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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May 05. 2022

5월

 5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어린이날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세상에 어린이였던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나는 어린이로서의 혜택을 참 많이 받고 자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과 관심뿐만 아니라 선물이나 용돈도 많이 받았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 용돈을 줬던 어른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한다.      


 아버지는 친구를 좋아하고 음주를 즐기셨다. 시내에 볼일 보러 나가실 때면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냥 헤어지기 서운해서 술 한잔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가까이 사는 친구들을 불러내고 불러내다 보면 파티 수준에 이르게 되고 더 이상 그날은 다른 일은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아버지께서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술을 마시지 않고 헤어질 수 있는 방법으로 나를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나를 자주 시내에 데리고 가셨다.  

 시내에서 만난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런저런 덕담을 건네고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아버지는 애들에게 돈 주는 거 아니라고 하시며 아버지의 친구를 말리셨지만, 친구분은 아버지 손을 밀쳐내고 내 손에 용돈을 쥐여주고야 만다. 나는 그분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면서도 초면부지의 어른에게 용돈을 받는다는 것이 여간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었다. 만나는 분마다 나에게 용돈이라고 하시며 돈을 주는 바람에 집에 돌아올 때면 바지 주머니가 제법 불거져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서는 나를 데리고 다니면 술 안 마셔서 좋긴 한데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게 번 돈을 나에게 주는 바람에 그것도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하시며 나를 자주 데리고 오면 안 되겠다고 하셨다. 그 뒤로는 아버지를 따라 시내에 가는 일은 어쩌다 한 번씩으로 줄었다.      


 부모님께서 정미소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평소에 집에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점심때가 되면 손님들도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어머니께서는 상당히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하셨다. 그러면 나는 정미소 앞에 나가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식사하고 가시라고 집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분들이 식사하는 동안에 나는 잔심부름을 하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그러면 꼭 잔칫집 분위기가 났고 나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손님들이나 동네 어른들이 식사를 마치고 가시면서 하나같이 나에게 용돈으로 만 원짜리 지폐를 주고 가셨다. 역시 그 모습을 보고 계시던 부모님은 달려와 말리셨지만 결국 내 손에는 구겨진 만 원짜리 지폐 여러 장이 들려있었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난감해했다.      


 그 당시 나에게는 문구점이나 동네 슈퍼에서 원하는 것을 직접 살 수 있는 천 원짜리 지폐와 백 원짜리 동전의 위력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만 원짜리 지폐는 한낱 종이일 뿐이었다. 그래서 만 원짜리 지폐를 주머니에 넣어 두고도 잊어버릴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빨래하시려고 주머니를 뒤집다가 지폐를 발견해서 수장될 위험에서 구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어떨 때는 만 원짜리 지폐를 어머니께 드리면서 천 원짜리 한 장으로 바꿔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천 원짜리 지폐 열 장이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었지만 만 원짜리 지폐는 어린 내가 쓸 단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천 원짜리 지폐는 잘 접어서 간직했던 반면 만 원짜리 지폐는 주머니에 넣어두고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아버지께서는 자주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내가 받는 돈은 언젠가 갚아야 하는 돈이라고. 그래서인지 어른들로부터 용돈을 받으면 좋았던 적은 없었고 이 돈을 언제 다 갚아야 할지 모르는 데서 오는 막연한 부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많은 어른들이 단지 누구 집 막내아들이라는 것만으로 내 손에 쥐여준 용돈은 결국 내가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서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껏 받은 것이 어디 용돈뿐이던가.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염려와 축원을 밑거름 삼아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사회와 타인에게 갚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진다.  

 그러고 보면 삶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이 수많은 사람과 나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인간애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관통하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님과 형제들, 더 나아가 선생님이나 이웃들에게 지금 함께할 수 있는 기쁨과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5월은 참으로 가슴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달임이 분명하다. 또한 보이지 않은 곳에서 슬픔의 구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이 잘 견뎌낼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더욱 사랑이 넘치는 5월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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