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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Dec 19. 2018

휴(休)식은 나무(木)와 사람(人)의 만남이다.

제5구간 태봉산길 - 임금의 태를 묻은 태봉, 엎어진 밥그릇 태봉

휴(休)식은 숲 속에서 나무(木)와 사람(人)이 만나는 것


산속에 있는 숲길은 길도 구불구불하려니와 비탈길을 오르내려 걷기 힘들다. 그런데도 휴일이면 사람들은 등산을 한다. 평일에는 고된 업무에 피곤했을 테니 휴식을 취하라고 주는 휴일에 왜 힘들게 등산을 할까?

왜냐하면 숲길 걷는 것 자체가 휴식이기 때문이다. 휴식의 첫 글자 휴는 한자로 쉴 休(휴)로 사람(人)과 나무(木)가 합쳐진 글자다. 사람이 나무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즉, 휴식 자체가 사람이 나무에 기대고 있는 의미다. 그러니까 쉬는 날 왜 힘들게 산에 가느냐고 물어볼 게 아니라 쉬기 위해 나무가 있는 산에 간다. 

숲길에서 나무는 언제나 사람을 맞이해준다. 즐거운 맘으로 오르든, 울적해서 오르든.


태봉산 정상 가는 길 삼거리에 등산로 안내도가 기울어진 채 서 있었다. 둔지봉에 온 것이다. 태봉산 반대편으로는 쇳골 마을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쇳골 마을은 금곡동을 일컬으며 과거 금을 채취하는 광산이 있어 쇠골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곡이 됐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마을이라는 새고을이 새골로 줄어지고 점점 샛골, 쇳골 등으로 발음이 조금씩 변하다 한자식 이름 금곡(金谷)이 되었다고 한다. 이 근방에 철광석이나 금을 캐었다는 금광이 있다고 들은 적이 없으므로 새 고을이 금곡동의 어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쇳골마을 갈림길에서 오래된 야외의자가 남루하다. 그 모습이 고풍스럽기도 하다. 

둔지봉에서 조금만 가면 태봉산 정상이고 등산객들이 항상 누비길을 잃어버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누비길 5구간 태봉산길은 태봉산 9부 능선에서 서쪽으로 하산해야지 만약 태봉산 정상을 밟으면 자연스럽게 누비길 반대방향으로 궁내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온다. 태봉산길이라 하여 태봉산을 밟았건만 그 길이 태봉산길이 아니라 하니 어이없다. 이는 주택가로 향하는 길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돌아가는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의 젖가슴을 닮아 임금의 태를 묻었다는 태봉


태봉산 정상(310.8m)에 막상 오르면 배경으로 사진 찍을 그 작은 정상석 조차 없다. 대신 쓰러진 고사목으로 만들어진 나무의자 하나 덩그러니 있고 이곳이 정상임을 알 수 있는 나무판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래도 누비길 6구간 정상인데 이정표 삼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주변으로는 하늘을 가리며 에워싼 키 큰 참나무 때문에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는 눈요기도 즐길 수 없다. 

그래도 이런 태봉산도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는 산이다. 태봉산에서 서쪽으로 산줄기 따라 가면 높이 172.2m의 나지막한 산봉우리를 만나는데 이름이 태봉이다. 이 태봉은 『한국지명총람』과 『성남시사』에 따르면 풍수지리상 길지로 여겨져 조선 인조의 태(胎)가 이곳에 묻혀있다 하여 태장산 또는 태봉산이라고 부른다. 이곳 대장동 명칭도 태장산에서 유래하여 태장리라 하다가 태장으로 변하고, 다시 대장리로 표기되었다.  

조선조에는 임금의 태를 좋은 명당에 묻으면 태의 주인이 무병장수하고 왕업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실을 전국 풍수지리적으로 명산이라는 곳에 조성했다. 임금의 은덕이 조선 팔도 골고루 미치도록 했다. 옛날 사람들은 모든 생명은 산의 정기를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은 산에 안치했다. 태를 묻을 땅은 길지 중의 길지를 찾았다. 길지라고 불리는 산의 모습은 평지에서 돌출된 산꼭대기에 쓰는 것이 전례였다. 마치 엄마의 젖가슴처럼 생긴 쓰는 형상이었다. 태봉산에 태를 묻은 것이 효험이 있었는지 태의 주인은 광해 임금 밑에서 숨죽이며 살다가 반정을 일으키고 왕위에 등극하였다. 

