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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Jun 22. 2022

사랑은 만병통치약?

사람들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가거나 특정한 물건을 봤을 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내가 그렇듯 상대방 또한 나를 두 갈래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돌아봤더니 예전에 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있을 때 팀원이었던 여성이 나를 부른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 두 사람은 길에 서서 안부를 전했다. 그런데 그 여성이 예전에 비해 확연하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수국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새삼스럽게 느껴졌고 무엇이 그녀를 미소 짓는 꽃봉오리처럼 보이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무슨 좋은 일이 있어 보인다고,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랬더니 그녀는 여전히 화사하게 웃으며 작년에 결혼했고 지금 임신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너무 잘됐다고 말하고 늦었지만 결혼과 임신을 축하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비혼 주의자였다. 그런데 30대 후반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보니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고 한다. 

결국 그녀를 화사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내가 속한 팀에 들어왔을 때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 때문에 당황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표정이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팀원들과 갈등이 끊이질 않아 그들을 중재하려면 매번 머리가 지근거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녀는 안타깝게 대인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무심코 한 표정이나 행동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떨 때면 그녀는 늦은 밤에 내게 전화를 걸어 오늘 사무실에서 아무개가 자신에게 그랬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면 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다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오해다,라고 말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런 나에게도 자신이 팀원이 되어 괴로울 거라고 하면서 미안해했다. 사실 괴롭기는 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고 다만 나도 도울 테니 다른 팀원들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해 달라고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는 계속해서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우리 팀원뿐 아니라 다른 팀 소속 직원들도 그런 그녀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보고 있는 나도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자주 옥상 휴게실로 데리고 올라가 자판기 커피를 건네면서 조언을 해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당신이 생각하듯 당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해 표정을 바꾸고 어떤 동작을 취할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그러니 생각을 여유롭게 가지고 혹시라도 다시 그런 생각이 들거든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해라. 나는 그녀에게 대개 이런 말들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로도 변하지 않았고 급기야 자신을 이해해주던 사람들도 슬금슬금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의 사람 관계는 점점 좁아졌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나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듣기로는 그녀는 정신과 상담도 받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독립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녀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길거리에서 나를 보고 달려와 먼저 아는 체했다. 예전 같았으면 내 얼굴을 봐도 모른 체하고 지나갔을 그녀였다. 그녀는 꽃봉오리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안부를 전했다. 

나는 돌아서 걷는 내내 생소하게 느껴졌던 그녀의 표정을 떠올려보았다. 그녀의 환한 표정은 사랑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문득 원빈의 대사가 생각난다. '사랑? 얼마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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