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_사랑하지만 이해하기는 힘든 아들

2020.01.07.불날

by 이길 colour


[Drawing_시선의 차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의 교복을 맞추러 나섰다.

이른 방학에 아침부터

룰루랄라 바깥을 쏘다니던 아이의 몸에서

물큰한 비린내가 난다.

연유를 물으니,

비를 맞으며 축구를 했다나?


나의 상식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의 계절은 분명히 겨울이고,

겨울 치고는 날씨가 따뜻하다 하더라도,

모든 것들을 무릅쓰며

공 하나를 굴리는 것에 그렇게 흥분할 수 있다니?

상상할 수 없다.


고뿔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잔소리가 슬슬 혀를 가동시키려 할 즈음,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내뱉을 말을 속으로 소화시킨다.


아이는 소 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이야기를 흘려보낼 것이 분명하고,

나는 잔소리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실어 보내야 할지

짐작하기에

이런 과정이 서로에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동안 충분히 경험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떨어져 걸으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내 옆에서 손을 잡고 있는 딸아이와 달리

시크하고 쿨한 아들의 모습은 조금 낯설다.


어린 시절부터 잔병치례를 많이 해

유독 마음이 쓰였던 아이가,

어느덧 내 키를 훌쩍 넘고

내 운동화를 구겨신으며

동네 마트를 초단시간에 돌파하는 능력이 생겼다.


내가 남자였으면,

저렇게 생겼을 거야라는 확신이 들게 할 정도로

나를 빼닮았던 아이의 선이

굵고 의젓하게 변하고 있다.


용돈을 받는 날이면

그 언제보다 고마움의 눈빛이 강하게 느껴지고,

나와 함께 있을 때면

따분한 듯이 연신 하품을 해댄다.

그렇게 놀아달라고 졸라댔었는데

가슴 한 켠이 휑하기도다.


현재의 아이는 나와 연결되어 있지만

과거처럼 밀착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삶의 온도를 느끼는 차이가 확연해지고,

시선의 높이도 달라졌음을 선명히 느낀다.

키가 자라며

아이는 나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될 것이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채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갈 것이다.


마음만큼이나

몸이 훌쩍 자랄 것을 예상하며

조금 넉넉한 사이즈를 선택할까 고민한다.

아이가 교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교복이 아이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여

다시 사이즈를 줄인다.

내심 못마땅하지만

나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아끼던

아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아침마다 옷을 고르는 시간 10분이 줄어들었다며

흥얼흥얼 뭔지 모를 단어를 읊조린다.

신났을 때의 표정이다.

딸아이와 나도 덩달아 즐겁다.


사뭇 진지하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축구를 하는 유럽 어느 나라로 장기 여행을 떠나겠다던

아들을 향해

독설을 퍼부은 이후,

아이와 이렇게 웃고 떠든 건 오랜만이다.

꿈을 응원해도 모자랄 판에

현실 가능성을 조목조목 따지며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퍼붓던 내 모습이

아이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지 걱정스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이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지만

꿈꾸지 못하는 것이 더욱 잔인한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현실을 인식시킨다는 변명으로

아이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내 모습이 스쳐간다.


이런 독한 어미에게

상큼하고 유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들이 고맙다.

가깝지만 먼,

사랑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아들이 분명하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를 강하게 당기고 있음을 확신한다.

말보다 더 빠른 언어인 운명과 본능으로 맺어진

아들의 따뜻한 손을 가만히 잡는다.

내 손안에 한움큼 들어오던 손이

어느 새 내 손을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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