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데 익숙해진다는 건 나이가 든다는 것
“방랑은 그 자체가 고독을 즐기는 기술이다. 마음이 한 곳에 머물면 상태는 악화된다. 하지만 걸으면 주변의 풍경이 바뀌어 간다. 그런 흐름에 융화되면 마음도 흘러간다. 이것이 외롭고 우울하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이 문장은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은주 옮김, 위즈덤하우스)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가 보다. 사전에는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 내가 여기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천천히 걷는 것’이다. 주위의 풍경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온 마음을 내던져 자연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산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있는 것을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 있는 게 싫은 게 아니라 남들이 보는 앞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게 싫었다. 혼자 책을 읽거나, 집에서 혼자 나만의 것을 하는 것은 괜찮았다.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혼자 등산을 가는 것은 싫었고,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 먹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혼자 영화관에 가지도 못했다. 혼자 술집에 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것들도 산책하듯 하면 안 되는 건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남들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 것도 괜찮아지고, 혼자 하는 여행도 즐겁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남들의 시선이 무뎌지는 것인지, 아님 나도 이제 고독이라는 것을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이제는 좋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나에겐 너무 좋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길을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눈으로 들어온다. 이른 아침 이슬 맺힌 풀, 나뭇잎, 아파트, 주택,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지하철을 타기 위해 우르르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 자동차, 버스, 저 멀리 보이는 산, 나무, 가로등, 시냇물, 물고기, 따스한 햇볕 따위가 들어온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고 누구는 청소해야 할 쓰레기라고 보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쓸쓸한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는 나뭇잎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나무라 해도 어제 본 나무와 오늘 보고 있는 나무는 다르다.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 다르다.
나 혼자 있는 시간, 혼자 하는 행동들에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다 보니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길 옆으로 나와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는 속도로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나와 일반도로로 달리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가려는 곳은 고속도로로 가나 일반도로로 가나 같다. 다만 조금 더 빨리 도착하느냐의 차이뿐이다.
나는 가끔 혼자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으며 바깥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디로 가는지 앞만 보며 바삐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 사람들 가운데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보지 못한다. 굳이 그렇게 바삐 살 이유가 있나 싶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가 생긴다는 옛 어르신들 말씀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나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혼자 있는 데 익숙해진다는 건 나이가 든다는 것이 맞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