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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Sep 11. 2019

어째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사소해 보이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커다란 마음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옆에 있던 간호사가 끼어들었다.
  “조금 아까 침대에 눕는 걸 보고 제가 경고를 했죠. ‘보호자가 환자 침대에 눕는 건 규정 위반’이라고요.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집사람이 유난히 추위를 타기 때문에 내 체온으로 미리 덥혀 놓아야 한다’고요.”
  그 순간, 나는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혼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일들이 말 그대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렇게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내 자리에 누워 있던 남편. 그의 마음을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거의 매일, 그런 따뜻한 마음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을, 장난이라고 단정해버리고는 짜증만 냈다니.
  “어째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사소해 보이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커다란 마음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이 글은 위지안의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란 책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지은이 위지안은 1979년에 태어나 서른 살에 세계 100대 대학인 상하이 푸단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2009년 10월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죽음을 앞둔 마지막 5개월 동안 길지 않은 인생을 되돌아보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2011년 4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백 년도 못 살면서 언제나 천 년의 근심을 품고 사는 게 사람이란 말이 있다. 다가오지도 않은 먼 뒷날을 근심하고, 어떻게 하면 승진할까, 나도 고급 외제 차를 살까, 어떻게 하면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을까 같은 근심을 품고 산다. 하지만,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에게 이러한 것은 하잘것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 내가 찾아낸 답은 바로 ‘사랑’이다.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내 옆에 있어 줄 가족, 친구들의 사랑. 바로 그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나는 내년이면 결혼한 지 20년이 된다. 나는 “어째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사소해 보이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커다란 마음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이란 문장을 읽다가 마음이 짠했다. 내 옆에서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고 내 옆을 지켜준 내 아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아내가 나에게 해주었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사실은 커다란 마음을 담은 행동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차려주는 밥상, 생일이면 보내주는 꽃다발, 뭔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에게 해주었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커다란 사랑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겨울이면 춥다고 내복 한 벌 사 온 것을 ‘남자가 무슨 내복이냐며’ 물리쳤던 일 같은, 바보 같았던 내 행동, 내 말 한마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반대로 내가 내 아내에게 해준 사소하지만, 마음이 담긴 일이 과연 있기나 했는지 내 마음을 짓눌렀다. 의무적으로, 그냥 형식적으로 해준 것은 아니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생각해보았더라면 금방 알 수 있었던 일을 내일모레면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알게 되었다니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추석 명절이다. 아내는 또 아무 말 없이 명절 준비를 할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마음을 담은 말이나 행동을 해보려 한다. 그렇게 사랑을 키우려 한다. 아내가 알든 모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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