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4.화
빗속을 뚫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경험한 아침,
너덜너덜한 운동화가 흠뻑 물먹은 양말을 지탱한 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긴 한숨을 내뿜는다.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고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인 요즘,
나는 작은 것에서
불행과 무기력함을 느끼는 날이 많다.
'이 정도도 못해?'
'남들은 척척 해내던데,,,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낑낑거리는 거지?'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다'
'애쓰고 싶지 않다'
'그저, 그냥, 쉬고 싶다'
인간이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때,
누군가는 뭐 어때라는 한 방 날림으로
호시탐탐 자신을 엿 먹이려는 인생과
박진감 넘치는 맞짱을 뜨는 반면,
난 링에 오르기도 전에
심장이 큼지막하게 쿵떡 거리며
미죽은 내 꼬라지를 서글퍼한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삶에 천착하며
애걸복걸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여뭇여뭇 올라오며,
내가 집착스럽게 애써왔던 것들의 의미도
일제히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이렇게 마음이 술렁이는 순간
모든 감정과 생각은 현재에 있기보다
부정적 경험과 감정으로 일그러진
과거의 사건을 끄집어 올린다.
엊그제
후드를 닦아내며 쓰리게 베였던 손가락 마디마디가 신경질적으로 쓰렸던것을 기억해내고,
오늘 아침 우산을 제대로 펴지 못한 건
독박 집안일 때문이라는 생각에 가닿는다.
모든 건 내 성질머리가 원인인데
이를 투사할 대상을 찾지 못한 것이
약 오르고 안달 난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히스테릭하게 만드는 것인지
돌아볼 여유가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내 안에 기쁨을 느끼는 감각세포보다
슬픔, 불안, 우울함을 느끼는 감각세포가
훨씬 더 기민하고 섬세하게 존재함을 알아차린다.
그저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 알아차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