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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May 07. 2022

어머니의 레퍼토리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1998년에 발표된 그룹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래이다. 오늘 어머니와 식탁에 마주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데 오늘따라 미역국이 엄청 맛있었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상시에 ‘밥을 병아리 모이 먹듯’ 먹는 나는 미역국만 한 그릇을 먹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또 한 그릇을 비웠다. 그걸 지켜보시던 어머니께서 미역국이 사람한테 얼마나 좋은지 아느냐며 어머니 레퍼토리를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미역국에 맺힌 한이 있어 지금까지도 미역국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옛날에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들리는 바에 따르면 할머니는 어머니께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아주 모진 분이셨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 당시 할머니는 며느리 시집살이를 퍽이나 시키셨다. 큰어머니와 어머니는 같은 시기에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큰어머니는 아들을 낳으셨고 어머니는 딸을 낳으셨다. 할머니는 아들 낳은 큰며느리에게만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딸 낳은 둘째 며느리에게는 딸 낳았으니 미역국 먹을 자격이 없다고 맨밥에 김치만 갔다 주셨다고 하신다. 할머니 본인도 누군가의 딸이고 딸을 둘씩이나 낳은 적이 있는 여자이면서 며느리가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미역국을 못 먹게 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고 해도 해도 너무 하신 처사가 분명했다. 그때 어머니는 누나에게 젖을 물리는데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어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그때 못 얻어먹은 미역국이 너무도 한이 맺혀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역국을 즐겨 드신다. 어머니에게 미역국이란 한 맺힌 음식이다.    

  

어머니는 미역국을 드실 때마다 너무도 서러웠던 그때가 생각나 이야기를 반복하신다. 이제는 내가 그 이야기를 다 외울 정도이다. 어떨 때는 하도 많이 들은 이야기라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얼마나 상처가 되었으면 지금까지도 저러실까란 생각에 이제 그만하시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미역국이 미끄덩거려서 먹는 것이 별로였는데, 언젠가부터 미역국을 즐겨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 미역국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전에 미역국을 먹으면서 미끄덩거린다고 생각했던 식감은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변했다. 미역국은 처음 끓여서 먹을 때도 맛있지만 커다란 냄비에 끓여서 곰국처럼 식사 때마다 데워 먹어야 제대로 된 미역국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미역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국물이 진해져서 갈수록 더 맛있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또 다른 음식은 명태탕이다. 명태 한 마리로 탕을 끓이면 필연적으로 대가리, 몸통, 꼬리 토막이 누군가의 국그릇에 놓이게 된다. 나는 명태탕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굳이 찾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명태를 참 좋아하셨다. 나는 어머니께서 명태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내 국그릇에 몸통을 넣어주시고 당신 국그릇에는 대가리만 넣으셨다. 그러면서 항상 ‘나는 명태 중에서 대가리가 제일 맛있더라’고 말씀하셨다. 그것 역시 어려서부터 늘 들어왔던 레퍼토리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정말로 명태 대가리를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명태탕이 끓여진 날이면 자동으로 대가리를 먼저 어머니 국그룻에 챙겨드렸다. 


어느새 나도 어른이 돼서 명태의 맛을 좀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명태를 먹을 때면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난날 명태 대가리를 좋아하신다는 어머니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대가리를 먼저 어머니 국그룻에 넣어주던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나는 어머니에게 너무도 죄송스러웠다. 이제는 명태탕을 끓이면 살이 많은 몸통과 대가리를 같이 국그릇에 넣어드린다. 그러면 별다른 말씀 없이 맛있게 잘 드신다.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명태탕을 한 숟가락 떠먹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앞으로도 명태탕을 먹을 때면 나는 아마도 오래도록 그럴 거라고 짐작한다. 


* 5월 8일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이 땅의 모든 어버이에게 건강과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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