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기적 일순 없을까(1)

by 이광

내가 다닌 중학교는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께서 통학할 때 타라고 새 자전거를 사주셨지만, 일주일 내내 그 먼 길을 자전거를 타고 오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네 형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그때는 버스가 마을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버스를 타려면 한 시간을 걸어서 큰 도로까지 나가야 했다. 그래서 동네 중고등학생들이 통학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나는 고등학교 다니는 누나와 방 두 칸짜리 전세를 얻어 학교가 있는 시내에서 자취할 수 있었다.


누나가 늘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은 대여섯 명이 있었는데 모두 자취를 하고 있었다. 누나들은 주말이면 각자 시골집에 다녀왔는데 집에서 가져온 반찬이나 지역 특산물 같은 먹거리를 나누어 주곤 했다. 누나들은 뭐가 생기면 서로 나눠 먹고 나눠 쓰고 때로는 마음까지 나누는 모습이 갓 중학생이 된 내 눈에는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누나들은 자기 동창들을 서로 소개해주기도 했는데 아무나 되는 대로 소개해주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그 만남이 진지하고 오래갔다. 그때 소개받아 만남을 이어가던 한 커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둘 다 공부나 취직을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도 만남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어 아들딸 낳고 잘살고 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도 고등학교가 함께 있었는데 남녀 공학이었다. 그중에는 예쁜 외모와는 다르게 살벌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있었다. 일명 ‘칠공주’라고 불리는 여학생들은 방과 후에 시내 여기저기를 몰려다녔는데 그들에 대한 소문은 중학생인 나에게는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어떤 여학생은 면도날 조각들을 씹어서 사람 얼굴에 뱉어 큰 흉터를 남겼다는 소문부터 골목길에서 지나가는 중학생의 주머니를 턴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여러 소문이 나돌았다. 나도 친구가 귓속말로 알려주는 바람에 일렬횡대로 건들대며 걸어가는 그 소문의 실체를 확인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예쁜 누나들이어서 설마 저렇게 예쁜 누나들이 그렇게 살벌한 짓을 할 것 같지 않다고 했더니, 내 말에 발끈 한 친구가 무릇 나와 같은 애들이 저런 무리한테 당하기 십상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누나를 비롯한 무리도 숫자에서는 밀리지만 함께 몰려다닌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누나들은 면도날을 씹거나 담배 살 돈을 모으기 위해 순진한 애들의 돈을 빼앗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밝고 맑은 누나들이었다. 어떤 누나들은 내가 볼 때마다 로맨스 소설을 손에 들고 다닐 정도로 그런 부류의 소설을 좋아했다. 그 당시 나는 로맨스 소설이 어떤 재미를 주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시리즈로 나오는 소설을 끊기지 않고 연달아 읽어내는 누나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중에 농사짓은 집안의 누나들도 있었는데 바쁜 농사철에는 시험 기간에도 부모님 일손을 거들러 집으로 향하는 착한 누나들이었다.


누나들은 학교를 마치고 같은 학원에 다녔는데 학교에서 학원으로 가는 길목에 버스정류장 옆 작은 미용실 하나가 있었다. 그 미용실로 들어가는 문은 새시로 된 여닫이문이었는데 먼지가 날리는 길이라 유리가 늘 뿌옇고 탁했다. 미용실 맞은편에는 널찍한 개천이 있었다. 개천 건너편에는 하얀 성당 종탑이 우뚝 서 있는 나지막한 소나무 동산이 있었다. 미용실 주인은 건너편 성당에 다니는 신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도시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일이 미용실에서 생겼다. 다름이 아니라 미용실에 딸린 방 한쪽에 놓인 성모상에서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성모상을 보고 주인은 기적이라고 믿고 성당에 알렸다. 직접 보고 간 주위 사람들이 그들의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알려 급기야 지역 방송사에서도 촬영 나올 정도로 떠들썩한 사건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가던 누나들이 이 소식을 비교적 빨리 접하고 직접 미용실에 들어가 성모상의 눈물을 확인했다. 집에 돌아온 누나가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는 바람에 듣고 있던 나와 친구는 호기심에서 곧바로 미용실로 향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미용실에 도착했을 때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친구와 나도 조심스레 미용실에 들어가 성모상을 볼 수 있었다. 성모상 옆에 촛불을 켜 놓았는데 촛불 때문에 그런지 성모상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빛났다. 실제로는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랫눈썹부터 눈물이 흐르는 길이 젖어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주인은 우리가 잘 볼 수 있도록 하얀 손수건으로 성모상의 눈 밑을 닦아주었다. 눈물을 닦고 조금 있으면 다시 촉촉해진다는 것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서 실제로 물기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우리는 자리를 비워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구는 아마도 주인이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어떤 속임수 같은 마술을 한 거라고 추정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직접 눈으로 목격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사람을 더 헛갈리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던 순간이었다. 확실한 판단을 하지 않고 그런 일이 있었고 흥미롭게 직접 확인한 걸로 끝난 하나의 에피소드였다.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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