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구간 태봉산길 - 깊은 산속 극상림의 원시림
태봉산길은 누비길 5구간으로 동원동 부수골 등산로 입구에서 운재산과 안산, 태봉산, 응달산을 거쳐 하오고개로 내려오는 10.7㎞ 길이의 등산로다. 주택가 골목을 차로 누비며 입구까지 들어섰다. 간간이 신호등 및 전주에 누비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동원동은 용인시와 인접한 성남시 남단에 있으며, 동막동과 원천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지명이다. 동막이란 동쪽이 막힌 곳이라는 뜻으로 탄천에서 뻗은 들판이 여기 동쪽에 자리 잡은 태봉산에 막힌 곳을 일컫는다. 혹자는 동쪽에 있는 막(幕)이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때 이곳에 막을 지어 광주시와 용인시의 경계로 삼았다 하여 붙였다고 한다.
누비길 5구간을 알리는 현판을 지나 완만한 산기슭을 들어서서 걷기 시작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안골 약수터가 나온다. 약수터 옆에는 작은 전나무를 심고 안골정이라는 정자로 한 채 있다. 그 옆에는 작은 도랑을 쉽게 건널 수 있게 목교가 만들어졌다. 주변 마을에서 약수터와 정자가 있는 산속 쉼터라 사람들이 꽤나 올 법하지만, 정자의 마루는 먼지가 가득하고 주변의 낙엽은 사람의 발자국이 닿지 않아 걸을 때마다 사각거린다.
누비길 안내판 따라 완만한 산길을 걸어가면 오가는 사람의 흔적 조차 볼 수 없다.
숲은 고요했다.
숲 사이에 난 길 위로 나무들은 거추장스럽던 잎사귀들을 털어버리고 벌거벗은 채 우뚝 서 있다. 나뭇잎은 발걸음에 채어나가지 않고 나무에서 떨어진 대로 고스란히 길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숲은 무채색으로 엄숙했으며 길은 큰 기복 없이 단조로워 등산로보다 숲 오솔길을 걷는 듯했다. 길은 걷는 데 큰 불편이 없었고 능선 따라 굽이굽이 잘 나 있었다. 여기 숲도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가 우점종이었다. 특히 상수리나무가 많이 보였다. 상수리나무는 홀로 크지 않고 끼리끼리 무리를 이루어 함께 자라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서로 햇빛을 먼저 받겠다고 줄기를 쭉쭉 늘여놔서 곧게 하늘로 뻗었다.
그늘진 나무 밑으로는 관목도 많았다. 진달래, 노린재나무, 쪽동백 등이 보였다. 특히 진달래는 팔뚝만 한 굵기로 수 미터 높이로 자라났다. 숲길 가장자리로 등산로를 감싸듯 죽 이어진 것이 봄에 오면 장관이겠다 싶었다. 진달래야 산 능선에 가냘픈 몸으로 한두 그루 피어난 것만 보아왔다. 이렇게 무성하게 우거진 군락지를 이룬 것은 처음 보았다. 비록 초겨울 나목으로 진달래의 앙상한 잔가지만 보이지만 진달래 꽃 흐드러지게 핀 숲 속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숲 속에는 리기다소나무조차 굽어지지 않고 쭉쭉 뻗어 있었다. 흔히 외국에서 조림목으로 수입하여 들어와 가늘고 볼품도 없어서 왠지 짝퉁 소나무 같은 리기다소나무가 여기에는 밑동도 굵고 곧고 반듯하게 자라났다. 헐벗은 민둥산에 심을 수 있는 나무가 리기다소나무였고, 가혹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나 우리나라 숲을 푸르게 하였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야 했기에 줄기가 가늘고 모양새도 굽어지며 나빠졌을 뿐이었다.
태봉산길은 외져있으나 막상 걸어가니 산 높이도 야트막하고 길도 걷기에 무리가 없다. 게다가 길 따라 식생이 오랜 세월 동안 천이되어 숲이 풍요로운 느낌이었다. 나무 이름표만 보아도 밤나무, 쪽동백, 서어나무, 리기다소나무, 진달래, 철쭉 등이 번갈아 있었다. 노간주나무가 누가 일부러 심어 놓은 듯 길 주변으로 듬성듬성 자주 보였다. 다른 나무들이 아름드리 굵기도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데 비하여 노간주나무는 손으로 움켜쥘 정도의 굵기에 가지도 비실비실 자라났다. 잎은 세 개씩 모여 끝이 뾰족했다. 볼품은 다소 없지만, 콩알만 한 열매는 새들이 좋아하여 여기저기 씨앗을 심어주기도 한다.
애주가는 그 열매로 술을 담가 마시는데 그 술 이름이 두송주다.
산행은 순조로워 어느새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에 도달했다. 봉우리에서 서쪽 하늘을 보니 아스라이 펼쳐지는 발화산과 광교산의 연봉 능선이 겹겹으로 펼쳐졌다. 철탑 아래 굴참나무를 중심으로 억새가 여기저기 산개해 솟아있었다. 예전에는 갈대와 억새를 항상 구분 짓지 못했다. 갈대는 주로 습지나 호수 같은 물가에서 자라고, 억새는 산기슭이나 들녘에서 서식한다고 하니 산행을 하다 마주치면 억새이고 강가를 거닐다가 마주치면 갈대라고 생각했다. 가끔 억새가 물가에서 자라기도 한다. 그때 구분 짓는 방법은 갈대 키가 2~3m 정도이고 억새는 그보다 키가 작아 1~2m인 것으로 알 수 있다. 또 갈대의 꽃대가 갈기처럼 나부끼는 것이 억새보다 더 풍성하다.
그런데 여기 봉우리에서 피어난 억새는 억새밭이라 하면 민망하고 다른 사람을 기망하는 짓이다. 억새밭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수십 포기 군데군데 자라났다. 하지만 태봉산길은 참나무 높은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는 숲길이다. 잠시 하늘이 청명하게 드러나 억새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은 참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우거진 나무 그늘 밑에서 잠시라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터가 만들어진 것은 억새 옆으로 뾰족 솟은 송전탑 때문이다. 송전탑 세운답시고 아름드리나무 다 잘라버리고 공사용 도로와 작업장 만든 덕분에 황무지가 되었다. 그 덕분에 다른 누비길에서 볼 수 없었던 억새 몇 포기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이것을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망설여졌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숲은 단조로운 느낌이었다. 어쩌면 풍경이 화려하지 않으니,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기 좋을 수 있겠다. 밖으로 향한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홀로 찾기에는 산이 외지고 좀 으슥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깊은 숲 속이라 등산로는 낙엽으로 덮여 어느 곳이 길인지 알 수 없기도 하다. 제대로 걷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 반가운 것이 안내판일 것이다. 마침내 누비길을 알리는 표지가 참나무 줄기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나무줄기에 나무로 만든 이정표를 왜 설치하는 것일까 싶었다. 색상도 주변 색깔과 틔지 않게 고동색이다. 자연과 어우러지게 친환경적으로 디자인한 것인 줄 알겠는데, 그러고 나니 정작 눈에 뵈지도 않았다. 안내판 설치하는 이유가 길 잃지 말라는 것인데 그러려면 눈에 잘 띄게 만들던가 말이다. 그러면 또 소박하게 걸을 수 있는 숲 속에서 눈에 거슬리는 인공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빽빽한 나무 사이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발로 차였다. 눈 내린 길보다 더 심란한 것이 낙엽으로 덮인 길이다. 차라리 눈길은 발자국이라도 남지 낙엽 길은 자국도 남지 않아 앞사람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서산 대사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한시가 생각났다.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