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구간 청계산길, 울창한 소나무 숲과 철쭉축제
청계산 이수봉부터 매봉까지 고봉이 연결되는 산릉선은 소나무 숲이 특히 발달하였다. 다른 산에서 우점종으로 볼 수 있는 참나무 활엽수는 산기슭으로 비켜나 있다. 산 형세를 보면 큰 바위가 드문드문 보이고 그런 바위틈으로 굵은 소나무가 우거진 형국이다. 역시 바위와 소나무는 한 몸으로 같이 있어야 더욱 아름답다. 소나무를 그린 옛 선비의 수묵화에서 바위가 보이지 않는 그림은 떠올리기 어렵기도 하다.
청계산 산행에서 종종 만나는 아름드리 소나무는 발길 바쁘지 않은 산행이라면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사실 다른 산을 둘러보아도 여기 청계산만큼 소나무가 잘 자란 곳도 없다. 이수봉으로 가는 능선 길은 소나무 숲이라서 보기가 참 좋다. 어떤 것은 껍질이 검붉을 색이라 탄성이 나온다. 거무튀튀한 흙빛 껍질 속에 붉은 속살이 드러난 것 같았다. 청계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는 거의 다 적송이다. 나무 하나하나 살펴보면 나무껍질 비닐 두께가 상당하다. 켜켜이 쌓인 비닐 하나하나가 한해를 먹었다는 것인데, 도대체 몇 년을 묵어야 이렇게 두텁게 포개질 수 있을까?
과연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듯 자라났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싶었다. 그리고 소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높고 곧게 자랐는지 하늘만 보았다. 대지에 단단히 버티고 있는 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소나무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지 미처 몰랐다. 소나무 줄기에 손을 얹히자 껍질의 비닐이 포개지듯 한 손에 잡혔다. 높다란 소나무 우듬지 사이로 박새 여러 마리가 푸드덕 날갯짓하며 날아갔다.
소나무의 늘 프름은 사시사철 한결같다. 한 여름 녹음이 짙은 산야에서도 푸르고, 한 겨울 계곡 잔설로 희끗희끗한 산야에도 푸르다.
소나무가 박새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것처럼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추운 겨울에는 땔감으로 쓰이기도 했다. 소나무 송진은 나무가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휘발유 역할을 하고 솔잎도 불쏘시개로 유용했다. 흉년이 든 보릿고개 시절에는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식량이기도 했다. 초근목피로 연명한다고 했을 때 초근은 칡뿌리이며 목피는 소나무 껍질이다. 그런데 소나무 껍질은 소화가 잘 안되어 똥으로 나올 때 항문을 다치게 한다. 가난할 때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지경을 일컫는다.
사실 청계산의 소나무는 관리되는 소나무림이다. 소나무 숲이란 것도 숲의 천이 단계에서는 참나무 활엽수림에 땅을 내주어야 하는 신세다. 예전 민둥산 척박할 때나 소나무가 잘 자랄 수 있었지, 숲이 우거지고 자연을 회복하는 단계에서는 다른 활엽수에 점차 밀려난다. 숲이 원시적 자연 모습을 회복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떠밀려 사라지는 소나무의 모습은 안타깝다. 가뜩이나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비록 자생 소나무라지만 이렇게 울창한 소나무림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관에서 소나무 유지관리 계획을 수립하여 생육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솔잎혹파리나 소나무 재선충병 등 병해충 예방 방제를 하고 고사지나 솔잎 적체지는 제거도 하고 쇠약목이나 고사목도 제거한다. 때론 소나무가 자라는 데 지장을 주는 다른 수종의 나뭇가지도 과감하게 잘라낸다. 소나무가 햇빛을 잘 받고 양분도 잘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손길이 닿아서 우량 소나무 숲은 보존되고 사람들은 능선을 걸어오면서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났다고 감탄해마지 않은 것이다.
이수봉에서 청계산 망경대 향하는 길은 능선 따라가는 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다. 능선 타면 소나무 숲 중간중간 철쭉나무가 자주 보인다. 청계산에는 유달리 철쭉이 많기로 유명하다. 특히 국사봉과 이수봉으로 가는 능선에 많다. 그리고 해마다 수정구 상적동 옛골 주차장에서는 5월이면 청계산 철쭉제 행사를 개최한다.
산이나 공원에 가면 이른 봄에 분홍빛 나는 꽃을 보고 이것이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항상 헷갈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진달래와 철쭉 모두 진달랫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일반인이 꽃 모양이나 색으로 구분을 짓기는 어렵다. 대신 꽃이 피는 시기가 4월이면 진달래이고 5월이면 철쭉이다. 또 피고 자라는 산기슭이 양지면 진달래, 음지면 철쭉이다. 결정적으로 철쭉보다 한 달 먼저 꽃이 피는 진달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꽃이 질 무렵에야 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반면 철쭉은 연한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피기 시작한다. 추위가 머물러 있는 이른 봄에 산에서 잎 없이 꽃망울만 나뭇가지에 송송 예쁘게 매달려 있으면 진달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영어로 진달래는 아젤리아(Azalea), 철쭉은 여기에 귀족이라는 로열을 붙여 로열 아젤리아(Royal Azalea)다. 철쭉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불렀고 철쭉을 개꽃이라 불렀다. 외국 귀족이 우리나라에서 개 취급받는 격이다. 이는 보릿고개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데 철쭉은 먹으면 배탈이 나기 때문이다. 사실 철쭉이란 이름의 유래는 '척촉'이다. 양이 철쭉꽃을 먹으면 죽기 때문에 양은 철쭉만 봐도 제자리걸음 하며 피하기 때문에 '양척촉(羊躑躅)'이라고 한 것이다.
참나무에 참자가 붙은 것도 먹을 수 있는 도토리가 열려서 참나무 일까도 생각했다. 도토리는 흉년이 들 때면 더욱 풍성하게 열려 배고픈 사람들을 달래주었다.
철쭉이 개꽃으로 불리기 이전 옛날부터 철쭉은 매우 화사하여 아름다운 여인을 유혹하곤 했다. 신라 성덕왕 때 절세미인 수로부인도 철쭉을 좋아하여 기암절벽에 피어난 철쭉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가파른 곳에 피어난 철쭉을 꺾기에는 어려웠다. 그때 소를 몰고 가던 한 노인이 홀로 절벽을 기어올라 철쭉을 꺾어 아름다운 여인에게 바치었다. 바로 그 유명한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헌화가'이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