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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Jun 27. 2022

바이러스를 사육하는 남자

6월에 들어서면서 머리스타일을 바꿨다. 일명 스포츠머리로 아주 짧게 잘라버렸다. 샤워를 자주 하는 여름철에는 아무리 냉풍 기능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더라도 그 사이 땀이 나버려 샤워한 것이 무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짧은 머리스타일을 유지하려고 또다시 미용실을 찾았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아지트나 마찬가지다. 코로나 기간에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원장이 현란하게 머리 손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내가 처음에 그 미용실에 갔을 때는 그런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 미용실에 계속 다니다 보니 점차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익숙해졌다. 아주머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님들이 하나둘씩 빠지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원장에게 웃으며 오늘은 피 안 나게 천천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원장은 걱정 말라고 하며 지난번엔 죄송했다고 다시 사과했다. 


그러니까 지난번 미용실에서 머리를 짧게 자를 때 일이다. 머리를 짧게 잘라달라는 말에 원장은 바리깡(전동 이발기)을 집어 들고 오른쪽부터 시원하게 밀기 시작했다. 나는 평상시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원장은 오른쪽에 이어 뒤통수도 시원하게 밀고 마지막으로 왼쪽을 밀기 시작했다. 바리깡은 귀 뒷부분을 밀고 귀 앞쪽으로 넘어왔다. 바로 그 순간, 바리깡이 관자놀이 아랫부분을 거침없이 밀고 올라올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아'하고 소리를 내뱉었다. 순식간에 왼쪽 눈엔 눈물이 핑 돌았다. 소파에 앉아 구경하고 있던 아주머니들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지난해에 왼쪽 관자놀이 바로 아래에 조그마한 사마귀가 났다. 레이저로 처리하려고 했지만 그 부위는 안 된다고 해서 그냥 두었다. 그곳이 보이지도 않는 곳이고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다고 해서 그냥 두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리깡이 구레나룻 아래에서 위로 피부에 밀착해 밀고 올라갈 때 사마귀도 같이 밀어버렸던 것이다. (흐흑, 지금 생각해도 그때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그로 인해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원장도 당황했다. 재빠르게 옆에 있던 화장지로 흐르는 피를 닦고 상처를 눌렀다. 원장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미리 알리지 못한 내가 책임이 더 컸다. 내가 원장에게 바리깡 사용할 때 사마귀 있는 곳을 주의하라고 미리 말해야 했다. 

집에 와서 상처부위를 소독하면서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사마귀가 없어지길 바랐다. 어렸을 때 무릎에 사마귀가 있었는데 자라다 보니 없어졌다. 그 생각을 하면서 없어지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사마귀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번에 원장은 왼쪽 머리를 밀 때 무척 신중했다. 무사히 끝났다. 그런데 원장이 내 머리를 샴푸 하면서 손톱으로 사마귀를 건들었다. 앗! 안심하고 있을 때 한 방 맞았다. 이번에는 소리 내지 않았다. 원장도 눈치채지 못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머리를 말리는 데 원장이 하는 말, "어 또 피난다." 저번처럼 많이는 아니지만 피가 흘러내렸다. 소파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들의 화제는 금세 사마귀로 바뀌었다. 


다른 일 때문에 약국에 갔다가 사마귀에 대해 물었더니 약사도 이마 한쪽에 사마귀가 생겼다고 보여준다. 지난해에 내가 엄지 손가락을 차문에 끼어 멍이 들었을 때도 자신의 울퉁불퉁한 새끼손톱을 보여주며 치료 잘 못하면 그렇게 된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사마귀를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그 약사를 볼 때마다 친근감이 느껴진다.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는 절레절레.) 약사가 사마귀가 바이러스 질환이라고 하길래 집에 와서 검색해 봤더니 사실이었다.


"사마귀는 피부 또는 점막이 사람 유두종 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 HPV)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질환으로, 표피의 과다한 증식이 일어나 임상적으로는 표면이 오돌토돌한 구진(1cm 미만 크기로 피부가 솟아오른 것)으로 나타납니다. 어느 부위의 피부에나 발생할 수 있으나 노출 부위인 손, 발, 다리, 얼굴 등에 주로 발생하고, 성 접촉을 통해 성기에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종류도 여러 가지다. 발바닥에 생긴 사마귀도 있다. 심지어 성기에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어느 부위에 난 사마귀라도 될 수 있으면 손으로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코로나19에서 시작해서 원숭이두창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의 위력에 대해 실감하게 된다. 바이러스 질환이 이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류가 지속되는 한 바이러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세포에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공존 모색)


이쯤에서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바이러스를 사육하고 있다.(커밍아웃?)

그것은 바로 긍정 바이러스! 요즘에 긍정 바이러스에게 먹이를 주느라 여념이 없다. 코로나19나 원숭이두창, 유두종 같은 바이러스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이 긍정 바이러스는 내 마음대로 사육할 수 있어서 무척 매력적이다. 


 한 제자가 붓다에게 물었다

 제 안에는 마치 두 마리 개가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한 마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우며 온순한 놈이고다른 한 마리는 아주 사납고 성질이 나쁘며 매사에 부정적인 놈입니다이 두 마리가 항상 제 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어떤 녀석이 이기게 될까요?”

 붓다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그러고는 아주 짧은 한 마디를 건넸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다.”     

                                                   -존 고든의 '에너지 버스' 중에서-





*긍정 바이러스 한 마리 몰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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