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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Dec 11. 2018

울퉁불퉁 서어나무 군락지

제5구간 태봉산길 - 울퉁불퉁 서어나무 군락지 그리고  송전탑 

울퉁불퉁 서어나무 군락지 태봉산


누비길 5구간 태봉산에는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참나무 교목류가 숲에 빽빽하게 들어섰고,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 침엽수는 간간이 능선 따라 몇 주 들어섰다. 소나무는 햇빛을 많이 받는 양지에서 자랄 수 있는 양수이고, 참나무는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이다. 그런 즉, 참나무는 큰 소나무 밑에서도 잘 자랄 수 있지만, 소나무는 큰 참나무 밑에서는 잘 자랄 수가 없다. 그래서 숲이 발달되어 갈수록 소나무가 무성하던 숲은 세월이 흐르면서 참나무만 남게 된다. 이런 것을 나무의 천이라고 한다. 

황무지가 풀밭으로 변하다가 키 작은 관목림이 되고 이후 키 큰 나무가 자란 숲이 되어 가는 큰 흐름에서 숲이 된 후에도 양수 교목림에서 음수 교목림으로 변해가는 자연스러운 숲의 변화 과정이다. 극상림은 숲의 최상층으로 서어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단풍나무 등이 있고 반대로 이런 나무가 많은 숲은 극상림이다. 

태봉산은 도심지 인근에 있으면서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극상림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이 많다. 종류도 다양하여 나무 표찰 표도 다양하다. 그래서 화려한 꽃이나 단풍이 없어도 길을 걷는 내내 단조롭지 않다.

 

태봉산은 육산으로 흙길을 밟지만 간간이 암석을 지나가기도 한다.

태봉산 기슭 서쪽으로 산허리 옆으로 되돌아가면 설악골이 나온다. 그곳은 겨울이면 눈이 항상 녹지 않는 골짜기여서 설악골이란 이름이 붙였다. 그쪽 방면을 바라보니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서식하고 있었다. 참나무 사이에 서어나무 한 그루라도 우뚝 자리 잡고 있으면 참 인상적이었는데, 무리로 모여 있으니 힘센 역사가 모두 모여 힘자랑하는 것처럼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나무줄기가 매끄러운데도 억센 근육 무늬가 연상되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과연 서어나무가 숲의 지배자란 말이 과하지 않았다.

서어나무 줄기의 매끄러운 줄무늬는 억센 근육 줄기를 연상시킨다. 



몬드리안의 시각에서 본 송전탑

 

태봉산 능선은 한전 송전탑 여러 기의 밑을 지나간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렸다. 바람이 물처럼 흘러가도 이리 크지는 않을 텐데, 전기 흐르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울리는 것인지 처음 느꼈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송전탑 밑에서 하늘 위로 올려다보니 송전탑 위세가 대단했다. 격자형 스틸로 얼기설기 엮어져 있는 모습이 사람을 압도했다. 잎 떨어진 잔가지와 송전탑의 전선과 각관이 하늘에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산행에서 만나는 송전탑은 반가울 리 없다. 그것도 연거푸 만나서 그 다리 밑으로 기어가는 것이 유쾌하지 않다. 바삐 자나 가려다 하늘을 보니.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났다. 

잔가지와 전선, 각관의 구조물이 하늘에 어지럽게 놓여있다. 
사방이 철 구조물로 뒤덮여 내가 창살에 갇힌 새처럼 느껴졌다. 철탑 꼭대기를 꼭짓점으로 철근과 애자로부터 나온 진선들이 하늘과 숲을 네모 세모의 도형으로 잘게 조각조각 나누었다. 그러면서 세상은 기하학적인 무늬가 펼쳐졌다. 각 무늬 프레임으로 분절된 세상이 보이는 것이 묘하게 새로운 시각적 느낌이었다. 그 공간 속으로 구름이 지나가니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처럼 예술적이었다. 의외의 반전이었다. 자연환경을 헤치는 송전탑에서 예술을 생각하다니 말이다. 철탑 아래 하늘을 보며 가만 생각해보니 흔히 자연은 곡선이고 문명은 직선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구름과 산 능선이나 강 물줄기 모두가 완만한 곡선의 형태인데, 인간이 문명생활에서 창조해 놓은 것들은 직선을 지향한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송전탑 아래서 하늘을 바라보면 인공구조물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고 예술의 대상이다.

파리의 에펠탑도 처음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였을 때 단지 송신탑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철 구조물이 파리의 멋진 경관을 해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지금은 에펠탑이 파리를 세계 제일의 아름다운 도시로 만드는데 일조한 예술작품이 되었다. 여기 송전탑 아래서 하늘 높이 솟은 철 구조물을 에펠탑과 비교하는 것이 가당치 않겠지만 탑 아래서 올려다보니 거대한 구조물이 인상적이었다. 

하늘을 갈라놓는 것이 직선의 전선줄이든 곡선의 나뭇가지든 새로운 프레임을 보여준다.

다시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철탑의 철근들이 어지럽게 하늘을 감싸고 있었다. 홀로 찾은 산이라 마음에 여유가 있었던지 새삼스럽게 철탑 아래 서서 하늘을 이리 보고 저리 보았다. 하늘을 기하학적으로 분절시키는 것이 질서 정연했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가 하늘을 분절시키는 것에 비하면 왠지 질서 있기까지 했다.

 

고전 미술에서는 실제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태도를 담았지만, 현대미술은 자연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작가 입장에서 재창조하였다. 대표적인 작가 몬드리안은 자연을 아주 단순화시켜서 선과 색채만 남는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몬드리안이 그린 회색 나무나 사과나무를 보면 초기에는 형태도 갖추고 생동감도 있었는데, 후기에는 직선과 빨강, 파랑, 노랑만 남게 되었다. 작가는 자연의 외형에서 벗어나 절대적 순수미를 추구하였다. 현대 예술가 덕분에 우리는 평소 거리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횡단보도나 주택 벽돌, 아파트의 선과 색을 밋밋하게 보지 않고 다른 시각에서는 기하학적 무늬를 찾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몬드리안의 초기 작품에서 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유선형 곡선을 갖고 있다.
몬드리안의 작품은 후기로 갈수록 선형은 단순화 된다.
마침내 나무는 선으로 단순해지고 순수해졌다. 후에 그 유명한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이란 작품이 나왔다. 


그러나 고개 들어 저 멀리 산 능선마다 송전탑이 어지럽게 설치된 것을 보니 역시나 송전탑은 자연경관을 해치는 구조물이 맞았다. 

우리네 삶이 자연에서 벗어나 점점 도시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숲 속 길에서는 직선은 곡선을 이길 수 없다고 외쳐야 했다. 그렇지만 송전탑 직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또 다른 미적 세계로 초대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지나쳐온 억새나 참나무의 무성한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감상하는 시간보다 더 오래 송전탑 아래 머물렀다. 나중에 사진 기술이나 배워서 송전탑 프레임이 주는 예술적 영감이라며 작가 행세해볼까도 싶었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으며 걷다가 뒤돌아보니 며칠 전에 지나온 태봉산이 보였다. 새로운 시각으로 혹시 산 능선 따라 삐죽삐죽 솟은 송전탑이 정말 다르게 보일까 생각했다. 역시나 송전탑은 자연경관을 헤쳤다. 확실히 직선은 반자연적이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태봉산 능선위로 송전탑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피트 몬드리안
미술이란 자연계와 인간계를 체계적으로 소멸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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