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아프기 시작한 아기’
93년 늦봄 서울의 한 병원
“아이 얼굴 좀 봐! 사내아이면서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을까?? 커서 여자 꽤나 울리게 생겼어! 벌써부터 이렇게 간호사 누나들 마음을 다 빼앗았으니 말이야! “
아이의 얼굴은 자라면서 백번은 바뀐다는 말이 있더라. 역변까진 아니지만 지금은 내 눈에는 너무 귀여운 나의 동생님.
나의 동생은 태어났을 때 꽤나 미남이었다. 반면에 나는 태어났을 때 특별히 예쁘지 않았던 아기였다고 한다. 주변에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의 시각과 달리 타인의 시각이 너무 객관적이며 차마 거짓말은 못하겠고 아이 부모에게 실례가 될 것 같을 때.. 보통 사람들은 에둘러서 말을 하곤 한다. 아기 외모가 너무 귀엽네요!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나도 그런 말을 자주 듣는 한 명의 아이였던 것 같다. 직접적으로 들은 얘기는 아니라서 사실 확인은 안 되지만 너무 자주 내 모친에게 전해 들은 얘기였던지라 한동안 내가 내 외모에 자신이 없고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던 원인 중에 하나가 모친에게 전해 듣던 이야기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사실 셋 중에 내가 제일... 쿨럭...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 동생은 정말 왕자님 같은 녀석이었고 어렵게 얻은 아들인지라 나의 부모에게 특히 사주팔자에 없는 아들은 얻은 부친에게는 왕자님 같은 외모의 아들은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아들이었다.
요새 나의 부친이 내 동생을 보는 눈빛이 왕자님을 바라보는 눈빛은 아니더라. 남이 보면 원수를 본다고 생각을...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후 아이는 계속되는 설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고 한다. 부모는 아이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자 아이가 태어난 병원을 찾게 되었고 지금은 그 당시 질환이 지금 갖고 있는 병의 후유증의 일환임을 알고 있지만 93년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활발하게 활용되던 시대도 아니었고 요새 부모들처럼 온라인 맘카페가 있었던 시대가 아닌 지라 의료 지식이 부족하였던 나의 부모는 아이의 상태가 왜 이런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계속되는 설사와 복수가 차오르면서 여러 검사 끝에 병원 측에서는 간이 딱딱하게 굳는 병, 간경변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작고 소중한 아이는 16시간이 넘은 시간 동안을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야만 했다. 16시간이 넘는 시간을 꼬박 차디찬 수술대에 누워서 흔들리는 촛불처럼 병과의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수술을 마친 100일도 되지 않은 아기의 몸과 팔에는 그 어디에도 빠짐없이 호수관과 링거 등으로 생명 유지에 필요한 모든 장치를 연결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나 그때나 너의 강인함에 감사해! 매일 사랑해 내 동생
그렇게 나의 부모는 자식의 병으로 큰 아픔을 겪게 되었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일 줄 알았던 막내아들의 병마와의 싸움은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거듭되었고 지금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당시 나는 한국 나이로 6살, 만으로는 4, 5살쯤이 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또렷하게 그 당시 기억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그냥 순간순간의 감정이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 예쁜 동생을 못 봐서 너무 슬펐고 병원 생활로 집으로 자주 돌아오지 않는 부모가 그리웠다.
그때 이후로 나는 마음을 감추는데 익숙해졌지.
가끔 사는 게 고달프고 힘들 때면 나는 그때의 아팠던 시간들을 떠올리곤 해.
“네가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함께 살아 있다는 사실 만으로 너무 네게 감사하고 그 어렵던 시간을 견뎌준 너의 우직함과 강인함에 나보다 어린 동생이지만 너를 존경한다. 사랑한다 내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