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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Jun 10. 2019

직장은 수단일 뿐

공기가 없으면 죽지만 공기를 마시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다

  ‘기업에서 이윤은 공기와 같다’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 공기는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즉 공기가 없으면 사람은 숨을 쉬지 못하여 죽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윤이 나지 않으면 기업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그 기업이 존재하게 된 근본 가치― 보통 사명이나 비전으로 표현한다 ―를 잊어버리고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으로 굴러떨어지면 그 기업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이는 사기업뿐 만이 아니다. 공무원 조직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공기 못지않은 것이 먹고 사는 문제이다. 먹고 사는 것의 원천은 직업(직장)이다. 공기 없이 사람은 살지 못하지만, 사람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직업을 갖지만, 그 직업 자체를 위해 살면 안 된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순간 인생은 불행해진다. 

    

  공무원 가운데 우리 생활과 가장 가까운 게 경찰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조직이다. 음주 운전을 단속한다고 해보자. 왜 술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을 붙잡는 건가? 그 이유는 누군가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을 하게 되면 사고를 낼 가능성이 크고, 자칫 상대방을 다치게 하거나 심할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사고를 당한 사람의 가족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준다. 또한,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이 몰고 있는 차 옆을 걷고 있는 사람이나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은 언제 피해를 볼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즉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음주 운전을 단속한다.

  음주 운전 단속을 하는 경찰관 개인이 이러한 본질적 가치를 잊은 채 실적만을 위해 단속을 한다면 경찰로서 존재가치를 잃을 것이다. 국민은 경찰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최악의 경우 경찰이라는 조직이 과연 계속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당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한 저명한 연구전문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이 내용을 나에게 맞추어 보면, 나는 지금 직장에 수용된 생활을 하는 ‘일시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 아니라 60세 정년퇴직이든 그보다 이른 퇴직이든 ‘끝을 알고 있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이나 평범한 월급쟁이들은 이 사회가 규정해 놓은 60세라는 끝을 알고 있는 수용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직장에서 영원히 있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봐야 한다. 60세라는 석방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비로소 교도소 문이 열렸을 때를 생각한다면 늦는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이희재 옮김, 해냄출판사)이란 책에서 칙센트미하이는 직업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하다면서 당연히 즐거움을 얻고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직장 일을 고역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가 하나 마나 한 일을 한다는 불만이고, 두 번째는 참신한 맛도 없고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 지겨운 일을 밥 먹듯이 되풀이해야 한다는 불만, 세 번째는 상사의 과도한 요구,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 등 직장 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세 가지가 보수나 안정성보다 더 큰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불만도 결국 삶의 비전이나 목적, 목표, 삶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거나 아예 없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장은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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