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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an 08. 2019

학이 넘나든 고개 하오고개

제5구간 태봉산길 - 구름이 걸린 동네 산운리, 정일당 강 씨 묘

구름이 걸린 동네 산운리


석운로를 따라 누비길 이정표를 따라간다. 이정표는 침엽수림이 좌우로 도열한 길로 안내하나 그 도로에는 바리케이드가 서너 개 엇갈려 놓여 있다. 바리케이드가 상징하는 바가 있어 나무조차 열 간격을 맞춰서 사열을 받는 듯 엄숙하게 서있는 듯하다. 계속 가야 하나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누비길 안내판은 출입금지라는 곳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혹시 다른 길이 있나 둘러보아도 보이질 않아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걸어갔다. 괜히 가다가 초병들에 둘러싸여 험한 꼴 당하지 않을까 하여 조바심이 들며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다행히 철문 바로 옆에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이정표가 보였다. 

숲길은 이중으로 둘러싸인 철조망을 따라가야 한다. 두 겹 철책의 꼭대기엔 다시 환형 철조망을 똬리처럼 얹고 중간에도 툭 튀어나오게 설치하였다. 철조망에 베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길옆으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배낭을 메고 있다면 군 복무 중 철책 따라 순찰 도는 초병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제대한 지 수십 년 지났건만, 그 시절 기억은 또렷하다. 잊으려 하는 기억은 잊히지 않고 왜곡이 되어 추억이 되곤 한다.  

우리나라 산은 그 지역의 주요 요충지여서, 옛날에는 성벽을 쌓고 오늘날에는 철조망을 두르고 있다. 


고개가 매우 가팔랐다. 이 일대가 옛날에는 산운리라고 불렸다. 국사봉 골짜기는 깊은 데다가 길기도 길어 구름이 항상 머물러 있다 하여 뫼룬이라 했다. 한자로 뫼 산(山)과 구름 운(雲)으로 표기되어 산운리다. 그러니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고갯길이다. 이름 유래처럼 지금 구름이 걸려있는 산을 오르기 때문이었다. 


철조망따라 걷다보면 숨이 헐떡일 지점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다. 

발화산이 우담바라의 우담산? 


여기서 좌측으로 돌면 발화산이 나온다. 발화산은 산아래 지역인 발화산리를 따서 발화산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인근 바라산과 글자를 합쳐 '우담바라'라는 글자를 만드는 것인지 우담산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 바라산은 예전 망산(望山)으로 불렸는데 한자 바랄 망(望)이 한글로 풀어져 바라산으로 변용된 듯하여 우담바라와는 전혀 상관없다. 참고로 우담바라(優曇波羅)는 사스크리트어로 Udumbar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불경에서는 여래가 나타날 때만 핀다는 상상의 꽃이다. 

발화산의 숲속은 한적하며 가을 단풍이 화사하지 않더라도 왠지 끌리는 멋이 있다.  

발화산에서 바라산을 거쳐 숲길을 따라가면 백운산, 광교산으로 가는 관악 지맥이 나온다. 관악 지맥은 한남정맥 백운산에서 분기되어 바라산, 국사봉, 이수봉, 응봉, 관악산을 거쳐 한강까지 약 43km의 능선이다.  


학이 넘나든 고개 하오고개


마침내 고개 위로 올라가니 의왕시 경계와 맞닿은 곳이 보였다. 근처에는 방송 송신탑이 있었다. 우측으로 가면 5구간 종점 태봉산길 종점인 하오고개가 나온다. 하오고개는 성남 운중동 서쪽에서 의왕 청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의왕에서는 학고개라 부른다. 학고개라는 이름은 청계동에 있었던 김해 김 씨 종산이 풍수지리상 학이 거동하는 형국이고 인근 안동 김 씨 묘역도 학의 혈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유래는 어느 날 염부들이 소금밭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소한 일로 시비가 벌어졌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관아로 가는 중 이 고개에 이르러 서로 하우(화해)했다고 하여 하우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오고개를 내려가니 매우 가팔라 무릎이 시큰거렸다. 등산은 다리 근육을 강화하고 스트레스까지 해소해 주는 가장 좋은 운동이지만, 내려올 때는 무릎을 해치는 운동이다. 하산할 때는 앞쪽 다리에 체중이 실리면서 최대 5배 정도 하중을 받기 때문이다. 내려올 때까지 조심해야 한다. 

