 명동에 들어서면 전차가 아직 돌아다니고 그때 체크 양장 옷을 꾸며 입은 멋쟁이 아가씨가 옆을 지날 때 맡을 수 있는 향기 정도? 

범상치 않는 향기였지. 어디서 나는 꽃향기일까, 숲길 길섶을 뒤척였어. 그리고 떡갈나무 뒤로 하얀 꽃이 핀 키 작은 나무를 발견했어.  


                               누리장나무 꽃부리는 지름 3cm로 5개 갈라지며 핀다.


키 작은 관목인데도 잎사귀는 어느 교목 못지않게 제법 크더라. 색도 짙고. 이 더운 날 진한 녹색 잎에 하얀 꽃잎이 얹힌 모습을 보게 되다니 참 반갑더라. 마지막 봄꽃은 6월에 핀 가막살나무 하얀꽃이었어. 

8월에 하얗게 핀 꽃을 자세히 보니 분홍빛 감돈 꽃 속에서 야리야리한 수술이 길게 나왔더라. 그 모습을 보니 참 아름답다고 느꼈어. 향기도 좋고. 

무슨 나무일까 자세히 보니 맙소사! 누리장나무였어. 누리장나무 들어봤어? 누린 냄새가 난다고 해서 누리장나무잖아. 이 나무에는 냄새와 연관된 다른 이름들이 많아. 누리개나무, 누린내나무, 구릿대나무, 개나무. 

누린대, 구린내 같은 단어를 언듯 들어도 좋은 냄새 같진 않지? 개나무라는 이름은 이 나무에서 개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야. 

 

누리장나무 넓은 잎은 마주나기 하며 달걀형이다.


중국은 오동나무처럼 잎사귀도 큰 것이 냄새가 지독하여 냄새나는 오동나무라는 뜻의 취오동(臭梧桐)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냄새나무 취목(臭木)라고 부르잖아. 제주도에서는 아예 개똥나무라고 부른대. 

정말 민망하더라. 사람들이 구린내 나고, 누린내가 난다고 하는 그런 누리장나무를 나는 꽃향기가 좋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나마 묵직한 꽃향기를 맡았다는 생각은 어쩌면 누린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했지.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내 코는 누린내와 꽃향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가? 

   

잎 뒷면에는 털이 있고 가장자리는 밋밋한 큰 톱니가 있다.


잠시 혼란스어웠어. 누리장나무를 지나쳐 걷다가 다시 돌아왔지. 그리고 꽃향기를 다시 맡았어.

분명 다른 꽃들과는 다르지만, 확실히 고운 향기를 품은 꽃이었어. 자세히 살펴보았지. 네 눈동자를 살펴보듯 말이야. 가지 끝에 달린 하얀 꽃은 다섯 갈래로 얇게 갈라졌고, 꽃받침도 다섯 가닥 길게 갈라졌는데 살짝 핑크빛이 돌더라. 옅은 네 잎술처럼 말이야. 그리고 길게 뻗은 하얀 수술이 꼭 네 눈썹 같았어. 굳이 화장할 때 눈썹을 연장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기다란 네 눈썹을 닮은 것 같아. 

누리장나무 꽃은 아름답고 향기도 고와. 확실해. 이 꽃 향기가 누린내일 리 없어. 


나무껍질은 회백색이며 줄기에서 누린내가 난다.


혹시 나무의 다른 부위에서 악취가 나는가 해서 나뭇가지를 툭 부러뜨려보았어. 코를 갖다되었지만, 그리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 같진 않았어. 이번에는 커다란 잎사귀를 나뭇가지에서 뜯어내 부욱 하고 찢어 보았지. 코를 킁킁거리며 맡았는데도 그리 누린내라고 할 정도의 냄새는 나지 않았어. 

누구는 옛날 화장실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변소 주변에 심었기 때문에 누리장나무라고 한다고 했던 것 같아. 누린내를 잡는 나무가 정말 맞는 표현일까?

 

산속 계곡 햇빛이 잘 드는 바위 사이에 잘 자란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누리장나무가 특유의 악취가 나는 것은 맞다고 하네. 그 나무에서 누린내가 나는 이유는 잎이 식감이 좋아서 곤충이나 동물이 좋아한대. 그래서 나무는 자신이 뜯어 먹히지 않기 위해서 잎 뒷면에 여러 개의 샘털에서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긴대. 피톤치드처럼 분비물을 뿌리며 자신의 잎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지. 

그런데 이름 봄에 누리장나무 잎은 수난을 당해. 사람들은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무쳐먹거나 우려서 쌈으로 먹기도 하거든.  잎의 샘털에서 풍기는 냄새도 금방 날아가서 잘 데치면 맛있는 나물이 된다잖아.


누리장나무는 내한성과 내공해성이 강하다.


꽃은 양성 꽃이며 긴 타원형이고 흰색이다 꽃받침은 홍색이 돈다.


누리장나무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꽃은 양성화로 8월에 엷은 붉은색으로 핀다.


꽃은 새가지 끝에 달리며 강한 냄새가 난다.


가을이 올 때야. 다시 찾아가 보니 하얀 꽃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붉은 열매 받침이 꽃처럼 피어났더라. 

누리장나무 열매는 검은빛이 도는 푸른색이고 말이야. 언듯 보면 붉은 꽃이 핀 줄 알겠어. 붉은 꽃에 검은 열매라. 멀리서도 보이는 강렬한 색채지. 그래서 새들이 멀리서도 찾을 수가 있나 봐. 

열매는 쥐똥나무 열매처럼 단단해 보이는 데 막상 만지면 물컹거려. 좀 더 힘을 주었더니 겉껍질이 터지면서 즙액이 툭 나오더라. 맛을 볼까 생각하다가 관두었지. 누리장나무잖아. 

혹시 알아? 그 누린내가 열매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런걸 입술에 댄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누리장나무 열매는 여자들 노리개인 브로치를 닮았다.


열매는 핵과로 둥글며 10월에 짙은 파란빛으로 익는다.


누리장나무 어린잎은 취오동이라 하여 고혈압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Clerodendrum trichotomum. 누리장나무 학명이야. 운명이라는 라틴어  클레로스(Cleros)와 나무라는 뜻의 덴드론(Dendron)이 붙여서 클레도렌드린이 되었지. 클레로스는 셀론섬에서 자라는 누리장나무 중 어떤 나무는 행운목이고 어떤 나무는 불운목이라서 무엇을 고르냐에 따라 행운과 불행이 나뉘어서 운명이라고 한다네. 누가 알겠어. 그것이 행운이고 불운인지. 지나가보니 그때가 행운이었던 것이지. 지나가면 한결 여유로워지나봐. 애련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다 괜찮게 보여. 

Trichotomumdms는 종명으로 나뭇가지가 세 갈래로 나뉜다는 뜻이야. 마편초과 식물 특징이지. 잘 보면 나뭇가지가 정말 세 갈래로 나뉘어서 자라나.

영어 이름은 더 재미있어. Harlequin Glorybower인데 할리퀸이 이탈리아 코미디에 나오는 익살꾼이잖아. 아마 벌어진 빨간 열매가 할러퀸이 쓴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닮아서 그런 것 같아.


누리장나무 열매는 취오동자라고 부르며 약재로 쓰기도 한다.


문득 숲길에서 누리장나무를 본 김에 옛 생각도 나서 몇 자 적었다.  
그리고 누리장나무 꽃말이 깨끗한 사랑이란다.
참, 나무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같아. 
물론 너도 마찬가지지만.


꽃과 열매가 아름다워 도심 내 조경용수로 식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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