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회피할 수 있지만, 현실 회피의 결과는 회피할 수 없다
사건을 수사할 때 범죄자가 처음부터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모든 것을 자백하면 구속될 것도 구속이 되지 않거나 무겁게 처벌받을 것도 조금 덜 무겁게 처벌받는다. 그런데 모든 증거가 있는데도 수사기관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계속 거짓말을 하면 구속되지 않을 것도 구속이 되거나, 벌금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도 교도소를 가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수사기관에서는 절대로 처음부터 모든 증거를 범죄자에게 보여주며 조사하지 않는다. 범죄자가 진술하는 것을 들으면서 거짓말을 하면 그에 대한 증거 한두 개씩만 보여주고 다음 진술을 이어나간다. 가장 바보 같은 경우가 바로 이처럼 수사기관에서 증거를 보일 때 그 증거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또 핑계를 대고, 또 다른 증거를 보이면 또 그것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다른 것은 계속 거짓말을 하면서 상황을 끌고 가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경우 범죄자는 결코 수사기관을 이길 수 없다. 거짓말 하나를 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했던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열 가지 아니 그보다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 열 가지 거짓말이 나중에는 백 개 이상의 거짓말을 낳기 때문에 몇 번에 걸쳐 조사하면 결코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도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지고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지어낸 얘기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앞뒤를 맞출 수 없게 되어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마땅한 결과다.
그런데 문제는 범죄자들이 거짓말을 할수록 스스로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해놓은 거짓말이 있으므로 뒤에 가서 앞엣것을 다 고쳐 뒤집고 사실을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이 사람은 이미 양치기 소년이 되어 버려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수사기관이 믿어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 한 가지 요인이다.
어릴 때 책을 산다며 부모님께 돈 받아가서 책은 고사하고 떡볶이 사 먹는 데 돈을 썼다가 부모님께 혼난 경험이 있다. 이때 부모님께서 물어보았을 때 처음부터 사실을 얘기했으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하고 한 마디로 끝났을 것이, 처음에 괜히 겁이 나서 거짓말을 하였다가 나중에 그 거짓말이 드러나 매를 맞는 결과를 낳은 것과 같다.
즉 처음에 손바닥으로 막을 수 있었던 구멍을 사소한 잘못으로 몸 전체를 써도 막을 수 없는 댐 전체가 무너지는 꼴을 만들고 마는 것이다. 이는 누구 탓도 아니다. 스스로 만든 것이다.
한 번은 공무원이 업무 관련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을 수사한 적이 있다. 지금 정확한 횟수는 기억나지 않는데 이 공무원을 꽤 여러 차례 조사했다. 처음에는 돈 받은 것이 없다고 하다가 업무 관련자가 발행한 수표가 그 공무원 계좌에 입금된 거래내역을 보여주자 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갚았냐는 질문에는 현금으로 갚았다고 하였다. 또 돈 받은 것이 나오자 얼버무리며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잇따라 다른 돈 거래내역이 나오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은 사람이 용돈 쓰라고 줘서 받았는데 그것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고 진술한다. 이쯤 되면 댐이 무너져 버린 것과 같다. 이때 옆에 있던 팀원들이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다들 어이없어한 적이 있다. 이 공무원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그렇다. 결국, 교도소에 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또 생긴다. 댐이 무너져 버린 뒤 얘기다. 댐이 무너진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다시 지을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무너지지 않게 전보다 더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댐이 무너진 것에 대해 또 합리화를 한다. ‘사실 내 잘못이 댐을 무너지게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제3의 힘이 끼어들어 무너진 것이다’는 식의 또 다른 핑계를 댄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제 사회나 환경을 탓하게 된다. 즉 잘못해서 교도소에 가게 되었으면 자신을 반성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특히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오히려 주변 환경을 탓한다. 구제 불능 상태로 자신을 몰고 간다.
나도 과거에 팀원들이 모두 흩어지는 일을 겪었을 때 마음속으로 크게 화를 내고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가슴 한쪽에 떠올리기 싫은 추억으로 남아버렸다. 나의 자존심을 구겨가며 살았던 시간, 그러면서 다시 ‘가족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어’, ‘직장이란 게 다 그런 거지 뭐’, ‘나만 그런가’ 따위의 핑계를 대며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자기 합리화가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지나온 20년을 되돌아보면서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장면들을 생각하며 뉘우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현실은 회피할 수 있지만,
현실 회피의 결과는 회피할 수 없다.』
- 아일 랜드(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