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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Dec 19. 2018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세상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르는 이유

  나는 마흔 가운데를 넘어서고 있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4당5락이니 3당4락이라는 말이 있었다. 4시간 자면 대학에 들어가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다. 어른들은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누구 하나 대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업을 갖고 돈을 많이 번다고 배웠다. 그게 진리였다. 뭐 달리 의심할 것도 없었다. 모두들 그렇게 말했으니까.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같은 이른바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을 최고라 여기던 시절을 살았다. 지방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른바 ‘SKY’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들여보내느냐에 따라 명문고 순위가 매겨졌으니까.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좀 우습게 여기기도 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이른바 ‘학벌 만능주의’가 진리였던 시절이다.

  내가 대학까지 나오면서 배운 건 하나다. 나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방법을 배웠을 뿐이다. 내가 세상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한 게 아니었다. 오죽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니까. 성적이 떨어진 주인공이 부모님의 차가운 눈초리 때문에 자살하는 영화로 기억한다. 나도 고등학생 딸아이 둘을 두고 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바뀐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아니 지금 아이들이 더 힘든 거 같다.

     

깃발을 꽂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을 받아들이고 공기를 마시고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 산에 오르세요. 세상에 여러분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산에 오르세요.

     

  고등학교 교사인 데이비드 맥컬로프는 졸업식 연설에서 학생들의 과다성취 문화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출처 :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 워런 버거 지음, 정지현 옮김, 21세기북스)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를 때 경치를 감상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정상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네, 지난번보다 얼마를 더 빨리 올랐네, 전국에 유명한 100 산을 모두 올랐네, 하는 기록 경쟁이다. 

  명문고등학교를 나와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이른바 ‘사’ 자 직업을 가지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자신보다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분명 있다고 본다.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학업성적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의 순위가 매겨지는 세상이다. 사람은 모두 존귀하기 때문에 높고 낮음이 없다고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됐다. 분명 높고 낮음이 있다. 그게 지금 현실이기도 하다.

  남보다 더 좋은 자동차를 몰아야 하고, 내 옆사람보다 더 큰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아이들은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하고, 방학이면 어떻게든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려 한다. 휴대폰은 최신 아이폰을 써야 하고, 명품 가방 하나쯤은 들고 다녀야 한다. 점심에 남들은 칼국수를 먹는다고 하면 나는 파스타를 먹어야 한다. 밥을 먹고 난 뒤에는 손에 커피 한 잔씩은 들고 거리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남보다 낫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또한 남들을 바라볼 때도 이러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사실이다. 아무리 겉으로 아니라고 해도 마음속에는 분명 그런 마음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왜 산을 오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모른다기보다 그냥 성공이라는 것만을 바라보고 올라오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책에 빠지게 되면서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오르고 있는 이 산 정상에서 언젠가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내가 왜 숨 가쁘게 이 산을 오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옆사람보다 빨리 정상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하다.

  나는 인생은 결국 산을 넘어가는 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말이다. 자기만의 산을 넘는 게 자기 인생이다. 그렇기에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의 인생과 경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내다보면서 나만의 걸음으로 가는 게 인생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우리 아이들에게도 학교 공부가 남들 위에 서서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지혜를 길러주기 위한 공부가 되도록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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