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고 해서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말이 용서 되는 건 아닙니다.‘
5남 2녀 많은 형제를 가진 나의 부친. 나의 부친은 시골에서 꽤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집안은 아니었다. 자식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그냥 돈벌이 수단쯤으로 생각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그 시대에는 먹고살기가 어려워서 다들 그렇게 가족들을 부양하는 일에만 몰두하며 살았던 것일까. 어떤 것이 진실이고 사실이던 지금에 와서 무엇이 중요하겠냐만... 나의 부친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꽤나 모질고 냉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든 생명은 귀하게 여기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시골에 살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나의 동생 수술이 끝난 직후 서울에 방문하여 당시에 동생이 입원해 있던 병원을 찾아왔었다고 한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이를 면회하고 아픈 자녀를 둔 나의 부모를 찾아 나의 모친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어떤 이유에서든 해서는 안될 도가 넘치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어른이라고 나이가 많으시다 해서 주어 담지 못 할 말은 하지 마세요!
“더 돈 들기 전에 호수기 뽑아라!”
다 너희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니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거라. 나는 병원비에 보태 줄 돈도 없고.. 있어도 한 푼도 줄 수 없다! 자식은 또 낳으면 돼!
나의 부모는 얼마는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을까...
할아버지는 동생의 입원 생활이 밑 빠진 독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인지 어떤 생각으로 그런 얘기를 했었던 것인지 지금 살아계시지 않아서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꽤나 자극적이고 잔인한 말을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만 해도 모든 사람이 보험을 갖고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나라에서 환자들을 위해서 보조금을 지금처럼 지원해 주는 혜택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다고 한다. 병원 생활을 버티려면 정말 큰돈이 필요했고 조금 보태서 말하면 병원비로 집 한 채 값이 날아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시대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대 병원들은 병원비가 하루라도 밀리고 지급이 안되면 환자 베드를 아무렇지 않게 빼버리는 일들이 상당수였다고 한다.
자금의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나의 부모는 내가 태어나고 난 이후에 많은 돈들을 벌었고 착실하게 살아온 탓에 저축해 둔 여유돈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의 어려운 병원 생활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둘째 딸이지만 알고 보면 난 복덩이 딸?!
할아버지의 말은 나의 부모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고 평생의 한이 되었다. 어떤 마음으로 누굴 위해서 했던 말이었던지 인생을 더 산 경험으로 해주는 말이었다 해도 가족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던... 병든 아이를 둔 나의 부모는 두고두고 그날의 그 모진 말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타인의 공감까지 바라지 않지만 가족이 나를 부정하고 돌아서 버리면 그 아픔은 평생의 한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