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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길 colour Jun 08. 2020

Drawing_몸을 쓰다

2020.06.07.해날











이른 물놀이를 시작했다.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허름한 창고 한켠에 앉아

뜨거운 바다를 대신할

미지근한 수돗물을 받았다.


나만큼 키가 자란 아이들이

이런 놀이를 유치하게 여기지 않을까

염려했던 기우는 먼지처럼 날아갔다.


오전 내내 학습문제로 나와 각을 세우고 있던 아들은

자전거를 타며 엄마란 존재를 잊은 듯했고,

성난 엄마의 눈치를 슬슬 보던 딸은

요기에 버금가는 기량을 선보이며 묘기를 부렸다.


애초부터 계획에 없던 소박한 나들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몸을 자극했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개학에

마음의 대부분을 쓰고 있던 나와 다르게,

아이들은 충분히 몸을 쓰며

지금-여기의 놀이에 집중했다.

그늘진 창고에서 흠뻑 젖은 몸이 서늘해졌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 목적 없는 뜀박질을 하고,

자갈길을 누벼야 하는 자전거가 근육을 자극하면

물로 열기를 식혔다.

나 역시 아이들을 위해 쓰는 손놀림이 재빨라지며,

내일을 위한 걱정은 저절로 미뤄뒀다.


소박하고 단순한 욕구가 채워짐에

마냥 즐거운 아이들을 보며,

자연스레 '몸을 쓴다'는 것에 대한 내 편견과 인색함이 들여다 보였다.


일하는 엄마라는 핑계로

가사노동에 '몸을 쓰는 일'이 힘들다고 투덜대던 나는,

집으로의 퇴근이 또 다른 일터로의 출근이라 여겼다.

'몸을 쓰는 일'을 굳이 찾아가며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역할의 무게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아이들이 '몸을 써' 놀아주길 원할 때마다

잘 나가는 육아서의 한 구절을 되새김질하며,

책으로 아이들을 달랬다.

'몸을 씀'으로 시선을 맞추고

흥분된 체온과 감정을 나누며

흔쾌히 아이들과 놀아줄 자신이 없었다.


삼시세끼 나눔 역시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맛을 즐기기보다,

생명 유지의 알약처럼 꿀꺽 삼키는

대체제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 내가 아이들처럼

목적 없는 뜀박질 자체를 즐길 수 있는지 의문을 품고,

경쾌하게 움직이는 행위

점점 더 퇴화되는 까닭에 대하여 헤아리고 있다.

이는, 짧은 시간이나마 안전하게 개방된 공간에서

'나와 친숙한 존재들을 위해 몸을 쓰는 일이 가치 있구나!'라는

인정과 감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예전에 비하여 몸을 쓰는 일이 적어짐은

나이 들어감에 따른 몸 기능의 퇴화보다

몸을 쓰고자 하는 의지의 퇴화가

더욱 앞선다는 생각 역시 확실해졌다.


'몸을 쓰는 일'을 미룸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금전적 기댓값을 저울질하고,

활력있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건조한 패턴이 반복되어 왔다.

건강, 관계, 여유, 몰입, 휴식 등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은

당연히 후순위로 내몰렸다.


아이들은 삶의 폭이 좁아진 나와 달랐다. 

'몸을 쓰'는 행위를 기점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인지적, 정서적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듯 보였다.

쌓인 에너지를 분출하고

신선한 에너지를 채우는 선순환 구조는

몸을 쓰는 사람에게 가능하다.

즉, 몸의 쓰임이 늘어날 때마다

살아있는 존재는 위험에 탄력적이고 성장에 견고해진다.


아이들은

물놀이, 자전거, 달리기, 줄넘기, 훌라후프, 체조, 요가, 축구, 술래잡기 등으로

에너지를 분출하고,

이를 채우기 위한 음식을 요구했다.

식사는 평온했다.

고기 몇 조각에  허여멀건한 쌀알,

과육이 단단한 토마토가 전부였지만,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은 정갈한 한 끼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전거 타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기 위하여

책을 정독하기보다

몸으로 넘어지는 방법을 선택한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오랜 기간 '몸을 쓰는 일에 소홀함'으로

인생이라는 자전거 핸들을 쥐고

균형을 잡는 법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그동안 몸과 정신이라는 삶의 바퀴를

굴리고 나아가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람이 빠진 몸의 바퀴를 모른척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만 가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정 의미 있는 이들과 풍요로운 일상을 기대한다면,

속도를 멈추고 '몸의 쓰임'을 들여다봐야 할 때이다.



□ '달리'에게 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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