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아무리 많이 보아야 3면밖에 볼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재산과 지위에 눈이 멀거나 그의 거만하고 위압적인 태도에 겁을 먹고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보지요.”
이 문장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첫인상’이었다고 한다. ‘첫인상’이라는 제목도 어울리고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도 모두 어울리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본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보는 사람들이 우리와 크게 관련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사람에 관한 다른 정보를 알기 어렵거나, 알고 싶지 않아서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TV에 나오는 재벌들, 연예인, 정치인이 대표적일 것이다. 심지어 범죄자까지도.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우리가 보는 게 아니라 언론에서 보여주는 것을 보는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많은 사람을 직접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본다.
많은 사람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본다는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내비친다는 말도 된다.
결국, 내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감추고 보이고 싶은 부분만 내비치기 때문에, 나를 보는 사람은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본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가 보여준 모습을 보고 나를 판단한다. 사람인지라 당연한지도 모른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보는 것도 문제지만, 나에게 보이는 것만 보는 것도 문제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나가는 허름한 차림의 사람을 보고 그가 가난하거나, 배우지 못했거나 하는 식으로 편견을 가진다. 이것은 그 사람이 보여주고자 한 모습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보인 것뿐인데 내가 판단해버린 것이다. 가장 이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빛바랜 드레스와 올이 다 드러난 허름한 양복을 입은 노부부가 약속도 없이 하버드대학교 총장 사무실로 찾아왔다. 총장 비서는 이 사람들을 보자마자 촌뜨기 같은 사람들이라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총장님을 뵙고 싶은데요.” 남자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총장님은 오늘 내내 바쁘실 겁니다.” 비서가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러면 기다리겠습니다.” 부인이 대답했다.
결국엔 지쳐서 돌아가겠거니 하고 몇 시간 동안이나 기다리게 하면서 그들을 모르는 척하였는데 그들은 지치질 않았고, 비서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서는 총장에게 알리기로 했다.
“잠깐만 만나주시면 곧 갈 것입니다.” 비서가 총장에게 말했다. 총장은 화가 났지만 마지못해 승낙했다. 총장 정도의 지체 높은 신분으로 그런 사람들과 일일이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고,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 사무실에 들어와 사무실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조차 싫었다.
총장은 굳은 표정으로 위엄을 부리며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부인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에겐 하버드에 1년을 다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애는 하버드를 대단히 사랑하였고, 여기에서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그런데, 1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저는 캠퍼스 내에 그 애를 위한 기념물을 하나 세웠으면 합니다.”
총장은 감동하지는 않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부인”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하버드에 다니다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해 동상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다면 이곳은 아마 공동묘지같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아니에요. 총장님 그게 아닙니다.” 부인은 재빨리 설명했다.
“동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버드에 건물을 하나 기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총장은 눈을 굴리며 낡은 드레스와 허름한 양복을 번갈아 보고 나서, 소리를 높여 말을 했다.
“건물이라고요! 건물 하나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현재 하버드에는 750만 달러가 넘는 많은 건물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잠깐 부인은 말이 없었다. 총장은 기뻤다. 이제야 그 사람들을 보내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부인은 남편에게로 얼굴을 돌리고 조용히 말했다.
“대학교 하나 설립하는데 비용이 그 정도밖에 안 드는가 보죠? 그러지 말고 우리들의 대학교를 새로 하나 세우지 그래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총장의 얼굴은 혼돈과 당혹감으로 일그러졌고, 노부부는 바로 일어나서 나왔다.
이들은 하버드가 더는 마음 쓰지 않는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자기들의 이름을 딴 대학교를 설립했다.
그 대학이 바로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다.
육면체로 된 주사위는 우리가 아무리 많은 면을 보고자 해도 삼면밖에는 보지 못한다. 나머지 삼면은 보지 못한다. 우리가 사람을 보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처럼,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은 겉으로 드러난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보아서도 안 되고,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보아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