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각자 책임이다

현대판 노예로 살 것인가,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 것인가

by leeks

꿈. 생각만 해도 설레는 말이다. 어릴 적 그랬다. 얼마 전까지 ‘꿈’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왔다. “에휴. 이 나이에 꿈은 무슨.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 “꿈은 애들이나 꾸는 거지” 하며 스스로 꿈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정적인 말을 꺼냈다.

꿈을 꿀 수 있다면 꿈을 실현할 수도 있다
- 월트 디즈니 -

난 20년간 새로운 꿈을 꾸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꾸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놓인 현실을 핑계 삼아 지금 생활에 만족하려 했다. 그래서 남들이 정해 놓은 생각,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회사가 정해 놓은 기준에 대해 아무런 비판이나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살았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나의 꿈을 계속 꾸었다면 이러한 기준이 내가 꾸는 꿈과 맞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된다면 이러한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지금 그것을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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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남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건 노예일 것이다. 노예는 어쩌면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 시간마다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살아간다. 어쩌다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그 생각대로 행동하지 못한다. 그럼 죽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노예 생활이 길어질수록 노예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합리화한다. 노예를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코끼리, 사자, 호랑이 따위의 야생 동물이 붙잡힌 뒤 조련을 당하게 되면 야생성을 잃고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다. 충분히 밧줄을 끊을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즉 자기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오롯이 나를 남이 아닌 나 자신으로, 내 방식대로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오래된 명작 영화 ‘벤허’의 주인공은 귀족 신분에서 한순간 노예선으로 끌려갔다가 살아남아 새로운 인생을 산 사람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은 한때 로마 황제로부터 인정받는 로마군 총사령관이었다. 새로운 황제가 그의 가족을 몰살시키고 주인공은 노예로 전락하였다가 검투사가 된다. 검투사로 새 황제와 겨뤄 황제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삶을 살았다. 또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주인공은 죽는 순간 ‘freedom(자유)’을 외치며 죽는다.

이들 영화 주인공처럼 거창한 인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것만 받고 살아가는 삶이어도 상관없다. 또한, 사는 게 단조롭다고 느끼며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바깥세상이 두려워 그 바깥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만 하며 살아도 상관없다.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판례에서는 공무원이 업무를 하는 데 소속 상관이 명백하게 위법한 명령을 내릴 때 이에 따를 의무는 없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복종해야 해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쉽게 말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업무 관련자로부터 뇌물을 받아오라고 시켰다고 하자. 이는 명백하게 위법한 명령이다. 아랫사람은 이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윗사람 지시에 따라 돈을 받아왔다고 하자. 윗사람이 뇌물을 받은 것뿐 만이 아니라 아랫사람도 뇌물을 받은 것이 되어 처벌받는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아무 생각 없이 남의 뜻대로 살지 말라는 얘기다. ‘공무원은 각자 책임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공무원 개인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누구든 대신 책임을 져줄 수 없다는 말이다. 네 인생은 네 책임이니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잘 행동하라는 말이다. 판례에서 하는 말과 같다. 인생도 각자 책임이다.

즉, 현대판 노예로 살아갈지 아니면 나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지는 나만이 선택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어떤 것의 주인도 될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자기 영혼의 지휘관’이다.』
- 나폴레온 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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