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by 이광

올 한 해 동안 가톨릭 출판사의 캐스 리더스로 선정되어 활동 중이다. 캐스 리더스가 하는 일은 가톨릭 출판사에서 출간된 신간 서적 중 내가 읽고 싶은 한 권을 선택해서 읽고 서평을 제출하는 것이다. 어디에 매이는 것을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까닭에 즐거워야 할 독서와 서평이 의무감 때문에 하게 되는 일이 될까 염려되어 서평 쓰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고서도 늘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평소에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명상이나 영성 관련 책들을 즐겨 읽는 나에게 출판사에서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영성 서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일방적으로 보내 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우연히 마주하게 된 모집 공지에서 머뭇거림 없이 지원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월, 2월에는 월말에 내가 선택한 책이 도착하면 곧바로 읽기 시작해서 월초에 서평을 제출했다. 지금이 3월이니까 세 번째 책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3월에는 리포트 작성과 시험 기간이 겹쳤고 기존에 하고 있던 작업도 있어서 서평 쓰기를 뒤로 미루고 있었다. 리포트도 작성해서 제출했고 시험도 치렀고 나는 여전히 다른 책을 읽고 있었지만, 서평을 써야 할 책은 선반 위에 올려진 상태 그대로였다. 책의 저자가 쓴 책들을 읽고 여러 번 감동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이전과 같은 내용이라고 짐작하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20일에 읽고 서평을 쓸 거라고 수첩에 적어두었다. 드디어 20일이 되었다. 읽고 있던 책들을 마무리 짓고 서평 쓸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에 경험한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한 심리상담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심리 치료에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하는 방법을 적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큰 선물이었다. 성경을 접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생각하고 여러 번 강론을 들어도 이해되지 않은 성경 구절이 있었다. 이해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해되지 않는다고 묻지 못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아직 사랑을 모르고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세상을 보는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저 마음 한구석에 해결되지 않은 채로 지나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관점에서 성경 구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늘 뿌연 안개에 휩싸였던 것이 한순간에 선명해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성경에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가 나온다. 포도밭 주인이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문제는 아침 일찍부터 일한 일꾼이나 9시, 12시, 오후 3시, 심지어 오후 다섯 시부터 일을 시작한 일꾼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이다. 그러자 아침 일찍부터 일한 일꾼들은 약속한 하루 품삯을 받았는데도 그 일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맨 나중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자신들과 똑같이 대우한다고 불평한 것이다. 자신이 약속받은 하루 품삯을 받았다면 주인이 다른 일꾼들에게 일한 시간에 상관없이 하루치 품삯을 다 주는 것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일꾼이 욕심이 많아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고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평화롭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봐야 하는가. 나도 매번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먼저 일을 시작한 일꾼들처럼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느님의 큰 뜻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멀었고 그만큼 내 안에 사랑이 부족하고 공평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타인과 비교하는 고질적인 습성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에 이 구절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다음에도 매번 죄책감을 느끼며 그 부분을 지나쳐야 했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성경 구절을 잘못된 관점으로 접근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11시간 일한 사람과 1시간 일한 사람에게 동등한 임금을 지불한다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그렇게 느낀다고 해서 딱히 내가 욕심이 많다고 생각해야 하거나 죄책감을 느껴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교부들은 한 데나리온이 사람이 온전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여겼다고 한다. 이 문장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새로운 시각으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바라보게 되었다. 한 데나리온이 사람이 온전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상징한다면 사람이 온전해진다는 것, 다시 말해 온전한 자아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믿는다. 달리 말해 천국을 믿는 것이다. 포도밭 주인이 일꾼들에게 약속한 품삯으로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상징하는 한 데나리온을 준다는 것은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주는 것이었다. 하느님을 어린 나이에 믿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이 들어 하느님을 믿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에 하느님을 믿게 된 사람이나 나이 들어 하느님을 믿게 된 사람이나 똑같은 열쇠를 받았다고 해서 손해 봤다거나 불공평하다고 볼 것인가. 그리고 나이 들어 하느님을 믿어도 얻게 될 열쇠라면 굳이 이른 나이에 하느님을 믿을 필요가 있냐고 생각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다 보면 그동안 뿌옇게 가리고 있었던 안개가 걷히고 한순간에 선명해짐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동안 그 성경 구절을 접할 때마다 느껴야 했던 불확실성을 내포한 죄책감도 안개와 더불어 말끔히 사라졌다.


이 밖에 여러 구절에 대해서도 그 안에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묵상할 수 있었다. 책은 우리 안에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이 이번처럼 와닿았던 때도 없었다는 생각에서 서평을 쓴 후기를 적어본다.



* 『내 마음의 주치의』 안셀름 그륀 지음,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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