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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Dec 03. 2023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인가?

한 기사에 눈물이 쏟아졌다.

어제 뉴스에 15층 아파트 1층화단에 6개월 영아가 떨어져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영아가 걸어 다닐 수도 없는데 어떻게 떨어졌을까?' 죽음에 궁금증이 증폭됐다.



그런데 오늘 후속 기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새벽에 15층 아기가 살고 있던 집에서 엄마가 아래로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엄마가?'나는 기사를 한동안 뚫어지게 보고 다시 봤다. 도저히 믿을 수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고층아파트에서 놀다가 부주의로 인하여 '추락사' 했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엄마가 자기 아기를 던졌다니!



(출처: 연합뉴스)


부부싸움을 한 후 남편이 집을 나가버리자, 화가 난 나머지 15층 자신의 집에서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기를 밖으로 던졌다고 한다. '어떻게 인간으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화가 나고, 남편이 꼴 보기 싫으니까 아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신의 물건인가? 화가 난다고 15층에서 던지다니...


경찰, 검찰의 자세한 사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오늘 기사만으로도 너무 충격적이어서 눈물이 쏟아졌다. 어떻게 자신의 자식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남편이 얼마를 어떻게 잘못했는지 몰라도 엄마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다. 자식은 엄마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는 하나의 다른 인격체이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따로 키울 수도 있고, 남편도 싫고 자식도 못 키우겠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이 아이를 키우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낳았다고 아이의 목숨까지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가끔 뉴스에 '온 가족이 동반자살'했다는 기사가 나올 때가 있다. 생활고로 온 가족이 자살했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엄마, 아빠는 서로 죽음을 동의했다고 치자. 그런데 아이들도 죽여달라고 했나? 왜 엄마, 아빠가 아이들의 목숨을 자신이 맘대로 한다는 것인가? 그건 부모가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살인' 말이다. '동반자살'이라는 말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식의 목숨이 여전히 '부모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몰지각한 인간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각자 자신의 인격이 따로 있는 것이다. 부모의 소유물이 절대 아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자행되고 있는 것을 '동반자살'이라고 포장하지 말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인내심이 필요하다.


학창 시절에 공부는 너무나 큰 산처럼 느껴졌다. 공부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지치던지 공부를 잘하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수학을 공부하다 보면 정확한 풀이과정을 거치면 정답이 나온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답이 따로 없다. 아이마다 다 다른 상황이 발생하고, 큰 애의 정답이 둘째 아이의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신체적으로 버거운 일이 다반사다. 회사에서 일하고 와서 매일 아이를 돌보는 일은 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고단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아기가 갓난쟁이였을 때의 바람은 많지 않다. 아이가 제발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면서'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아이가 커서 학교를 가면 친구하고 잘 지내고, 공부를 잘하기가 추가될 것이다.

아이가 더 커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는 힘은 덜 들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기를 바랄 것이다.

아이의 모든 순간에 종종 힘든 고비가 찾아온다.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그 고비를 서로 돕고 다독이면서 헤쳐나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이상적인 가정이 얼마나 될까?




나는 술, 친구를 좋아하는 남편을 만났다. 나도 결혼 전에는 술, 친구를 좋아했지만,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는 누군가는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야 했다. 결혼 후에도 총각처럼 사는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바뀌지 않았다. 결국에 오롯이 나는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워야 했다. 독박육아를 하면서 직장생활도 했던 나의 생활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 많던 결혼 전 친구들도 전혀 만나지 못했고 이제는 그 당시 만났던 친구는 전혀 남아있지 않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정말 감옥살이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피곤에 절어서 매일을 그냥 견딜 뿐이었다. 남편도 밉고 때로는 울어만 대는 아이도 미웠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죽고 싶거나, 아이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이가 독립할 수 있게 양육할 의무가 있는 것이지, 아이는 나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겠다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의 선택인 것이니, 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아기가 초등학교 고학년정도 되면 이제 아이는 다른 것으로 부모를 힘들게 한다. 아이방 문을 열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나가!', '문 닫아!'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들이 다 컸다고 생각하고 혼자 있고 싶어 하지만 여전히 하나에서 열까지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를 일으켜주고,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아이들이었다.

나도 아이들이 없으면 홀가분할 거라고 생각 안 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 덕분에 더 열심히 살았고, 더 열심히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나는 게으를 때는 무척 게으른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있어서 밥을 했고, 같이 밥을 챙겨 먹었다. 나를 일으켜준 원동력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자라면서 아이들 덕분에 얼마나 많이 웃고 행복했는가! 돌이켜보면 아이들의 제일 소중한 보물이고 나의 삶의 원천이다.


지금은 이제 아이들한테 한 걸음씩 뒤로 물러 나려고 노력 중이다. 너무 들이대면 아이들이 싫어할까 봐 거리조절 하는 중이다. 스스로 사회에 나가 자신의 몫을 다 할 수 있도록 엄마가 그때까지 열심히 뒷바라지해 줄 뿐이다.



부모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나의 생각은  그렇다.)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절대 잊어버리지 말자!)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생각을 얘기해 주고 참조하기를 바랄 뿐이지, 받아들이는 것은 아이 각자의 몫이다. 각자의 인생이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나는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면서, 영아를 죽이다니! 

제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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