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걷는 일’을 말한다. 말 그대로 휴식과 건강을 목적으로 걷는 행위가 바로 산책이다. 휴식이란 시곗바늘처럼 쉼 없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일상으로부터의 잠시 벗어나 삶의 여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여유가 있어서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찾기 위해 산책하는 것이다. 산책은 일종의 쉼표와 같다. 바쁜 일상에서 평상시 먹고사는 일로 우리는 늘 피로하다. 어쩌면 우리의 먹고사는 일이 광활한 초원에서 사냥에 나선 호랑이나 사자의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호랑이나 사자는 야외에서 먹이활동을 하지만 사람은 콘크리트 건물에서 미세먼지와 환경호르몬을 들이마시기까지 하니 더욱 피로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휴식도 얻을 수 있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산책은 단순하면서도 거저 얻을 수 있는 보물인 셈이다. 산책할 때는 거추장스러운 어떤 장비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평상복 차림으로 가볍고 편안한 신발을 신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시계처럼 정확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칸트는 산책을 몹시 사랑했고 규칙적으로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매일 오후 5시에 규칙적으로 산책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칸트가 산책을 빼먹은 일은 딱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루소가 <에밀>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칸트가 <에밀>을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서 빠진 것이고, 또 한 번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때였다. 그는 이 두 번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후 5시가 되면 산책길에 올랐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칸트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겨왔고 지금도 주위에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동네에서 칸트처럼 규칙적으로 산책하는 노인을 알게 되었다. 그 노인은 90이 훨씬 넘었지만 매우 건강해 보였다. 아마도 규칙적인 생활습관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어느 날 내가 골목 안 주차 공간에 주차를 마치고 막 차에서 나오려고 문을 열자 갑자기 지팡이를 짚고 골목길로 접어든 노인이 내 차 옆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나는 너무 놀라 차에서 얼른 내려 노인이 괜찮은지 살피고 어깨를 부축해서 일으켜드렸다. 노인을 길 가 연석에 앉게 하고 손이나 무릎을 살피니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노인들은 뼈가 약해서 쉽게 금이 갈 수도 있어서 내가 구급차를 부르려 하자 노인은 괜찮으니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내리막을 내려오다가 내 차에서 좀 떨어져 지나가려고 하다가 스텝이 꼬여서 넘어졌다고 했다. 죄송한 마음에 노인을 집 앞까지 모셔다 드리고 혹시 몸이 이상이 있으면 전화하시라고 내 명함을 손에 쥐어 드렸다.
그다음 날 산책 갔다 돌아오는 노인을 길에서 만나 인사를 드렸다. 노인은 아무 이상이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 이후로 노인이 오전 10시경에 한 번, 오후 3시경에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차례씩 산책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인은 비가 내려 바닥이 미끄러운 날을 제외하고는 산책을 거르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 노인이 산책 중에 잠시 쉬어가는 곳도 알게 되었다. 노인은 길거리에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벤치에는 안 앉고 길가 조경으로 생긴 약간 높은 듯해 보이는 커다란 돌에 앉아서 잠시 쉬어간다. 겨울이면 귀를 덮을 수 있는 방한모자를 쓰고 털장갑을 꼈다. 노인은 팬데믹에도 산책을 빼먹지 않았고 달라진 점은 마스크를 쓰고 산책한다는 점이다. 동네 사람들은 빠지지 않고 산책 나온 노인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에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고 한다. 어떤 이는 건강을 돌보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신 부모가 생각난다고 말하며 저렇게 매일 거르지 않고 건강을 챙기시는 모습을 보는 사람이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는 부디 오래도록 그 노인이 건강한 모습으로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