그가 바로 광해를 몰아낸 인조 임금이다. 한편으로는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맛본지라 여기에 태를 묻은 것이 길지였는지 흉지였는지 알 수 없다. 전란으로 수많은 백성이 살육당하고 청나라에 끌려갔어도 자신의 왕좌를 보전할 수 있었기에 길지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자기 자식과 며느리, 손자들까지 시기심에 잔인하게 내치며 나락으로 떨어진 것을 보면 흉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인조는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이괄의 난을 맞이하여 지방으로 내쫓기는 수모도 당하였는데, 피난 중에 왕자를 얻었지만 병약하였다. 그래서 불공을 드리자 전라남도 광주 한복판에 둥글고 작은 산에 왕자의 태를 옮기라고 하여 그곳에 태를 이장하였더니 병이 나았고 사람들은 그 봉우리를 태봉산이라고 하였다. 

태봉산에서 태봉으로 가는 길목. 잎 떨어진 참나무와  노간주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다. 

태봉에 태실이 정말 있을까? 조선 임금의 태실은 모두 고양시에 모아둔 곳으로 이전했다고 하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좀 의아한 게 태봉산에는 조선조 중신인 이예장과 이수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조 태실을 전국 명산에 묻은 이유 중 하나가 좋은 명당을 미리 선점하여 왕위를 노리는 인물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목적도 있었다. 만약 여기 태봉산이 정말로 임금의 태가 묻히는 길지라면 여기에 묫자리를 쓴 신하들은 역적의 죄를 뒤집어쓸 판이다. 

멀리서 바라본 태봉. 태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이 그렇듯 작은 봉우리다.

쌀밥이 담긴 밥그릇 닮은 태봉


태봉의 또 다른 유래로 반구형의 동그란 산세가 마치 밥을 수북이 떠놓은 밥그릇 모양을 닮아 태봉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밥그릇보다는 아무래도 젖가슴 모습을 닮았다고 하면 풍수지리적으로 더 위엄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옛날 보릿고개 시절 배고픔에 굶주리다 보면 태봉산 반구형의 모양은 고봉으로 쌓인 밥그릇으로 보일 것이다. 게다가  만약 태봉산 기슭에 하얀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가 무성했다면 말 그대로 밥그릇에 하얀 쌀밥이 고봉으로 퍼 놓은 형상이 아닌가 싶다. 이팝나무만 있다면 영락없이 태봉은 밥그릇 형세다. 

이팝나무에는 슬픈 전설이 몇 가지 얽혀 있다. 어느 마을에 시집온 착한 며느리가 있었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트집을 잡고 구박하며 시집살이를 시켰단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제사상을 차리다가 밥에 뜸이 잘 들었나 하고 밥알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마침 그걸 본 시어머니가 조상께 드릴 제삿밥을 며느리가 먼저 먹는다고 욕을 하며 학대했다. 억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며느리는 뒷산에 올라 목을 매어 죽었다. 훗날 그 자리에 한 나무가 자라더니 하얀 쌀밥을 닮은 흰 꽃을 무더기로 피워냈다. 사람들이 쌀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서 된 나무라 하여 이팝나무라 불렀다. 이팝나무는 흉년이 들어 아이가 굶어 죽으면 산에 묻으면서 무덤 옆에 심기도 했었다. 죽어서라도 불쌍한 아이들이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이제 태봉이 밥그릇을 닮았든 젖가슴을 닮았든 무의미하다.

대장동 택지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모든 지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무 틈으로 휑하니 널찍한 길이 나왔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였다. 숲 속 아름드리나무가 포클레인에 찍혀 옆으로 쓰러지며 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깊은 숲 한가운데 중장비가 다닐 만한 도로를 만들면서 방해되는 나무들은 옆으로 젖혀버리고 있었다. 뿌리째 쓰러진 나무에 기슭에 서 있던 나무들도 가지가 부러졌다. 작업을 방금 마쳤는지, 뒤엎어진 더미에서 흙냄새가 물씬 풍겼다. 부러진 나뭇가지마다 비릿한 냄새도 났다. 도대체 누가 서어나무도 집단으로 서식하는 태봉산 극상림 대 숲을 무참하게 훼손하고 있는지 화났다. 
쓰러진 나무줄기를 따라갔다. 나무가 뽑혀나간 자리마다 땅은 움푹 패고 검은 부식토가 드러났다. 밟을 때마다 성긴 흙속으로 등산화가 푹푹 빠졌다. 
숲이 포클레인 삽날에 헤집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신 사나웠고, 엉뚱한 곳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에 더 골치가 지끈거렸다. 
“스키장 만든다고 강원도 가리왕산도 훼손했는데요. 길 만든다고 나무 자른 거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하기야 가리왕산이 조선시대부터 보존한 우리나라 최고의 원시림이라고 했다. 평창에서 스키 경기 며칠 하려고 오백 년된 원시림을 말끔하게 밀어냈다. 그런 것에 비하면 태봉산 원시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 게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여러 이야기가 있던 태봉은 대장동 택지개발로 인하여 이제 한 움쿰만 남겨졌다. 


그래도 아무리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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