하오고개 직전 제5구간 태봉산길의 끝을 알리는 현판이 있다.


하오고개를 드디어 내려오니 거대한 조형물처럼 기다란 육교가 맞이한다. 청계산 단절구간에 사장교 형태의 길이 82m, 폭 3m의 하오고개 등산 육교다. 다리가 설치된 이후로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횡단하지 않고 청계산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육교를 건너니 하오고개 구 도로를 만났다. 

판교신도시 건설과 함께 사장교 형식의 등산육교가 개통되었다.

바람에 잔물결 치는 운중 저수지


더 여력이 되면 누비길 제6구간 청계산으로 오를 수 있지만 하산하려고 하면 여기서 운중동으로 내려가는 길 따라 걸어가면 된다. 거기에 버스 정류장이 있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도 제법 길다. 내리막길이고 포장도로 옆을 걷는 것이기에 발자국 터벅대는 소리 크게 내며 걸어간다. 길 옆 운중 저수지 물결이 햇빛에 일렁이며 반짝거리는 것이 눈이 부셨다. 저수지 주변에 앉아 양말을 벗고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심정이다. 걷느라 퉁퉁 부었을 발바닥을 차가운 물에 담그면 시원도 하겠다. 도심지 농경지도 없는 곳에 저수지에 농업용수로 물만 가득 채우고 있으니 아쉬웠다. 

겨울철 운중저수지는 차가운 바람에 잔물결이 일어난다.

운중 저수지는 제방 높이 9m, 길이 114m로 운중천 변의 농경지를 관수하는 저수지이며, 1978년 준공하여 총저수량은 114㎥이다. 성남시가 시가지화 되기 전에는 성남은 전형적인 산간 농업 지구였으며, 산맥 사이에서 탄천으로 유입되는 하천들마다 저수지가 건립되었다. 지금은 판교 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농지가 줄어들어 농업용수의 공급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운중동의 이름을 따서 운중 저수지라 명명하였으며, 운중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이 국사봉 밑에 해당하여 뫼룬, 머루니, 뫼운 또는 산운과 그 중간 마을을 합하여 운중동이라 부르게 된 것에 유래한다. 


정일당 강 씨 묘


저수지 밑으로 내려가니 도로 따라 줄지어 서 있는 느티나무가 우거져 아치형으로 하늘을 가렸다. 옆에는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넓게 자리 잡았다. 내부 정원에는 단풍이 곱게 든 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아름드리 자란 빨간 단풍나무, 노란 은행나무가 담장 밖에서 잘 보였다. 

본 연구원이 있는 서들산 기슭으로 성남시 향토유적 제1호인 정일당 강 씨 묘가 있다. 정일당은 조선 후기의 여류문인으로 경서에 두루 통하였고 시문에 뛰어났으며 글씨에도 능했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도 뛰어난 시문을 남겼지만, 정일당은 성리학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그의 남편 윤광연은 이런 정일당을 흠모하고 존경하며 그녀의 사후에 전 재산을 털어 문집을 간행했다. 이에 정일당의 형제는 그녀의 죽음을 기리며 “정일당은 어찌 우리 가문의 장부로 태어나지 못하고, 다만 윤광연의 좋은 배필이 되고 말았는가! 이것은 그에게는 다행이지만, 우리 가문에는 불행이다. 내가 어찌 그를 위하여 비통해하지 않겠는가!” 했다. 

수정구 금토동 산75번지에 있는 정일당강씨 묘. 성남시 향토문화재 제 1호이다.

한 해가 저물 때, 그가 스스로 자성하며 지었다는 「제석 감음除夕感吟」이란 시는 몇 번이고 읊을 만하다.  


한 일 없이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내일 아침이면 내 나이 오십이네    

밤 슬피 탄식한들 무슨 소용인가  

마음을 닦으면서 여생을 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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