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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Nov 20. 2023

이것은 가족을 향한 일 년 치 사랑이다.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아버지는 서울에 사셨지만 시골양반이었다. 서울에서 주말농장처럼 소일거리로 농사를 지은 신다고 시작한 농사는 어느새 농부가 되어있었다. 벼농사는 손댈 것이 없다며 시작하신 농사는 밭농사로 늘어나더니, 작물의 개수가 늘어갔다. 어느 순간 농사를 하셔야 한다며 시골에 대부분 계시면서 가끔 서울로 오는 농부가 되어있었다.


생전 엄마가 해주는 밥만 먹던 아버지는 늙은 농부가 되어서 스스로 밥을 짓는 상황에까지 되었다. 시골에 오래 계시다 보니, 스스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된 것이다. 시골에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노인들이 혼자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교육을 해주고 있다.(나도 아버지를 통해서 알게 됐다.)


아버지는 80살이 넘어서 된장찌개를 끓이는 방법을 면사무소에서 진행하는 요리교실에서 배우게 됐다. 나물과 된장찌개를 끓여서 저녁밥을 해 먹었다고 자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아버지는 식구들이 먹을 작물을 키우시는 게 재미있다고 말씀하셨다. 그건 사랑이었다.




우리는 겨울에 친정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김장을 한다. 김장을 하는 모든 작물은 물론 이제 농부가 된 아버지의 야채들이다. 아버지께서 재배하신 배추, 무, 파, 갓, 고추 등등의 야채로 우리는 김장을 한다. 시골집에서 부모님이 다 절여서 온 배추로 우리는 부모님의 서울집에서 김장을 했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아버지는 없다. 올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김장에 사용 할 절임배추를 샀다. 가을에 미리 고춧가루도 샀다. 그리고 김장할 때 각종 필요한 야채를 또 샀다.



나는 오늘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남편은 내가 '아버지의 야채가 그리운 게 아니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 살아생전에 내가 얼마나 못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아서 슬펐다. 그래서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의 고춧가루, 배추, 야채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나는 그걸 아버지가 우리 곁에 안 계신 후에 깨달았다.


자식들 먹이겠다고 혼자 시골에 계시면서 지었던 농사는 '자식의 사랑'이었다.

자식들에게 주고 줘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아버지의 사후에 다시 한번 깨달으며 후회를 한다.


나도 내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치를 만들면서 힘들지만,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김장을 하고 온 오늘,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다. 맛깔스러운 김치를 보면서 좋아하는 아이들은 보니, 피로가 사라진다. 김장하고 와서 몸은 힘들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수육을 삶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김장'은 가족을 위한 일 년 치 사랑이다.

자식들이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아버지도 그런 거였구나!', '아버지 보고 싶어요!'


여러분도 혹시 부모님이 지금 살아계시다면, 나같이 바보같이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사랑과 감사함을 표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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