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을 찾아 떠나는 가을 여행
아마 그대는 내가 그저 야만인으로만 보이겠지요.
그 누구도 나를 그렇게 볼 순 없어요, 우린 서로가 너무 다를 뿐이죠.
사람들만 생각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나무와 바위, 작은 새들조차 세상을 느낄 수 있어요.
자기와 다른 모습이라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중략)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이 글은 '포카혼타스(Pocahontas)'라는 만화영화 주제곡 가운데 하나인 '바람의 빛깔'이라는 곡의 노랫말이다. 1995년 작이니 꽤 오래된 영화다. 사실을 말하자면 난 이 영화를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하게 이 곡을 접하면서 영화를 '본'게 아니라, '공부'했다. 대략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내용의 노래가 들어가는 영화의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가을에 떠나는 길엔 늘 설렘이 가득하다. 여름 내내 더위와 싸우느라 지치기도 했고, 때가 바뀌면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그 바람결에 묻어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기운 탓이다. 사람들은 이 미묘한 기운을 '가을을 탄다'라고 말하는데, 나도 그런 쪽에 가깝다. 마음 한쪽이 휑하기도 하고, 왠지 살아가는 느낌이 덜해지기도 하는 것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년 같으면 '가을'일랑 일상에 묻어 버리고, 값싼 감상에 젖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가슴은 시리기만 했고...
그런데 이렇게 길을 나서고 보니 너무 좋지 않은가! 이따금 시려오던 가슴은 떠난 길에서 얻은 즐겁고 유쾌한 느낌으로 달랠 수가 있으니 말이다.
햇살 가득한 숲 길을 걸으며 빨강, 노랑 물든 나뭇잎과 그 사이를 비집고 파고드는 빛의 향연을 보노라면, 눈이 부셔서 눈물이 절로 난다. 이런 느낌이 좋다.
작은 냇가 그늘진 터에 놓인 소박한 의자에 앉아 따스한 가을을 맞으며, 바람결에 일렁이는 물결, 반짝이는 수면 위로 살짝 단풍잎 하나 떠 가는 그림 같은 풍경이 있다.
때로는 옅은 물안개로 둘러싸인 수초와 그 가운데 고즈넉이 서 있는 외로운 나무 한 그루, 사람들로 번잡하지 않아 더욱 좋은 외진 시골의 호숫가, 호수를 끼고 서 있는 사시 나뭇잎이 노랑으로 물들어 바람결에 살랑이고, 수면에 비친 사시나무의 행렬이 장관을 이룰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작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 길을 떠나 떠도는 어느 곳에서도 마주하는 이 생명들의 어우러짐이 내가 살아가는 터가 되고, 그들이 자라나는 대지가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을 '우리'에 포함시키지 않고, 다스리거나 이용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즐길 거리 정도로 치부하고는 한다. 때로는 파괴하고 배제하고 소외시키기도 하면서 같이 어울려 살아가야 할 '우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기야 사람들끼리도 그저 다를 뿐인 데, 억압하고 차별하는 것이 여전한 것을 보면 이 정도의 기대조차도 버겁다.
좀 일찍 떠난 길이라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다. 이제 좀 덜 시린 가슴으로 가을을 쇨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떠날 길을 기대하며.