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기적 일순 없을까(2)

by 이광

우리가 그 사건을 다시 되살려냈을 때는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였다. 미용실 주인은 그 일이 기적이라고 확신하고 천주교 해당 교구에 정식으로 검증을 의뢰했다. 해당 교구뿐 아니라 교황청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이 철저한 검증을 한 결과,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일시적인 기후와 습도의 문제로 생겨난 일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미용실 주인은 이에 승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적임을 주장했고 전국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미용실로 몰려들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몰려왔다. 그들은 기적을 절실히 바라는 사람들, 즉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거나 자신이 아픈 상태여서 예수님의 옷깃만 스쳐도 병이 나았다는 성경 속 치유의 기적이 자신에게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많은 돈을 모으게 된 미용실 주인은 장소가 협소했던 미용실을 떠나 다른 곳에 일종의 성지를 만들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저수지가 있었는데 미용실 주인이 그 저수지 인근의 부지를 사들여 건물을 지어 피정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버젓한 건물까지 마련한 후에는 전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피정이란 명목으로 몰려들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곳은 점점 왕국이 되어갔다. 급기야 로마 교황청에서 이단으로 결론을 내고 전국에 있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곳에 가지 말 것을 엄중히 권고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 나는 누나와 함께 교회에 다녔는데 신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순전히 교회 형이나 교회 오빠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중등부 회장까지 했지만, 교회 안에서 성행했던 불합리한 일들 때문에 종교와 담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 때문에 갖게 된 종교를 결국 사람 때문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아이러니한 일 중에 하나로 남아있다. 그때는 나의 믿음이 금세 돌아설 수 있는 딱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외가의 영향으로 어머니와 누나가 먼저 성당에 다니게 되었고 어떤 특정한 계기 때문에 나도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내가 ‘눈물 흘리는 성모상이 있는 곳에 가지 말라는 교회의 권고’를 접하게 된 것은 성당 미사가 끝날 무렵 신부님의 공지를 통해서였다. 누나와 나는 그 성모상을 직접 봤지만, 그것이 확실히 기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났던 터라 평일이든 주말이든 그곳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놀라울 뿐이었다, 다시 말해 전국에 걸쳐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다는 것이 오히려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그만큼 세상에는 기적을 바랄 정도로 삶이 위태로운 사람이 많다는 증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바라는 기적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은 눈물 흘리는 성모상이 기적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절실하게 매달릴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대상을 눈물 흘렸다는 성모상으로 정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에게 짠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 무엇이 있을까.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병을 이겨내고 일어나는 것, 로또 1등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되는 것. 이런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벼락 맞는 것보다도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의 이성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기적을 다른 각도로 생각해 봤을 때 정말 기적이라고 안 믿어지겠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면 그 무엇이 기적이겠는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것 말고 또 무슨 기적을 기대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영화 <패터슨>은 미국의 패터슨이라는 도시에서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평범한 버스 운전사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그린 영화다. 언뜻 보면 패터슨의 삶이 아주 지루한 삶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패터슨은 단순한 일상에서 시어를 발견하고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영화는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보통의 일상에서 “아하! 바로 저거야"라고 하면서 반짝이는 시어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단순하게 보이는 일상에서 “아하,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기적이야!”라고 깨닫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에 응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헤아리기도 막막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을 스쳐갔다. 우리는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에 태어났을 수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아닌 정반대 편에 있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었다. 내가 태어난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의 아들딸로 태어났을 수도 있었다. 내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 이러한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뚫고 블랙홀을 지나 우리는 지금 바로 이곳에서 너와 나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는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면 소나무에 깃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어린 초등학생들이 올망졸망 떼를 지어 쉴 새 없이 수런대며 걸아 가는 등굣길을 흐뭇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 한적한 숲길을 걸으며 폐부까지 신선한 공기를 깊이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것, 계절마다 피어나는 예쁜 꽃들을 바라보며 자연과의 일치를 꿈꿀 수 있다는 것,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가지의 유연함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에 하던 일을 멈추고 집 앞 담벼락에 기대어 햇빛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 감미로운 음악과 따스한 커피 한 잔의 조화로움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속삭임을 듣고 전율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등등


바로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이 기적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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